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新시대 지방지도자⑤] '류링허우'ㆍ'신칭화제(新淸華系)'…시진핑 측근이 장악한 서부
2018-04-05 07:54
쓰촨성 펑칭화 서기·잉리 성장
산시성 후허핑 서기·류궈중 성장
칭하이성 왕젠쥔 서기 겸 성장
구이저우성 쑨즈강서기·선이친 성장
간쑤성 린둬 서기·탕런젠 성장
산시성 후허핑 서기·류궈중 성장
칭하이성 왕젠쥔 서기 겸 성장
구이저우성 쑨즈강서기·선이친 성장
간쑤성 린둬 서기·탕런젠 성장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고향인 산시(陕西)성이 포함된 중국 서부지역은 중원으로의 도약을 위한 일종의 발판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중국 정치계에선 젊은 층에 속하는 ‘류링허우(60後·60년대 출생자)’와 베이징대·칭화대 등 중국 명문대 출신 고학력자가 유독 눈에 띈다. 대부분이 시 주석 측근으로 불리는 시자쥔(習家軍·시진핑 친위세력)이다.
최근 홍콩·대만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시진핑계 인맥 ‘신칭화제(新淸華系)’, 이른바 시진핑과 같은 칭화대 졸업자와 해외 유학파가 다수 포진됐다.
◇ 일대일로 성과로 시진핑에 ‘눈 도장’…펑칭화 쓰촨성 서기
펑 서기는 자오러지(趙樂際)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의 베이징대 철학과 2년 후배로 졸업 후 중앙조직부에서 20년 간 일한 바 있다. 당시 그는 중앙조직부장이었던 쑹핑(宋平)의 비서였는데 쑹핑은 시 주석의 부친과 절친한 사이로 교류가 잦아 시 주석과 인연을 맺었다.
2012년부터 광시 자치구 당서기로 부임해 일대일로, 홍콩 문제 등과 관련해 성과를 내면서 실력을 쌓아 시 주석에게 실력을 인정받았다.
◇ 의대출신 ‘브레인’ 인리 쓰촨성 성장
인리(尹力) 성장은 박사 출신에 해외 유학까지 다녀온 전형적인 엘리트 관료다. 산둥(山東)대 의대를 졸업한 후 하버드 의대 박사과정까지 밟았다.
2003년 귀국한 그는 중국 위생부에서 일하다가 이듬해 1월부터 2005년 5월까지 세계보건기구(WTO) 집행위원 부위원장으로 재임하며 본격적으로 정치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2006년 류링허우로는 처음으로 중국 국가위생계획생육위원회 부주임에 임명됐다.
2015년 중국 위생분야에서 손을 뗀 인리는 갑작스럽게 쓰촨성 부서기에 오르며 중국 전역을 놀래켰다. 일각에서는 위생 분야가 아닌 지방정부 지도자로 걸음을 옮긴 그가 중앙지도부의 야망을 품고 있을 것이라 추측하기도 했다.
실제로 인리는 1년 후인 2016년 양회를 통해 쓰촨성장으로 임명됐다. 당시 장쑤(江蘇)성의 스타이펑(石泰峰), 푸젠성의 위웨이궈(于偉國), 구이저우성의 쑨즈강(孫志剛)과 더불어 공산당 중앙 조직에서 지방정부로 파견된 ‘낙하산’ 인사의 대표격으로 주목받았다.
◇ '신칭화계’ 후허핑 산시성 서기
시진핑은 철저하게 인맥 위주의 인재 중용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저장(浙江)성 출시 관료인 ‘즈장신쥔(之江新軍)'이 있고, 최근 떠오르고 있는 ‘신칭화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칭화제는 시진핑과 같은 칭화대 졸업 출신들을 일컫는다.
핵심인물은 시진핑의 화공학과 동창인 천시(陳希)다. 둘은 학창 시절 룸메이트, 천은 시 주석 출세와 더불어 칭화대 당서기에서 교육부 부부장, 랴오닝(遼寧)성 부서기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현재는 중앙조직부 상무 부부장으로 시진핑의 인사(人事)를 주도하고 있다.
