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임순례 감독X김태리 '리틀 포레스트', 담백하고 낯선 맛
2018-02-27 16:05
열아홉 살에서 스무 살로 넘어가던 그 해, 자신을 두고 홀연히 떠나버린 엄마의 빈자리를 반려견 오구와 친구들로 채워가는 채원은 직접 키운 농작물로 한 끼, 한 끼를 만들어 먹으며 겨울에서 봄, 그리고 여름, 가을을 지나 또다시 겨울을 맞게 된다. 모든 것이 빠르기만 한 도시와는 달리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1년간 고향 생활을 한 혜원은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해 첫발을 내디딘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남쪽으로 튀어’, ‘제보자’ 등을 연출한 임순례 감독의 신작이다. 이가라시 다이스케가 그린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며 동명의 일본영화와는 다른 구성을 가지고 있다.
모든 리메이크 영화가 그렇듯,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 역시 원작 만화·영화와의 비교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원작이 사계절을 느린 호흡 그것도 두 편에 걸쳐 끌어냈다면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는 사계절을 한 작품으로 응축해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냈다. 또한, 완벽히 일본 정서인 원작을 군데군데 뜯고, 봉합해 한국적 정서를 담아냈으며 담백하고 산뜻한 귀결에 이른다.
한국적 정서를 담아냈다고 하여 임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가 여타 한국영화와 같은 맛이라 여기는 것은 위험하다. 요즘 한국영화에 길들여진 관객에게는 너무도 낯선 맛이기 때문. 영화는 서울에서 도망치듯 고향으로 내려온 혜원과 어린 시절 그를 떠난 엄마, 재하와 은숙의 관계 등 어느 하나도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는 법이 없다. 오히려 그 ‘빈칸’을 통해 은유와 상상을 전하고 담백하게 그들의 변화를 마주하게 한다. 또한, 혜원이 농작물을 키우고 요리를 만들어 먹는 과정을 보여주며 그의 여러 감정을 효과적으로 포착한다. 농작물이 자라나 듯 아주 섬세하고 미묘한 혜원의 성장과 변화를 지켜보는 것도 영화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혜원의 손을 거쳐 완성되는 요리들도 흥미롭다. 막걸리를 비롯해 시루떡, 떡볶이, 수제비, 김치부침개, 오코노미야키나 크림 브륄레 등 국적과 종류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음식의 향연은 이야깃거리와 볼거리를 제공, 관객들의 오감을 만족시킨다.
임순례 감독의 담백한 연출만큼이나 배우들의 연기 또한 인상 깊다. 거의 모든 회차에 출연한 혜원 역의 김태리는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얼굴로 관객을 마주한다. 자연스러움이 중요한 ‘리틀 포레스트’인 만큼 김태리의 담백하고 담담한 연기가 빛났다. 이외에도 류준열, 진기주 역시 적은 분량에도 톡톡히 제 할 몫을 해내며 극의 잔재미를 더한다. 세 배우의 조화로움이 영화의 맛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오는 28일 개봉이며 상영시간은 103분, 관람 등급은 전체관람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