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118] 마르코 폴로는 大元제국에 갔었나? ①

2017-12-20 08:40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실존인물 여부 논란

[사진 = 마르코 폴로 추정도]

마르코 폴로는 과연 실존 인물인가? 그가 15년 동안 대원제국에 머물면서 자신이 기록한 모든 것을 경험했는가? 이 의문은 지금도 세계 역사학자들 사이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마르코 폴로라는 인물이 기술해서 만들어졌다는 우리에게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책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다.

또 이 책에 담긴 내용이 어떤 역사 서적보다 자세하고 방대하게 13세기 쿠빌라이가 다스렸던 대원제국의 상황을 기록했다는 점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마르코 폴로의 실존 여부는 역시 학자들의 몫으로 남겨 놓자. 따라서 여기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책에 담겨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마르코 폴로의 삶과 그가 동서양의 관계에 끼친 영향 등을 살펴보자.

▶ 예술․낭만․축제의 도시

[사진 = 베네치아]

물의 도시 베네치아(Venezia)는 정말 여러 가지 특이한 이미지를 안겨준다. 섬과 바다, 운하, 다리 그리고 그 위를 떠다니는 곤돌라(Gondola), 이런 것들은 바다 냄새에 물씬 젖어 있는 수상 도시가 가져다주는 기본적인 이미지다. 베네치아보다는 영어식의 이름인 베니스(Venice)로 훨씬 더 알려진 이 도시는 또 영화제와 비엔날레 등 예술 행사로도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사진 = 베네치아 곤돌라]

배우 강수연이 '씨받이'로 여우주연상을 탄 것이 베니스영화제고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것도 베니스 비엔날레(Biennale)다. 사순절 기간이면 가면 속에 얼굴을 묻고 일탈을 즐기는 가면 축제와 9월 첫 주 일요일에 열리는 곤돌라 축제는 베네치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연회 한마당이다. 이러한 것들이 던져주는 것은 예술의 도시, 낭만의 도시 그리고 축제의 도시 이미지다.

▶ 베네치아 富가 남긴 이미지
성 마르코(St. Mark) 광장과 동방의 냄새를 흠뻑 풍기는 특이한 건축물들, 이 도시의 상징인 사자와 비둘기, 이 모든 것 역시 독특한 베네치아의 이미지에서 빠뜨릴 수 없다. 이러한 이미지들의 대부분은 10세기에서 15세기까지 5백년 이상동안 중세 해상교역의 중심지로서 번영을 누렸던 베네치아의 역사가 남겨 놓은 유산들이다.

특히 동서 교역의 유럽 전진기지로서 베네치아의 상인들이 쌓은 부가 베네치아의 이미지를 만드는 밑바탕이 됐을 것이다.

▶ 샤일록과 마르코 폴로

[사진 = 영화 ‘베니스상인’ 포스터]

이 시대 베네치아의 상인하면 떠오르는 두 사람이 있다. 한사람은 세익스피어(Shakespeare)의 소설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Shylock)이다. 물론 작품에 나오는 베니스의 상인은 안토니오(Antonio)고 샤일록은 베니스에 사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지만 얘기의 중심은 단연 샤일록이다. 빚을 갚지 못한 베니스 상인의 살 1파운드를 칼로 베려다 실패한 유대인 채권자의 황당무계한 얘기 속에서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 상인들이 지녔던 경제적 삶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사진 = 마르코 폴로 공항]

세익스피어가 쓴 ‘베니스의 상인’이 소설 속의 인물이라면 또 한 사람의 베네치아 상인 마르코 폴로는 실존했던 인물이다. 베네치아에 첫발을 딛게 되면 제일 먼저 이 마르코 폴로를 만나게 된다. 베네치아 인들은 마르코 폴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의 이름을 이 도시의 공항 이름에 붙여 두었기 때문이다.

