[왁자지껄] '갑질(Gapjil)' 용어가 세계화돼서야…

2018-04-16 15:31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사진제공=연합뉴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차녀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를 둘러싼 '갑질' 논란이 글로벌 이슈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4일(현지시간) 조 전무가 광고회사 부하 직원을 상대로 물을 뿌리고 폭언을 해 경찰 수사를 받게 됐다고 보도했다.

흥미로운 점은 NYT가 이날 보도에서 '갑질(Gapjil)', '재벌(Chaebol)'이라는 우리말을 영어 스펠링 그대로 소개했다는 것이다.

갑질이란 사회적으로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甲)'이 지위를 이용해 약자인 '을(乙)'에게 하는 부당한 행위를 뜻한다. 갑을관계에서 연유한 이 용어는 비하하는 의미의 접미사 '질'이 더해져 대단히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NYT는 갑질에 대해 '과거 영주처럼 임원들이 부하나 하도급업자를 다루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일본 교도통신 역시 지난 12일 조현민 전무가 '파워하라(Powerhara)' 소동을 일으켰다며 갑질 논란에 대해 비중 있게 보도했다. 파워하라는 '파워(Power)'와 '괴롭힘(Harassment)'이 합쳐진 일본식 조어로, 상사가 부하를 괴롭히는 행위를 뜻한다.

이처럼 갑질 문화가 만연하게 된 것은 한국인 특유의 위계·서열을 중시하는 수직적 문화와 이로 인한, 위로부터의 일방적 명령 하달 문화의 부정적 측면이 맞물려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한 데 있다.

재벌 총수 일가 상당수가 기업을 본인들 소유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도 문제다. 또 이들이 일탈을 한다 해도 이를 견제하거나 바로잡을 수 있는 법치 시스템이 실질적으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점도 한몫한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약자에게 강하게 대하고, 강자에게 약하게 대하는' 공감대가 암암리에 형성될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약간의 권력만 주어진다면 이 같은 갑질 문화는 시기, 장소, 규모의 문제일 뿐 언제든지 되풀이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경쟁력 강화와 국가적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라도 갑질 문화는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약자가 부당한 대우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시스템과 함께 갑질을 실효성 있게 처벌할 수 있는 강력한 해결책이 동반돼야 한다.

우려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만 통용됐던 갑질 폐단이 구체적 용어와 함께 외신을 통해 알려지면서 우리 국격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는 용어는 사람들의 뇌리에 오래 남게 마련이다. 세계화는 '떡볶이(Tteokbokki)', '태권도(Taekwondo)' 등의 용어로 채워져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