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스페셜-독립투사 남자현⑪]자른 손가락 들고 아들에게 쓴 편지

2018-03-05 16:35

그녀는 작은 종이와 세필 붓을 꺼냈다. 왼손을 바라보며 오른손으로 붓을 들어 김성삼에게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오늘 왼쪽 무명지 두 마디와 이별하려 한다. 이름이 무명지(無名指)라 한들 어찌 쓸모없는 손가락이겠느냐. 제 나라를 잃고 무명민(無名民)이 되어 떠도는 내 넋보다는 실한 것이었느니, 어쩌면 평생을 가만히 붙어 내 손을 채웠던 이 작은 것이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할 수도 있겠다 싶구나. 중지와 약지 사이에 어중간하게 여기도 붙었다 저기도 붙었다 하며 살아온 줏대없음을 논죄하는 준엄한 심판이 아니겠느냐. 그래도 오늘은 네가 중지보다도 약지보다도 훨씬 장하구나.

아들아, 하얼빈 남강(마기구에 위치)의 어느 중국인 음식점에서 가만히 내 왼손을 들여다 보나니, 성경에 나온 대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알 수 없을 만큼 쥐도새도 모르게 처리해야할 일이 있구나. 며칠 전, 국제연맹 대표단이 일제의 만주 침략의 부당성을 조사하기 위해 하얼빈에 온다는 첩보를 입수했지. 그간 신음해온 이 나라의 억울한 뜻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니더냐. 우리는 일제의 지배를 원하지 않으며 독립국가로 살아가기를 원하고 바란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준다면 세계에서도 여론이 생겨나지 않겠느냐. 일본은 우리의 입을 틀어막고 우리가 마치 그들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세상을 속이고 있으니 이런 도적이 어디 있으랴. 오늘 무명민의 무명지가 비로소 제 할 말을 크게 할 것이다.

아들아, 이제 칼을 가지고 왔다. 내 손가락이 먼저 알고 피가 뛰는구나. 이것을 잘라 모레 국제연맹 조사단장인 리턴경에게 전할 것이다. 차라리 시원하구나. 아들아. 내 오른손가락이 왼손가락을 들었다. 무명지 잘린 손가락을 붓자루처럼 들고 겨레붙이의 오직 한 가지 소원을 적어보려 한다. <대한독립원(大韓獨立願)>, 이 다섯 글자면 충분하다. 대한의 겨레는 독립을 원하오. 아래에 <조선여자 남자현>이라고 서명을 했다. 만주의 분노를 살피러온 이들이여. 조선의 피끓는 마음을 이것으로 헤아리라. 이제 잘라낸 손가락과 이 혈서를 함께 무명손수건에 싸서 리턴경에게 보내리라.

 

[영화 '암살'의 한 장면.]




# 손가락을 자르며 - 남자현 스토리詩, 세번째

 

 대홍수가 반도를 삼킨 경신년(1920년) 여름

 만주의 조선독립 단체들이 4분5열하던 8월

 국치(國恥) 불망(不忘)대회 단상에서

 왼쪽 엄지 잘라 피글씨를 썼네

 

“한 가닥 빗줄기는 한낱 빗줄기일 뿐이지만
 한날 한시에 저토록 뭉쳐내리면 천하를 휩쓰노라

 저 잘났다 저만 옳다 가닥가닥 빗줄기들아 

 뜻도 없이 말라버리려고 압록을 넘었는가

 나, 남자현 만주의 노부(老婦)로 쓸모없는 여자이나

 망국을 쓸어낼 큰 물로 터지는 꿈을 꾸나니

 그대들 국치 앞에서 치졸한 인치(人恥) 부끄럽지 않은가

 감히 어미손가락 잘라 그대들에게 주노니

 그대들 이 모지(母指)로 쓰는 피말씀을 들으라”

 

서라벌에서 대호(大虎)가 나타난 임술년(1922년)
 환인현에서 독립군들이 서로 죽이며 피를 뿌렸지

 나는 감연히 조선인들 앞에 나아가 식칼을 들었네

 어미 가르침(母指)으로 모자라면 다시 검지로 말하리라

 좌중이 놀라 말렸지만 나는 단죄하듯 서슴없이 내리쳤네

 흐르는 피손가락 감싸며 오열하는 무리에게 소리쳤지

 “내 손가락을 아낄 것인가, 그대들의 내일을 아낄 것인가

 겨레 동지를 죽여 자랑삼은들 나라가 살아 돌아오겠는가

 그 미친 듯한 힘을 아껴 어디에 써야하는지 도대체 모르겠는가”

 

사람들은 울며 손가락을 묻어 목비(木碑) 세우며
 만주벌의 단지여호(斷指女虎, 손가락 자른 여자 호랑이)라 하였네

 그래도 분열은 줄지 않았고 나는 피의 설유(說諭)를 거듭했지

 그대들 하나로 뭉치기만 한다면 엄지 검지 뿐이랴

 내 목 또한 서슴없이 내줄 수 있는 것이거늘

 10년만이구나 손가락아 오늘은 무명(無名)을 자르마

 이름없는 나라의 이름없는 여인이 이름없는 손가락을 잘라

 겨레붙이의 뜻에 진실로 이름 붙이고자 하나니

 무명아 너는 오늘 나의 총구이며 전사(戰士)이다

 이 날에 문득 고난의 왼손 내려다 보니

 너희는 한 송이 매화꽃판 같구나

 다섯 잎 나란히 붙어 한 시절 아름답게 꽃피고자 하였건만

 만주 찬바람 여의치 않아 벌써 두 잎이 날아갔구나

 왼손 들어 코 끝에 대니 매화향기 난다

 

