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준의 지락필락智樂弼樂] ‘신의 아그네스’의 백화제방
2018-03-05 08:38
종로3가 운니동 ‘실험극장(實驗劇場)’ 가는 길은 늘 행복했다. 파고다 아케이드의 번잡함을 뒤로하고 좀 한적한 운현궁 길로 접어들 때의 그 설레는 느낌은 미팅 장소에 나가기 전의 흥분과 기대감 이상이었다. 그렇게 나는 실험극장에서 ‘에쿠우스’와 ‘아일랜드’ 그리고 ‘신의 아그네스’를 만났고, 연극이 무엇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신의 아그네스’ 초연은 1983년 8월이었다. 연극은 최장기 공연과 최다 관객 동원이라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아그네스 수녀 역의 윤석화가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나 역시 그해 실험극장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다.
세월이 흘러 1980년대 후반 초짜 기자이던 시절, 취재로 만난 연예인들과 친밀하게 지내던 때가 있었다. 한 번은 한 탤런트와 점심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는데, 약속장소에 나온 그녀가 불같이 화를 내며 펄펄 뛰었다. 사연인즉, 모 화장품 CF를 찍기로 했는데 그 CF에 출연하려면 그 회사 사장과 동행으로 여행을 가야 한다는 은밀한 조건을 내걸더라는 얘기였다. 그녀는 단박에 그 제안을 거절하고 자리를 나왔다면서, 소위 ‘갑질’의 행패에 치를 떨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신의 아그네스의 후예들’에 의한 증언과 폭로로 들끓고 있다. 그리하여 지난 오랜 세월 한 분야에서 권력의 정점에 있었거나 그 언저리에 있던 사람들이 추풍낙엽처럼 몰락의 길에 들어서고 있는 중이다.
검찰 조직에서 시작된 이 ‘미투(Me Too) 운동’의 거센 바람은 학계와 문단, 연극계, 연예계를 거쳐 사법부에까지 불똥이 튀었다. 권력의 완장을 찬 집단과 그 수혜자들이 아직 수두룩하고 그들의 갑질에 대한 원성이 자자했으니 어디로 더 확산될지 모른다. 행여 자신이 추문 당사자로 지목되지 않을까 두려워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을 것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는 10여개 제후국들이 저마다 부국강병을 외치며 널리 인재를 등용하면서 배출한 수많은 사상가들이 갖가지 고견을 쏟아냈다. 이들 제자백가(諸子百家)의 불꽃 튀는 논쟁인 백가쟁명(百家爭鳴)을 통해 중국은 학문과 사상의 찬란한 꽃을 피우며 문화의 황금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사회 ‘신의 아그네스 열풍’은 보다 성숙한 사회, 정의와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과도기적 진통이라 할 수 있다. 좀 더 확장하자면 지난 수십년 동안 우리 사회를 암묵적으로 짓눌러왔던 ‘박정희체제의 앙시앵레짐’이 비로소 밑에서부터 완전히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부당하고 불법적인 권력체제에 편승함으로써 힘을 획득한 자들의 상당수가 그동안 수많은 분야에서 은밀한 성폭력을 자행해왔다. 그러나 사회 분위기 자체가 권력에 억압당하면서 말하기 힘든 구조였으므로, 수많은 사연들 역시 본인이 화병(火病)을 얻으며 감내하고 마는 식으로 묻혀왔다.
따라서 지금 ‘미투’와 ‘위드유(With You)’는 일각의 우려처럼 적폐 청산을 방해하고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음모로 볼 필요는 없다. 다만 그런 시도가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럴 가능성도 있기는 하다. 특히 재계와 언론계 및 정치권력에 의한 폭력 사례가 아직 본격적으로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자. 한 여성 탤런트를 자살로 몰고 간 ‘장자연 사건’의 정확한 진실은 아직도 가려져 있다. 우리 사회의 갖가지 권력이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여전히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장자연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지금의 ‘미투 운동’은 그 빛이 매우 바래고 결코 완성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