후허핑(胡和平) 산시(陕西)성 서기도 천시처럼 시 주석의 선택을 받은 대표 인물로 꼽힌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과 같은 학과인 칭화대 공학원 수리공정학과를 졸업한 후허핑은 지난 1990년 칭화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1992년 일본에 유학, 1995년 도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6년 12월부터 칭화대 수리공정학과 교수, 부학과장, 대학 조직부장 등으로 재직했으며, 2003년 9월부터 칭화대 교무처장, 칭화대 부총장 등을 역임했다. 2008년 12월부터 칭화대 당위원회 서기를 거쳐 2013년 저장성 조직부장으로 옮겼다. 얼마 안 있어 산시성 부서기에 이어 산시성 부성장 겸 성장대행에 오르기도 했다.
후허핑은 칭화대에서 나온지 3년이 채 안된 사이에 세 계단을 뛰어넘는 고속 출세를 한 점에서 시 주석의 총애를 받고 있는 측근 중 한 명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특히 산시성은 시 주석의 고향으로 업적을 많이 올릴 경우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기회가 월등히 많아 중국 정계는 그를 주목하고 있다.
◇ 시 주석 고향의 대표 기술관료, 류궈중 산시성 성장
젊은 피를 가진 고학력 지도자의 대표주자 중 한 명이 류궈중(劉國中) 산시성 성장이다. 류 성장은 지난해 말 지린(吉林)성 성장에서 산시성 부서기로 이동했다가 이번 양회를 통해 산시성 성장에 임명됐다.
1962년 헤이룽장(黑龍江)성에서 태어난 류 성장은 화둥공정학원에서 포탄신관 설계, 하얼빈 공대에서 금속재료 분야를 전공한 기술관료다. 헤이룽장성 부성장을 거쳐 2013년 노동조합연맹인 전국총공회 부주석에 이어 지난해 말 지린성 부서기, 지린성 성장까지 올랐다가 시 주석의 고향인 산시성으로 활동 반경을 옮겼다.
이는 시 주석의 측근인 리잔수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과거 헤이룽장성 성장으로 재직할 때 류 서장이 비서장을 역임한 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류 성장은 성장을 맡은 시간은 길지 않지만 매우 능력 있는 지도자로 평가된다. 관계자에 따르면 그는 지린성 성장 시절 공직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성실히 일했다. 시 주석이 고향인 산시성을 매우 중시하기 때문에 함부로 지도자를 택하진 않았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 칭하이 공직 생활만 20년…왕젠쥔 칭하이성 성장 겸 서기
왕젠쥔(王建軍) 칭하이(青海)성 서기 겸 성장 임명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왕 서기는 왕궈성(王國生) 전 칭하이성 서기의 중원 이동으로 승진 발령됐는데 왕궈성의 중원 이동 이유가 독특하다. 왕궈성은 2년전 중원에서 서부 3선 지역인 칭하이성으로 '낙향'한 상태였는데 최근 양회에서 티베트인들이 시 주석을 '활보살'(活菩薩·살아있는 보살)로 여긴다고 하며 시 주석에게 충성을 보였다. 이 같은 충성심 덕분에 왕궈성은 주요 지역인 허난성 서기로 이동했다.
왕젠쥔은 1958년 후베이성에서 태어나 1984년 3월 중국 공산당 입당 후 중앙당교를 졸업했다. 이후 줄곧 칭하이성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칭하이 통(通)’이다. 부서기에서 지난해 성장에 임명된 데 이어 올해부터는 성장과 서기를 겸임하고 있다.
◇ '마지막 꿈'을 구이저우에서…쑨즈강 구이저우성 서기
쑨즈강(孫志剛)은 올해 정년을 앞두고 있는 원로다. 지난 2015년 국가위생및계획생육위원회 부주임으로 있던 쑨 서기는 당시 구이저우(贵州)성 성장이었던 시진핑의 최측근이자 '즈장신군 황태자' 천민얼(陳敏爾)이 당서기로 승진하면서 공석이 된 성장 자리를 꿰찼다. 무려 3개월 동안 적임자가 나타나지 않자 시 주석이 그를 성장으로 낙점했다. 정년을 3년 앞두고 있는 그가 단 한번도 부장이나 성장을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배려라는 해석이다.
