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동계패럴림픽 사상 첫 금메달 일궈낸 ‘금빛 내조여왕‘

2018-03-21 11:19
2006년 한국 온 베트남 결혼 이주 여성, 크로스컨트리스키 신의현 선수 아내 김희선 씨
"힘든 순간 어떻게 하면 행복해 질 수 있을까 고민"
한식·중식 조리사 자격증 따고 지게차 몰며 내조

동계패럴림픽 사상 한국에 첫 금메달을 선사한 신의현이 18일 강원도 평창 바이애슬론센터에서 모든 종목의 경기를 마친 후 가족들과 만나 환하게 웃고 있다. 왼쪽부터 아내 김희선씨, 신의현, 딸 은겸, 어머니 이회갑씨, 아들 병철, 아버지 신만균씨. [사진=연합뉴스]


한국 동계패럴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따냈다. 두 팔로만 7.5㎞를 달렸다. 강인한 정신력도 뒷받침이 됐지만 그보다 더 거대한 힘이 있다. 아내의 정성스러운 금빛 내조다.

지난 17일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크로스컨트리스키 남자 7.5㎞ 좌식 부문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신의현 선수 이야기다. 2006년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모두 절단했지만 스포츠를 통해 세계 정상에 우뚝 선 그의 이야기는 국민에게 큰 감동을 줬다. 금메달을 확정 짓는 순간 두 팔을 들어올려 포효하던 신 선수는 소감에서 "금메달을 따서 멋진 아빠, 멋진 남편이 되고 싶었다"며 "아내가 문재인 대통령이 응원 온 날 대통령 시선을 막을 만큼 열성적으로 응원해줬다”고 말했다. “남은 평생 잘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베트남 출신인 그의 아내 김희선씨는 신 선수의 가장 열정적인 ‘팬’이자 숨은 조력자다. 본래 베트남 이름은 마이킴히엔인데 한국에 와서 김희선으로 개명했다. 원래 이름에서 킴과 히엔의 어감을 살렸다. 김씨는 20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기쁘다”며 “의현씨가 메달을 못 따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금메달과 동메달까지 따서 정말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국말이 조금 서툴기는 했지만 벅찬 목소리에서 행복함이 묻어났다.

지금은 남편을 세계 정상에 세운 ‘내조의 여왕’으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고 있지만 한국 생활이 처음부터 순탄치만은 않았다. 김씨는 19살이던 2006년에 현재 그의 시어머니(이회갑)의 권유로 한국에 왔다. 시어머니 이 씨가 사고로 다리를 잃어 절망하고 있는 아들을 위해 직접 신붓감을 찾으러 베트남을 방문해 김씨를 데려온 것이다. 김씨는 “할 수 있는 한국어라고는 ‘안녕하세요’밖에 없고 남편이랑 말도 통하지 않아 힘들었다”며 “게다가 장애를 비관하던 남편이 술을 많이 마셔 다툰 적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김씨는 고된 한국 생활도, 남편 신의현씨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제가 스스로 남편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우리가 행복해질까’를 항상 고민했다”며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충남 공주에서 밤 농사를 크게 짓는 시부모를 도와 농사일을 책임졌다. 운전면허 자격증을 직접 취득하고 지게차 운전 기술까지 배웠다

신 선수도 이러한 아내의 노력에 마음을 움직이고 운동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제가 힘들어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의현씨도 노력한 것 같다”며 “서로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그 마음이 다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신 선수는 2009년 휠체어 농구로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2015년부터 노르딕 스키를 시작하며 본격적인 선수 훈련에 돌입했다. 김씨는 계속되는 해외 전지 훈련 등으로 지친 남편을 위해 한식과 중식 조리사 자격증까지 땄다. 그는 “최대한 먹고 싶어하는 음식은 다 해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남편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아이들 육아와 집안일을 도맡아 하기도 했다. 힘이 들겠다는 질문에 그는 “외국에 가서 훈련하다 보면 예민해질 때도 있고 체력이 많이 소모될 때도 있을 텐데 다른 것을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5년간 베트남을 찾지 못한 김씨는 조만간 고향을 찾을 예정이다. 김씨는 “구체적인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곧 베트남에 가서 부모님과 가족들을 만날 것”이라고 기쁜 소식을 전했다.

김씨는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남편이 대회 전 체중 조절 때문에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마음이 아팠는데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다”며 내조의 여왕다운 면모를 드러냈다. 베트남 축구 신화에 박항서 감독이 있었다면, 우리나라 동계패럴림픽 금메달 신화 뒤에는 김희선씨가 있는 것 같다는 말에 김씨는 “부끄럽다”며 “남편에게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