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정의 연예프리즘] ‘아이린과 82년생 김지영’, 여자연예인은 페미니즘하면 안되나요?

2018-03-22 13:36

레드벨벳 아이린[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최근 인기리에 방영중인 JTBC드라마 ‘미스티’에서 여성앵커 김남주는 청와대 대변인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한 분투를 벌인다. 국장이 그녀에게 묻는다. “왜 그렇게까지 그 자리에 오르고 싶어하냐”고.

김남주는 “국장님은 앵커하신지 1년만에 국장 다셨잖아요. 전 7년이에요. 언론사에서 여성 국장 보셨어요? 전 여기서 팔짱끼며 후배들 잔소리나 하는 선배로 남겠죠. 그 자리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가보려구요”라고 말한다.

언론사는 유독 여성에게 유리천장이다. 조중동에 여성편집국장이 나온 적이 있는가? 없다. 보통 여성은 부장 정도가 가장 높은 위치다. 그나마 여성부장도 드물다. 가장 진보적이어야 할 언론사가, 가장 새로운 뉴스를 발 빠르게 다룬다는 언론이 실상 그 민낯은 가장 남성 중심적인 조직이다.

연예계 역시 언론사에 못지않다. 여자연예인에게는 강요된 이미지가 있다. ‘청순하거나 혹은 섹시하거나’. 이미지를 소비하는 연예계는 여자 연예인이 센 이미지로 나올 경우 또 다른 카테고리로 ‘센 언니’라는 수식어를 붙여 마치 소녀도 여자도 아닌 ‘아줌마’로 분류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주려한다.

걸그룹 레드벨벳 ‘아이린’이 최근 팬미팅 현장에서 ‘최근 읽은 책이 무엇이냐’는 팬의 질문에 “최근 『82년생 김지영』과 『별일 아닌 것들로 별일이 됐던 어느밤』을 읽었다”고 말했다.

이에 일부 남성 팬들은 ‘아이린이 페미니스트가 됐다’며 관련 굿즈를 훼손하는 사진을 올리는 등 도 넘은 협박과 비난을 쏟아냈다.

‘82년생 김지영’은 딸을 둔 평범한 30대 주부 김지영씨가 살아 온,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여성으로서의 삶을 찬찬히 따라간다.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전업주부 1982년생 김지영의 인생을 통해 여성이 일상적으로 겪는 차별과 사회 구조적 불평등을 그려낸 작품이다. ‘오늘의 작가상’, ‘양성평등문화상’ 등을 수상했으며 지난해 10월 출간된 이후 7개월 만에 10만부 이상이 판매되는 등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로 아이 린이 비난 받을 이유는 없다. 오히려 지지와 응원을 받아야 마땅하다. 소설 속 김지영씨 삶에 공감하고 같은 여성으로서 자기 삶을 되돌아본 그가,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일부 남성들은 아이린에게 ‘페미니스트’라는 낙인을 찍으며 조롱하고 비난했다. 왜 아이린은 비난받아야했을까? 아이린이 설혹 페미니스트라고 선언을 했다 해도 여성주의를 선택한 것은 아이린의 자유의지다. 그녀가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린에게서 배신이나 당한 듯 팬들은 그녀에게 비난을 쏟아냈다. 아이린이 가진 청순함과 예쁜 외모, 순종적일 것 같은 조용한 이미지, 그런 그녀에게 페미니즘이란 남성팬들이 그려왔던 아이린의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일까?

앞서 걸그룹 에이핑크 멤버 손나은도 SNS에 올린 사진으로 곤혹을 겪었다. 지난 2월 ‘GIRLS CAN DO ANYTHING(여성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문구가 적힌 휴대폰 케이스를 노출해 논란의 대상이 됐다. 이는 패션 브랜드 협찬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지만 논란이 커지자 손나은은 사진을 모두 삭제했다.

해당 문구는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상징적인 것으로 한때 많은 여성들이 해당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어 화제가 됐다. 일부 네티즌들은 “그놈의 ‘페미(페미니스트)’ 좀”, “손나은 페미인가요? 아 오늘부터 차단”, “손나은 남자팬 떨어지겠네” 등을 댓글로 손나은을 공격했다.

왜 페미니스트는 공격받아야하는가? 특히 여자연예인은?

사람들은 본래 익숙한 것을 추구하는 존재다. 익숙한 관념의 틀 안에서 여자연예인은 ‘섹시하거나 청순’해야 한다. 낯선 것을 보면 두려워하고 공격하려 하는 여성혐오의 측면에서 본다면 여자연예인은 더 공격의 대상이 된다. 공인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같은 인간으로서 여성과 남성은 평등해야 한다. 이 주장은 부정할 수 없어야 한다. 여자연예인이든 여기자든 여성 근로인이든 가정주부든 우리는 모두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그 어느 것으로부터 이유 없는 비난과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무작정 비판하기 전에 여성이 어떤 억압을 당하고 있고, 자신은 왜 페미니즘에 불편함을 느끼는지부터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더불어 여자연예인의 소신 있는 발언에 개인적으로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 언젠가 대형 언론사에 여자국장이 나타나는 그날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