시진핑 집권 1기 정치국 상무위원회 7인 중 최고령자인 위정성(兪正聲) 전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을 보좌했던 쑨즈강을 시 주석이 인정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후 지난해 천민얼 서기가 충칭시 서기로 이동하면서 쑨즈강은 구이저우성 서기로 이동했다. 쑨서기는 허난(河南)성 출신의 지청(知靑·문화대혁명 때 하방을 경험한 지식청년) 출신으로 주로 후난(湖南)성에서 당정 이력을 쌓아온 인물이다. 안후이성(安徽)성으로 이동할 때인 2006년 이전까지 거의 30년 동안이나 후난성에서 일했다. 이 기간 우한(武漢)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 구이저우 토박이... 최초 여성 성장 선이친 구이저우성 성장
소수민족 출신, 구이저우 최초 여성 성장. 선이친(谌贻琴)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구이저우성은 최근 중국에서 가장 뜨거운 지역 중 하나다. 지난해 3분기까지 중국 31개 성·시 가운데 성장률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 한해 전체로도 1위를 차지했다.
산림으로 둘러싸인 궁벽한 오지였던 구이저우성이 '천지개벽'한 것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전폭적 지원으로 산업구조를 성공적으로 전환하면서다. 10여 년 전부터 중앙정부의 서부대개발 정책에 따라 인프라스트럭처 투자가 집중된 구이저우는 기존 농업·광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정보기술(IT)이 주도하는 혁신경제로 빠르게 전환했다.
이 같은 구이저우가 고속 성장한 것은 선이친의 노력도 컸다. 선 성장은 지난 1998년부터 구이저우성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약 30년간 묵묵히 구이저우를 위해 일했다.
50여 개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구이저우에서 백족 출신인 그는 구이저우에서 태어나 구이저우에서 자라고 구이저우를 위해 몸 바친 유일무이한 여성 성장이다. 중국 당국은 그의 공헌을 높이 평가해 올 1월 선이친을 성장으로 임명했다.
◇ 왕치산의 특급인맥, 린둬 간쑤성 서기
간쑤(甘肅)성에는 시 주석과 이번 양회에서 화려하게 복귀한 왕치산 국가 부주석의 인맥이 고루 포진돼있다. 린둬(林铎) 간쑤성 서기는 왕치산 인맥의 대표 인물 중 하나다.
린 서기는 2000년대 중후반 왕 부주석의 베이징 시장 재임 시절 베이징시 시청(西城)구청장·서기를 지내며 그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왕 부주석이 중앙기율위를 장악한 뒤인 2014년 헤이룽장성 하얼빈(哈爾濱)시 서기에서 랴오닝(遼寧)성 기율위 서기로 자리를 옮겨 가며 그의 반부패 척결을 측면 지원했다.
2016년 3월 간쑤성 부서기로 승진한 그는 한 달 만에 간쑤성장, 1년여 만에 간쑤성 서기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왕치산의 복귀로 린 서기가 곧 주요직책을 맡을 것으로 보고 있다.
◇ ‘농촌전문가’ 탕런젠 간쑤성 성장
탕런젠(唐仁健) 성장은 지난해 간쑤성 서기로 승진한 린둬 성장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간쑤성 성장에 임명됐다.
류링허우인 탕 성장은 중국에서 손에 꼽히는 농촌 전문가다. 지난해 최고 경제 정책 결정기구인 중앙재경영도소조 지도부에 합류해 시 주석이 이끄는 의사 결정 핵심부의 일원이 됐다.
중앙재경도소조는 일반적으로 비공개적으로 운영했지만 지난해 류허(劉鶴) 부총리가 상하이에서 해안 지방 경제 정책 당국자들을 불러 심포지엄을 개최한 것에 이어 쓰촨성의 경제 발전 상태 확인을 위해 시찰에 나서는 등 공개 행보를 보이면서 중국에서 주목을 받았다.
탕 성장 역시 고학력 ‘브레인’으로 시 주석의 신임을 얻었다. 시난차이징(西南財經)대학교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중국 농업부와 중앙재경도소조 판공실 농촌조 등에서 근무했다. 이어 2012년부터 저명한 농촌 발전 전문가인 천시원(陳錫文) 전 중앙농촌공작영도소조 판공실 주임 밑에서 근무하다 2014년 광시좡족자치구 부주석으로 선임됐으며 이번에 천 주임의 자리도 물려받았다.
시진핑 ‘경제책사’ 류허 부총리가 중앙재경도소조 판공실에서 일했을 당시 탕 성장을 눈 여겨 보고 있었다는 소문이 돌며 중국 농촌경제를 책임질 브레인으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