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 冬夏閑談] 잉여(剩餘)의 시간

2018-01-05 05:00
남현희 전통문화연구회 번역실장

독서가 어느 때고 즐겁지 않으랴만,
깊고 적막한 겨울밤이라면 더욱 좋다.
(讀書無時不樂 而冬夜深寂之中尤佳, 독서무시불락 이동야심적지중우가)
- 정조(正祖), <일득록(日得錄)>

책 읽기 좋을 때를 가리키는 삼여(三餘)라는 말이 있다. 삼여란 세 가지의 잉여시간을 뜻하는데, 곧 한 해의 잉여시간인 겨울, 하루의 잉여시간인 밤, 계절의 잉여시간인 장마철이 그것이다. 중국 삼국시대의 동우(董遇)가 한 말이다.

동우는 학문을 좋아하여 그에게 배우려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한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다만 “책을 백 번 읽으면 의미가 저절로 나타난다(讀書百遍義自見, 독서백편의자현)”는 말만 해줄 뿐이었다. 배우려는 사람들은 책 읽을 겨를이 없다고도 하였다. 그들에게 동우는 삼여의 시간을 활용하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겨울에다 밤이면, 삼여의 시간에서 두 경우에 해당하니 책 읽기에 더욱 좋지 아니한가? 더구나 겨울과 밤과 비가 오는 날은 우리의 감성이 어느 때보다 풍부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물론 200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오늘날, 동우의 삼여가 여전히 잉여시간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망중한(忙中閑)이라고 하듯, 아무리 바쁘게 살아도 잉여시간은 있게 마련이다.

잉여시간이라고 그저 남아도는 시간이 아니다. 어쩌면 잉여시간이야말로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생존을 위한 업무나 학업에 쪼들리다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를 시간일 수도 있고, 독서나 취미를 즐기며 따분한 삶에 활기를 찾게 하는 시간일 수도 있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