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이로운 투자 인문학] 금리와 유효수요

2018-03-28 17:17
한은 딜레마, 그 많은 돈 어디로 갔을까

서준식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국내운용부문 부사장.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서준식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국내운용부문 부사장

"경각심을 가지고 지켜볼 것이지만 한국의 기준금리 인상 시기는 변수가 많고 고려해야 할 점도 많아 향후 경제흐름을 지켜보고 결정할 것이다."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된 것에 대한 우려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이렇게 답했다. 그 답변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고뇌가 가득하다.

지난 21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에서 결정되는 미국의 기준금리가 1.5%~1.75%로 또 한차례 인상돼 한국의 기준금리 1.5%를 넘어섰다. 미국 기준금리는 1% 가까이 추가 인상될 전망이라 앞으로가 더욱 문제다. 원화 예금 이자보다 달러 예금 이자가 높아져 많은 투자자들이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살 것이기에 국내자금이 유출될 것이란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총재는 우리도 같이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발언을 쉽게 하지 못하고 있다. 어째서일까.

◆한·미 금리역전, 한국은행의 고뇌

경기가 좋지 않을 때 기준금리를 내려 시중에 돈을 싸게 풀어놓는 중앙은행의 경기부양정책은 가뭄이 심할 때 댐에 저장된 물을 방류하는 것과 같다. 기준금리를 올려 시중의 돈을 흡수하는 긴축정책은 수문을 닫아 댐에 다시 물을 모으는 것으로 비유된다.

2008년, 금융위기라는 혹독한 가뭄 속에서 미국은 기준금리를 0%까지 끌어내리며 타들어가는 논밭에 물을 대었고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경제성장률과 고용률이 반등하는 등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Fed는 2015년 말부터는 기준금리를 다시 올리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수문을 닫고 다시 물을 저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상황은 크게 다르다. 한국은행 또한 최악의 체감경기 부진이라는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사상 최저치인 1.25%까지 총 8회 기준금리를 내린 바 있지만 이후 금리인상은 1회에 그쳤다. 아직도 논밭에 물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우리의 물은 어디로 갔을까

경기를 회복시키기 위해 수문의 개방과 함께 꼭 이루어져야 할 일은 그 물들이 제대로 논밭으로 갈 수 있도록 물길을 만들어놓는 것이다. 하지만 2014년 전후의 많은 경제정책들은 대부분의 물길을 엉뚱한 쪽으로 파놓았다.

당시 부동산 정책은 기준금리 인하로 방류된 엄청난 시중의 자금이 부동산으로 흘러가게 했다. 많은 사람이 빚내서 부동산을 매입했고 미국과 정반대로 한국의 가계부채는 매년 엄청난 속도로 증가했다. 반면 소비와 투자 쪽으론 돈이 흘러가지 못해 체감경기가 제대로 살아나지 않았다.

정부는 이 물길을 논밭으로 되돌려 놓으려고 하고 있다. 부동산 세제를 다시 정비하고, 헌법에는 토지공개념 경제철학을 도입하려고 한다. 

이미 가계부채는 15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많은 가계들이 소득의 상당액을 부채와 이자를 상환하는 데 쓰고 있어 유효수요(소비와 투자에 실제로 연결될 수 있는 경제력, 경제학자 케인스는 유효수요 증대를 불황에서 탈출할 수 있는 절대적인 방법으로 보았다)가 좀체 늘어나지 않고 있다.

◆한은의 금리정책, 유효수요 저해 말아야

금리가 낮은 나라에서 높은 나라로 자금이 유출된다는 교과서 속의 이론이 무조건 정답이라 생각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2008년 한국은행은 달러자금 유출을 우려하며 기준금리를 미국보다 크게 높였다. 하지만 고금리로 국내 경기가 위축될 것을 우려한 외국인의 주식투자자금이 빠져나가 오히려 환율이 급등했고, 외환위기 우려까지 낳았다. 다행히 실책을 깨달은 한국은행이 곧바로 금리를 인하한 뒤 자금유출과 환율은 진정됐다.

한국은행은 인내심을 가지고 논밭에 물이 충분해지기를 기다렸으면 한다. 1990년대 초, 성급하게 수문을 닫았다가 잃어버린 수십 년을 겪어야 했던 일본의 오류를 간과하지 말았으면 한다. 성급한 금리인상으로 국내 유효수요가 감소하고 이를 우려한 자금의 유출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정부 경제팀도 부동산에 집중된 자금을 투자와 소비로 이동시키는 노력과 함께 유효수요를 늘릴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