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교칼럼] 한중 정상회담에 대한 성찰

2017-12-18 20:00

[서성교칼럼]

 

                            [사진=서성교 초빙논설위원·바른정책연구원장]



한중 정상회담에 대한 성찰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얻은 것 보다 잃은 게 너무 많다. 안하느니만 못한 ‘국빈방문’이 되었다. 귀중한 카드 하나를 그냥 버린 셈이 되었다. 향후 정부의 외교관계와 활동이 걱정된다. 외교 방식과 역량에 많은 문제점을 노정했기 때문이다. 외교의 실패는 단지 정부의 실패로만 끝나는 게 아니다. 단순한 국가이익의 손해가 아니다. 안보와 경제의 이중 손상(double damage)에 그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중국 방문의 자초지종을 성찰해 보아야 한다. 과거 5년간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보좌한 경험이 있기에 어렵지 않을 것이다. ‘기대 이상의 정상회담’ ‘120점 짜리 정상회담’이라는 자화자찬은 거두절미해야 한다. ‘이전 정부의 외교 참사를 복원하기 위한 충심’이라는 아부도 무시해야 한다.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입장에서 준비와 실행 과정을 엄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잘못된 과오에 대해서는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문제가 된 시스템과 메커니즘은 철저하게 고쳐야 한다. 외교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
먼저 이번 방중은 너무 조급하게 추진되었다. 게임에서 마음이 초조해져서 평정심을 잃으면 패배한다. 외교 관계에서도 강자는 여유가 있고, 약자는 성급하다. 그래서 약자는 늘 끌려가게 마련이고, 소탐대실(小貪大失)한다. 바둑 고수로 알려져 있는 문 대통령이 이런 상황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초읽기에 들어가더라도 여유를 가져야 한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 대국의 흐름을 보면서 이기는 수를 생각해야 한다.
중국은 이번 회담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우선 중국 내부가 바쁘다. 지난 10월말 19차 전당대회 이후 새 지도부 안착과 정책 구상에 여념이 없다. 지도부가 내부 일정으로 바쁜데 무리하게 회담 일정을 추진했다. 시점도 좋지 않았다. 중국은 대국굴기(大国崛起)의 기치를 본격적으로 내들었다. 국력에 걸맞는 국제적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이웃 국가들에게 부담이다. 중화(中華)란 중국 중심으로 주변국들을 수직적으로 관리하는 외교방식이다. 중국의 ‘핵심이익’이 걸려있다는 사드 문제는 미해결상태이다. 한중 수교 25주년 이라는 의미를 살리기에는 중국 상황에 대해 몰이해 정도가 컸다. 오히려 중국의 요청을 기다리는 전략이 더 나을 수도 있었다.
무리한 정상회담을 추진하다 보니 많은 혼선이 빚어졌다. 한탕주의에 급한 정치인들 때문에 외교부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번 방중에는 여당 실세 정치인들이 동행했다. 친노 좌장인 이해찬, 중국통인 박병석과 송영길 의원이 참여했다. 이해찬 의원은 5월 중국 특사 방문 이후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물 밑 작업을 했다. 중국도 수차례 다녀오고, 왕이 외교부장 등 지도부도 만났다. 하지만 아젠다 세팅과 이슈 해결 방안은 준비하지 못했다. 오히려 사드 철회에 대한 섣부른 약속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교부는 배제되었다. 손발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대통령 일정이 세련되게 정리되지 못했다. ‘혼밥’ 이라는 국빈 방문에서 있을 수 없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각종 행사도 주최하는 단체마다 좌충우돌이었다. 현장에서는 서로 공을 다투기 일쑤였다. 남의 집 마당에서 우리끼리 잔치를 벌이는 상황이었다. 중국 경호원들의 한국 언론인 폭행까지 발생했다. 외교부는 이슈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한마디도 내놓지 않았다. 어차피 ‘남의 잔치’에 싫은 소리 할 필요가 없었다. 노영민 대사는 자국 대통령 영접을 외면하고 중국 행사에 참석했다. 아무리 대통령 지시가 있었더라도 외교 기본은 지켜야한다. 강경화 장관은 외교부에 대한 통솔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대통령 눈도장 찍기에만 바빴다는 전언도 있다.
한중 정상회담을 지켜본 국민들은 자존심이 상했다. 대한민국의 자신감과 당당함은 한줄 찾아보기 어려웠다. 260여명의 대규모 경제인들이 동행했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경제 채널 재가동 약속이 성과라면 성과다. 한 때 8만명이 거주했지만 지금은 1/3으로 축소된 베이징의 왕징 한인타운의 기운도 되살리지 못했다. 이런 문 대통령의 방중에 대해 미국과 일본, 북한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미국은 동맹에 대한 배신감을, 일본은 경계심을, 북한은 안도감을 가지지 않았을까?
문 대통령의 방중 메시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대통령으로서의 체면과 자존심이 다소 손상되어도 괜찮다. 대우가 다소 소홀해도 좋다. 형식에는 상관없다. 일단 만나서 문제를 풀자. 전쟁을 방지하고, 경제 제재를 조금이라도 풀 수 있다면 좋다. 순수한 의도와 충정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외교 목적은 선한 의도만으로 달성되지는 않는다. 능력이 뒤따라야 한다. 상대에 대한 냉철한 인식과 판단과 협상이 수반되어야 한다. 특히 정상회담은 마지막 도장을 찍는 자리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격식과 대우와 메시지가 필수적이다.
공교롭게도 시진핑 주석이 문 대통령에게 바둑판과 바둑알을 선물했다. 문 대통령과 시 주석 모두 바둑 애호가들이다. 바둑을 즐기라는 배려인지 아니면 제대로 바둑을 두라는 충고의 의미인지? 작년 6월 박근혜 전대통령도 시 주석에게 바둑판을 선물한 바 있다. 미국의 전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중국의 외교는 바둑’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환경은 더 악화되고 있다.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외교의 새판이 필요하다. 그 첫출발은 자격과 함량 미달한 외교 참모들의 과감한 경질이다. 동시에 외교 시스템의 근본적인 쇄신이 필요하다. 
(※ 위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