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웅 편집국장의 VIEW] 냉전을 평화로 바꿔온 '올림픽 기적' ... 평창 도약대에 서는 한국

2018-01-28 18:02
2주 남은 동계올림픽... 한중일 평화체인은 시대적 소명

평창동계올림픽이 2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2년 뒤 2020년에는 도쿄 하계올림픽이 열리고 다시 그로부터 2년 뒤인 2022년에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이어진다. 모두가 한반도에서 전대미문의 핵전쟁 가능성에 대해 논란을 벌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한·중·일 3국의 시공간을 관통하는 ‘평화체인’이 시작된다.

일본의 스포츠 스타 아라카와 시즈카와, 다카하시 다이스케가 이미 평창 성화 봉송에 참여했고, 중국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이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차기 개최지 베이징(중국)을 소개하는 8분짜리 공연을 총지휘할 예정이다. 한·중·일 올림픽을 잇는 ‘평화체인’은 이제 첫걸음을 떼고 있는 것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창설한 쿠베르탱은 “사람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유치하고, 서로를 존중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서로를 존중하게 만들려면 먼저 서로에 대해 알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림픽이 바로 그런 무대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김재한 한림대 교수는 ‘올림픽의 평화 및 통일효과’라는 논문에서 "평창 올림픽 준비에서도 한반도 평화의 계기를 모색해야 한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냉전의 섬에서 세계의 냉전질서를 붕괴시키는 원심적 기능을 결과적으로 수행한 것이었다면, 그로부터 30년 후인 2018년 평창 올림픽은 탈냉전시대에서 냉전의 섬을 와해시키는 구심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되도록 추진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노태우시대의 재인식’이라는 책에서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집권 당시 냉전기류가 약화되고 있었고 서울올림픽 개최라는 시기를 맞이하여 동구권 국가와의 수교를 서둘렀고 본격적으로 냉전구도가 무너진 이후에는 소련 및 중공과의 수교를 달성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당시에 보수세력들은 노태우 정권을 거의 진보정권으로 인식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인식의 전환이 이렇게 어렵다.

하지만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는 ‘화합·전진’의 기치 아래, 전 세계 160개국이 참가해 올림픽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됐다. 당시 대한민국은 냉전시대의 끝자락에서 좌초되는 것이 아니라 탈쟁전으로 전환하는 국제정세의 주인공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지금 평창올림픽을 두고 ‘평화올림픽’이냐 ‘평양올림픽’이냐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절체절명의 핵전쟁 위기 국면 속에서도 미국은 올림픽 사상 최대 선수단을 보내는 등 이미 평창 올림픽은 인류 평화의 제전으로 성큼 다가서고 있다. 연이어 올림픽을 준비해야 하는 중국, 일본 등도 평창의 열기를 자국으로 연결시키는 데 신경이 곤두서 있다.

위안부 합의 파기를 따지겠다는 명분을 달았지만 어쨌든 아베 일본 총리도 평창을 방문한다. 평창은 평화올림픽으로 완성되어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고 이제 숙명적 길을 걷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꼭 17년 전인 2000년 9월 10일,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에 남북한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함께 입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남북한의 올림픽 개막식 동시입장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과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으로 이어지다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부터 중단됐다. 남북 동시 입장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분단국의 올림픽 참여와 국가 명칭은 늘 논란거리였다.

김재한 교수는 논문에서 “동서독은 1952년 헬싱키 올림픽 경기에 각각 단독으로 참가하려 하였지만, IOC는 ‘1국가 1NOC (only one NOC per country)’ 원칙에 따라 동서독선수단의 통합을 권고했다. 동서독은 1956년, 1960년, 1964년의 올림픽 경기에 독일연합(United Team of Germany), IOC의 공식 불어 명칭 EUA(Équipe Unifiée d'Allemagne)라는 단일팀으로 함께 참가했다”고 밝히고 있다.

가까워진다는 것은 처음에는 어렵지만 반복이 되면 습관이 된다. 쿠베르탱의 말처럼 먼저 서로 알게 하는 무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작금의 정세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자기 데스크 위에 핵버튼이 놓여 있다고 큰소리를 치는 상황이다.

“제3차 세계대전에서는 어떤 무기가 쓰일지는 모르겠지만, 제4차 세계대전에서는 분명히 돌과 나무 막대가 쓰일 것이다”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이 새삼 무겁게 다가오는 그런 정세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형성된 남북 대화 기조와 관련해 “6·25전쟁 이후 최악으로 무너진 남북 관계 속에서, 한반도에 다시 전쟁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상황 속에서 극적으로 마련된 남북 대화”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평창 올림픽이 (남북 대화 기조로 이어지지 않고) 그것만으로 끝난다면 그 후 우리가 겪게 될 외교 안보상의 어려움은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시 대화의 계기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백척간두(百尺竿頭)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 같다.
 
“평화는 새였습니다. 
총소리가 나자 다 날아가 버린 새였습니다.
지난 20세기는 특히 큰 전쟁들의 시대였습니다.
또한 지루한 냉전이 이어졌습니다.
이 무슨 비극인가.
그 냉전이 진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새들이 방황했습니다”

고은은 시 ‘평화의 노래’에서 이렇게 절규했다.

한반도에서 다시 총소리가 울려 ‘평화’라는 새가 놀라 날아가버리는 그런 시대를 맞이하면 안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평창 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승화시키고 ‘한·중·일 평화체인’을 구축하는 시발점으로 삼아야 함을 자각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국민적 의무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