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의 도시 이야기] 크리스마스의 설렘처럼
2017-12-20 06:00
크리스마스의 흥겨움을 전하는 캐럴 소리가 예전만 못하다. 그래서인지 연말연시의 느낌도 덜하다. 생업이나 갖가지 고민들로 지쳐 있는 이들에게는 크리스마스가 무슨 상관이랴 싶겠지만, 크리스마스가 전하는 행복과 따스한 온기가 필요한 사람도 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 생일을 기념하는 특정 종교의 축일 정도의 의미를 넘어 이제는 종교와 관계없이 세계인들이 즐기는 거대한 문화이며 축제이기도 하다. 선물을 가득 싣고 루돌프 썰매를 타고 나타나 선물을 건네는 산타나 크리스마스에 생각나는 영화·동화 속의 이야기들은 세계 곳곳의 도시들을 배경으로 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핀란드의 작은 도시 로바니에미(Rovaniemi)는 가장 분주한 도시가 된다. 산타가 사는 곳으로 알려진 로바니에미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아이들이 산타에게 보낸 편지가 도착하고, 매년 12월 23일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달하기 위해 떠나는 ‘산타 출정식’이 전 세계로 생중계된다.
로바니에미가 산타의 도시가 된 것은 특별한 역사적 근거가 없다. 산타클로스의 기원이 되는 성인 니콜라스(Saint Nicholas)가 마을을 지나가다가 가난한 농부가 딸들을 팔려는 것을 보고 굴뚝으로 금화를 넣어주었고 어린이를 좋아해 12월이면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었다던 그 배경의 도시도 아니다. 북위 66도 33분 북극권이 지나는 곳에 위치하고, 루돌프를 연상하는 순록도 있고, 엽서에 나올 만한 아름다운 북유럽의 풍경을 지닌 덕분에 “산타가 로바니에미에 산다”는 한 마디가 라디오 방송을 탄 것이 발단이었다.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를 입힌 도시 외에도 슬픈 크리스마스 사연으로 유명한 도시가 있다. 동화보다도 애니메이션으로 더욱 사랑을 받은 '플랜더스의 개' 네로와 파트라슈 이야기의 배경이 된 벨기에의 도시 앤트워프(Antwerp)이다. 네로는 할아버지, 수레 끄는 반려견 파트라슈와 함께 우유배달을 하며 사는 가난한 소년이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화가 루벤스를 존경하여 앤트워프 성당에 걸린 그의 작품을 보고 싶어 하지만 관람료인 ‘금화 한 닢’을 낼 수 없어 휘장으로 가려진 그림을 볼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곁에 파트라슈만 남은 네로는 오로지 미술대회 입선만을 꿈꾸며 살아간다. 하지만 혼신을 다해 그린 출품작이 낙선하고 우유배달 일이 끊겨 세든 집에서도 쫓겨나게 된 네로는 마을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아 방화범의 누명마저 뒤집어쓴다.
모든 희망을 잃은 네로는 굶주리고 추위에 떨며 길을 맴돌다 크리스마스 이브 자정 미사가 끝난 뒤 문이 열려 있는 성당에 들어가 꿈에 그리던 루벤스의 그림을 보게 된다. “그림들을 봤어. 이제 소원을 이룬 거야. 지금 정말 행복해. 그런데 좀 피곤해 졸리고··· 너도 그렇지···.” 여한이 없는 표정으로 네로는 크리스마스 아침 파트라슈와 함께 얼어 죽은 채 발견된다. 이 슬픈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있는 앤트워프는 성당 앞에 보도블록을 이불처럼 덮고 잠이 든 네로와 파트라슈 모습을 남겨 루벤스의 그림과 더불어 크리스마스를 기억하는 특별한 도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