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정위 로비스트법 시행, 변죽만 울리고 절차미비 논란 빚어···변호사·기업 불만 속출

2018-01-03 13:40
외부인이 공정위에 직접 보고하는 제도는 사실상 폐기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현대차·SK·LG·롯데 등 그룹 전문 경영진과의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법과 정치]

공정거래위원회가 새해부터 시행하는 공정위 직원들의 대기업 임직원 및 로펌 소속 변호사 접촉 제한 조치가 근거규정 미비로 논란을 빚고 있다. 공정위가 올해 처음 도입, 시행하는 ‘외부인 접촉 보고 제도’ 가운데 주요 규정의 법적 근거가 없어 당초 면밀한 법률 분석 없이 진행됐다는 지적이다.

3일 공정위에 따르면 공정위 직원들의 외부인 접촉 관리 규정 시행이 시작됐지만, 그 시행을 위해 마련됐던 주요규정이었던 '외부인 사전 출입등록제도'와 '윤리준칙' 등이 입법논의 과정에서 제외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부터 공정위 출입이 빈번한 외부인에 대해 사전등록을 하고, 이들을 상대로 내부직원과 접촉할 경우 상세 내역을 보고하도록 하는 등 윤리준칙을 준수하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대상은 공직자윤리법상 취업심사 대상인 김앤장 등 28개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와 회계사 가운데 공정위 사건을 담당했던 경력이 있는 이들이다.

또 자산 5조원이 넘는 57개 공시대상 재벌그룹 소속 1980개 회사의 임직원과, 공정위 퇴직자 중 로펌 및 대기업에 재취업한 사람이다. 공정위는 이들을 600명에 상당하는 인원으로 집계했다.

이후 행정규제기본법 7조에 따라 공정위와 같은 중앙행정기관이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하려면 규제영향분석을 해야’ 하는 것과 관련,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는 심사 과정에서 해당 규제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어 심사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행정규제기본법 4조에 따라 규제는 법률에 근거해야 하며, 법률에 근거하지 않고서는 국민의 권리를 제한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해당 규정을 제외한 채 내부 직원에 대한 지침만을 포함시킨 규정을 제정하고 시행하게 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훈령을 만들려면 상위법령과 같은 법적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이에 해당될 수 있는 로비스트법이 없어 비규제로 선회했다”며 “공정위 소속 공무원들이 외부인과 접촉하는 경우 감사담당관에게 보고하도록 의무화했다. 1월 시범운영을 통해 제도의 미비점·개선점을 보완하여 2월부터 정식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외부인의 투명한 출입과 공정위 공무원과의 접촉을 관리하는 로비스트 규정을 최초로 도입하겠다고 그동안 밝혀왔지만 이 역시 논란을 빚고 있다. 변호사업계와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서도 줄곧 문제점을 제기해왔다. 

한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는 “김 위원장이 미국 로비스트법을 따라 이 같은 규정을 만든다고 한 것인데 로비스트법 자체에도 위헌 요소가 많다”며 “관련 외부인 규정이 제외됐다 하더라도 공무원 입장에서 볼 때 만났던 외부인과 이야기한 것을 수시로 보고하라고 하면 적극적으로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공정위가 그렇지 않아도 팩트파인딩이 안 돼서 법원에서 패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앞으로 더 많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변호사도 “일부 공정위 공무원이 예외적인 현상을 근거로 공정위 공무원과 출신 전문가들, 공정거래 담당 변호사를 전부 범죄인을 전제로 사찰하겠다는 것”이라며 “기업의 경우에도 행정처분이나 처벌이 과하다 싶으면 소송을 가거나 위헌을 다퉈볼 여지가 있겠지만 요즘 분위기상 공정위 판결이 위헌으로 뒤집히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규정의 취지 자체는 좋은데 로펌 변호사, 기업인 등 공정위가 지정한 외부인들이 외부인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과 차별대우를 당할 소지가 생기며 이는 합리적 차별이 아니다”라며 “로펌이나 기업으로 재취업하는 공정위 공무원들도 있지만 행정사 등 다른 방향으로 전향하는 경우도 많다. 다른 식으로 우회하는 외부인이 있는 한 현재 규정으로 외부인 접촉을 완벽하게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지 교수는 이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도 있다. 대면 접촉뿐만 아니라 이메일, 통신 내역을 보고해야 하는데 어디까지 보고를 해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고 과도한 개인정보 유출의 소지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역시 “변론권 확대가 시대 흐름이고, 국민방어권이 보장돼야 하는데 검찰과 법원의 기능을 다 가진 공정위의 기능이 확대되는 것만큼이나 변호사의 변론권 보장도 중요하다”며 “기존 법조계의 과오나 관행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맞지만 그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젊은 변호사들까지도 규제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