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진칼럼] 새 MBC, MB정권 흔들던 기세 현 정권에도
2017-12-10 20:00
[허남진칼럼]
새 MBC, MB정권 흔들던 기세 현 정권에도
MBC에 일진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MB(이명박)정권 때 해고됐던 최승호PD가 사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하면서다. 최 사장과 함께 해직됐던 6명이 즉각 복직했고, 간판 뉴스 앵커가 예고도 없이 하차했다. 2010년부터 뉴스데스크 진행을 맡아온 배현진 앵커는 8일 인사도 못한 채 화면을 떠났다. 보도국장을 비롯한 주요 부서장들도 전격 교체됐다. 최 사장과 함께 파업을 이끌다 한직으로 밀려났던 인사들이 전면에 포진했다.
옷 벗은 지 5년 남짓. 맺힌 한(恨)을 품고 점령군이 되어 돌아온 최 사장 팀. 가뜩이나 강성 인사로 알려진 최 사장이라 그가 펼칠 ‘개혁’의 파장이 만만찮겠다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과연 그 파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비상한 관심을 모으며 한쪽에선 환호하고 다른 쪽에선 심각한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적폐 청산 작업이 인적 청산을 시작으로 이뤄지는 건 어느 정도 이해되기도 한다. 충격파에 따른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서다. 문제는 인적 청산을 넘어 본질의 내용면에서, 또 제도적으로 확실하게 적폐 청산이 이뤄질 것이냐는 점이다. 그 성패는 방송의 공정성 확보 여부에 달렸고, 첫 번째 리트머스 시험지는 정권으로부터의 거리감이라고 본다.
이어 방문진 이사 9명 중 야권 추천 위원 4명이 퇴장한 가운데 여권 추천 이사 5명이 두 차례 투표 끝에 만장일치로 최 사장을 선임했다. 방문진 측은 "정치적으로 독립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선임했다"고 정치적 독립성을 각별히 강조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구여권 측은 그걸 믿지 않는다. 김장겸 전 사장 퇴임부터 최 사장 임명에 이르는 전 과정이 “민주당의 방송장악 로드맵대로 진행된 것”이라며 그 증거로 “노조원들의 홍위병식 폭력”을 거론하고 있다.
구여권 집권시절 구성된 방문진 이사회는 당시 여당 추천 6명과 야당 추천 3명으로 이뤄졌다. 현 민주당 정권에 맞춘 역 6:3 구도가 되려면 이들 이사의 임기 3년이 끝나길 기다려야 한다. 그게 너무 길게 느껴진 걸까. 노조원들은 구여권 추천 이사 2명을 표적 삼아 집과 교회로 쫓아가는 등 온갖 험한 욕설을 퍼붓고 가족들의 신상까지 들춰냈다. 두 사람은 끝내 이사직을 내놨고 그 자리에 민주당 추천 인사가 앉아 여야 구도가 5:4로 역전됐다. 김장겸 퇴출과 최승호 선임의 동력이 마련된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당 측은 “청와대-민주당-MBC노조의 합작품”이라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한다.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지난해 12월 중순. 문재인 대권 유력후보는 암투병 중이던 MBC 해직기자 이용마씨를 찾아 위문한다. 언론 적폐 청산과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 등을 화제로 이야기하다 문 후보는 “언론탄압 앞잡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이 기자는 아픈 몸을 이끌고 지난 10월 MBC노조의 ‘파업 콘서트’에 참석해 동료들을 격려했고, 최근 출간한 책 ‘세상은 바꿀 수 있다’로 지난 1일 리영희상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각별히 챙긴 이용마 기자. 그와 해직이란 같은 배를 탔던 최승호 PD. 그런 연결고리가 알음알음으로 전해지며 MBC 주변으로 심정적 공감대가 확산되지 않았을까.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언론윤리나 원칙에 크게 벗어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사장 임명 절차요 제도다. MBC는 물론 KBS 등 공영방송 사장은 정치권이 임명토록 돼 있다. 양사 이사들에 대한 임명권을 쥐고 있는 방송통신위원 5명이 여야 몫 3:2로 구성된 자체부터가 어색하다. 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양사 이사들에 대한 임명권한이 여야 정당들에 주어져 있다는 점이다. 방송법이나 방문진법 등 법조문 어디에도 근거 조항이 없지만 각 정당들이 자기 멋대로 KBS 이사 11명은 여야 7:4로, MBC 이사 9명은 6:3으로 ‘나눠 먹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그게 관례란다. 이번에 새로 임명된 방문진 이사 2명은 민주당에서 면접까지 실시했다고 전해진다.
임원 선임은 물론 방송의 내용까지 간섭할 수 있는 막강 권한의 양사 이사회가 송두리째 정치권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것도 집권당의 입맛대로 굴러가도록 짜여진 구도다. 이러한 구도에서 방송의 정치 중립성 또는 독립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최 사장은 취임 첫 일성으로 국민 신뢰 회복을 약속했다. 지난 시절 정권에 대한 비판의 칼날이 무뎌 신뢰를 잃었다는 게 MBC 내부의 자체 평가다. 그렇다면 신뢰회복의 첫 단추는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날 선 보도라고 본다. PD수첩의 최 PD는 당시 MB정권을 뒤흔든 것으로 유명하다. 그때의 용기와 기세가 현 정권을 향해서도 똑같은 무게로 펼쳐져야 한다. 그래야 시청자들은 현 정권과 새 지도부가 서로 ‘짬짜미’가 아니라고 믿지 않겠는가.
아울러 정치권의 입김을 완전 배제할 수 있는 제도 마련으로 방송 적폐 청산의 대미가 장식되길 바라며 그 길에 MBC가 앞장서 주길 주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