먼 옛날 아버지는 불매당(不賣堂) 이름 지어
 매화는 평생 추워도 그 향기 팔지 않음을 새겼지

 내 왼손 평생 추웠으나 그 암향(暗香) 팔지 않았구나

 이제 또 하얼빈 거친 바람에 한 꽃잎 날려보내나니 

 먼 나라 양심이여 코 끝에 전해지는 신산(辛酸)한 대의(大義)를

 감히 외면하지 말라 조선 여자의 억눌린 비원(悲願)을

 코로 듣고 귀로 맡으라 꽃잎 하나의 피노래 

 옛 사람은 매화를 보지 않아도 매화를 알았나니

 한 줄기 향기로 온 천지 강고(强固)한 뜻을

 일곱자에 담는다 조선여자독립원(朝鮮女子獨立願)!

단지(斷指)  툇마루 

2015. 8. 14. 23:00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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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斷指) - 이빈섬.

 

 

                          손가락을 자르며, 남자현

 



 

  
 

  
 

대홍수가 반도를 삼킨 경신년(1920년) 여름
 만주의 조선독립 단체들이 4분5열하던 8월

 국치(國恥) 불망(不忘)대회 단상에서

 왼쪽 엄지 잘라 피글씨를 썼네

 

“한 가닥 빗줄기는 한낱 빗줄기일 뿐이지만
 한날 한시에 저토록 뭉쳐내리면 천하를 휩쓰노라

 저 잘났다 저만 옳다 가닥가닥 빗줄기들아 

 뜻도 없이 말라버리려고 압록을 넘었는가

 나, 남자현 만주의 노부(老婦)로 쓸모없는 여자이나

 망국을 쓸어낼 큰 물로 터지는 꿈을 꾸나니

 그대들 국치 앞에서 치졸한 인치(人恥) 부끄럽지 않은가

 감히 어미손가락 잘라 그대들에게 주노니

 그대들 이 모지(母指)로 쓰는 피말씀을 들으라”

 

서라벌에서 대호(大虎)가 나타난 임술년(1922년)
 환인현에서 독립군들이 서로 죽이며 피를 뿌렸지

 나는 감연히 조선인들 앞에 나아가 식칼을 들었네

 어미 가르침(母指)으로 모자라면 다시 검지로 말하리라

 좌중이 놀라 말렸지만 나는 단죄하듯 서슴없이 내리쳤네

 흐르는 피손가락 감싸며 오열하는 무리에게 소리쳤지

 “내 손가락을 아낄 것인가, 그대들의 내일을 아낄 것인가

 겨레 동지를 죽여 자랑삼은들 나라가 살아 돌아오겠는가

 그 미친 듯한 힘을 아껴 어디에 써야하는지 도대체 모르겠는가”

 

사람들은 울며 손가락을 묻어 목비(木碑) 세우며
 만주벌의 단지여호(斷指女虎, 손가락 자른 여자 호랑이)라 하였네

 그래도 분열은 줄지 않았고 나는 피의 설유(說諭)를 거듭했지

 그대들 하나로 뭉치기만 한다면 엄지 검지 뿐이랴

 내 목 또한 서슴없이 내줄 수 있는 것이거늘

 10년만이구나 손가락아 오늘은 무명(無名)을 자르마

 이름없는 나라의 이름없는 여인이 이름없는 손가락을 잘라

 겨레붙이의 뜻에 진실로 이름 붙이고자 하나니

 무명아 너는 오늘 나의 총구이며 전사(戰士)이다

 이 날에 문득 고난의 왼손 내려다 보니

 너희는 한 송이 매화꽃판 같구나

 다섯 잎 나란히 붙어 한 시절 아름답게 꽃피고자 하였건만

 만주 찬바람 여의치 않아 벌써 두 잎이 날아갔구나

 왼손 들어 코 끝에 대니 매화향기 난다

 

먼 옛날 아버지는 불매당(不賣堂) 이름 지어
 매화는 평생 추워도 그 향기 팔지 않음을 새겼지

 내 왼손 평생 추웠으나 그 암향(暗香) 팔지 않았구나

 이제 또 하얼빈 거친 바람에 한 꽃잎 날려보내나니 

 먼 나라 양심이여 코 끝에 전해지는 신산(辛酸)한 대의(大義)를

 감히 외면하지 말라 조선 여자의 억눌린 비원(悲願)을

 코로 듣고 귀로 맡으라 꽃잎 하나의 피노래 

 옛 사람은 매화를 보지 않아도 매화를 알았나니

 한 줄기 향기로 온 천지 강고(强固)한 뜻을

 일곱자에 담는다 조선여자독립원(朝鮮女子獨立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