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간 무역전쟁이 발발한 와중에 열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던 보아오포럼이 나흘 간의 일정을 끝내고 11일 폐막했다.

전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포럼 기조연설에서 큰 폭의 시장 개방 조치를 발표하며 협상의 여지를 넓힌 것이 최대 성과로 평가된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한국인 최초로 포럼 이사장에 선출되고 최태원 SK 회장 등 재계 인사들도 대거 참석하는 등 한·중 관계 정상화 징후가 뚜렷해진 것 역시 눈에 띄는 대목이다.

◆트럼프에 공 건넨 시진핑, 무역전쟁 결말은?

매년 중국 하이난에서 열리는 보아오포럼은 아시아 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한 민간 교류의 장이다.

올해는 포럼 개최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안방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하는 시 주석이 어떤 발언을 내놓느냐에 따라 미·중 무역전쟁의 향방이 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향해 전면전을 선포할 것인가, 확전을 막기 위해 한발 물러설 것인가. 결과는 후자에 좀 더 가까웠다.

시 주석은 전날 포럼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다양한 시장 개방 조치를 발표했다.

금융업에 대한 외자 투자 제한을 완화해 외국계 금융기관이 중국에서 보다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도록 했고, 외국계 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는 네거티브 업종도 수정하기로 했다.

미국의 주요 수출품인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인하하고, 새로 재편한 국가지식재산권국을 통해 중국 내 외국계 기업의 지식재산권을 적극 보호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미국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한 셈이라 협상 테이블을 차리기 위한 물꼬를 텄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 주석이 도널드 트럼트 미국 대통령에게 공을 넘겼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중국 측의 유화 제스처는 이날도 이어졌다. 포럼에 참석한 이강(易綱) 중국 인민은행장은 "미·중 무역 마찰은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문제로 이성을 갖고 처리해야 한다"며 "위안화 평가절하 등의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중국이 무역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환율을 무기로 쓸 수 있다는 일각의 주장에 선을 그은 것이다.

시 주석이 언급한 금융시장 개방과 관련해서는 "은행과 자산관리 회사의 외자 지분 비율 제한을 완화하는 등의 6개 정책은 올해 상반기 중 실시할 것"이라며 "외국계 투자은행의 업무 범위 확대 등 5개 조치도 연내에 구체화하겠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즉각 화답했다.

그는 10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관세와 자동차 장벽에 관한 시 주석의 발언과 지식재산권 및 기술 이전에 대한 그의 깨달음을 고맙게 생각한다"는 글을 남겼다.

이어 "우리는 함께 큰 진전을 이룰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봐 온 양국 갈등은 일단 숨고르기 국면으로 접어든 모양새다.
 
◆반기문 이사장 취임, 공존공영 강조

반 전 총장이 보아오포럼 신임 이사장을 맡으며 아시아 최대 규모의 민간 외교 무대에 데뷔했다.

그는 지난 9일 포럼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신임 이사장에 선출됐다. 포럼 폐막일인 이날에는 전임자인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 등 전·현직 이사들과 함께 시 주석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반 이사장은 시 주석의 연설 내용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 이사장은 최근 미·중 갈등이 격화하고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는 점을 의식한 듯 포럼 기간 중 공존공영(共存共榮·함께 존재하며 번영한다)을 강조했다.

그는 10일 열린 '개혁개방 40년·중국과 세계'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어떤 국가도 홀로 존재하거나 발전할 수 없다"며 "우리 모두 단결해야 비로소 공동의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화이트보드에 메시지를 남겨달라는 주최 측 요구에 '공존공영(共存共榮)'이라고 썼다. 미·중 간 분쟁의 중단과 국제 무역질서의 회복을 에둘러 촉구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포럼에는 최태원 회장과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이 각각 자문위원과 이사 자격으로 참석하는 등 한국 재계 인사들이 대거 방문했다.

최 회장은 9일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는 주제로 조찬 포럼을 개최해 호평을 받았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는 시 주석이 주재하는 지도자 좌담회에 초청받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 경색됐던 한·중 관계가 정상화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며 "특히 이번 포럼을 지켜보니 경제 분야의 교류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