▶ 바다에 기대여 살아 온 물의 도시

[사진 = 대원제국 점령지]

베네치아의 역사는 6세기쯤부터 시작된다. 이민족의 침입에 쫓겨 온 피난민들이 아드리아해(Adriatic Sea) 개펄에 마을을 만들면서 베네치아의 역사는 시작된다. 이후 나폴레옹이 이 도시를 점령할 때까지 무려 1,100여 년 동안 이민족에게 점령당하지 않고 도시공화정아래 발전을 계속했다. 초기에는 고기잡이와 소금 제조 등 바다에 기대여 살아왔지만 바다에 둘려 싸여 있는 환경 속에서 베네치아가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별로 없었다.

초원에 살면서 고기와 유제품 외에 별로 얻을 것이 없었던 과거 유목민들은 전쟁을 통해 물자를 조달하는 경우가 잦았다. 하지만 베네치아는 장사를 통해 부족한 것을 메워나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바다는 베네치아 인들에게 살길을 제시해준 셈이다. 다만 최근에 와서 지반이 내려앉고 있는 데다 수면까지 상승해서 이제는 물에 잠기는 것을 걱정해야할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 동방교역의 선두주자로 부상(浮上)
베네치아는 지리적으로는 서유럽에 가까웠지만 정치적으로는 비잔틴제국에 기울어져 있었다. 현실적이고도 냉정한 이러한 선택이 서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를 잇는 해상무역을 독점하면서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줬다. 이런 상황에서 십자군의 원정으로 동방교역이 확대되면서 교역권 장악을 위한 주도권 경쟁에도 뛰어들었다.

그리고 14세기에는 주변의 경쟁 도시들을 누르고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했다. 서유럽지역에서 동방무역을 거의 독점하며 전성기를 구가하게된 것이다. 십자군 원정으로 서에서 동으로의 길이 넓혀지고
몽골의 유라시아 지배에 의해 몽골의 평화, 즉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의 시대가 찾아오면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길도 안전이 확보돼 가는 시기에 베네치아는 이미 교역의 전성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마르코 폴로 일가는 바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안고 동방으로의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 생존 당시 자료 부족

[사진 = 마르코 폴로-넷플릭스 제작]

마르코 폴로에 대한 얘기는 소설로, 영화로, 또 TV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여러 차례 소개됐다. 몇 해 전에는 미국의 OTT(Over The Top)업체 넷플릭스(Netflix)가 대표작으로 제작해 인기를 끌었다. OTT란 인터넷을 통해 각종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하지만 후세에 이름을 남긴 어떤 사람보다 그의 생애와 성장 배경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다.

때문에 그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픽션(Fiction)이 상당부분 가미된 내용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가 죽을 때 남긴 유언장 등 몇 가지가 그가 실존인물임을 입증해주고 있고 그가 살았다는 집이 베네치아 대운하 변에 있어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것들이 베일에 덮여 있다.

그래서 마르코 폴로의 생애는 대부분 그가 남긴 저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 것도 그가 남겼다는 세계의 묘사, 즉 동방견문록의 원본이 사라지고 없는 상황이어서 조금씩 내용이 다른 여러 사본에서 찾아내 추정할 도리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정리해 보면 그의 생애와 동방여행 과정이 대략 그려진다.

▶ 17살에 동방 여행길 출발

[사진 = 마르코 폴로 동방여행]

마르코 폴로는 1254년 베네치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보석상인인 아버지 니콜로(Niccolo)와 숙부 마테오(Mateo)는 동방여행을 떠나고 없었다. 그의 아버지와 숙부는 동방여행 중에 전쟁으로 길이 막혀 베네치아로 곧바로 오지 못하고 동방으로 돌아오려다 몽골제국이 다스리던 중국 땅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쿠빌라이를 만났다. 그들의 얘기를 들은 쿠빌라이는 기독교에 흥미를 느끼고 선교사를 파견할 것을 의뢰하는 서신을 교황에게 전달하는 사신 임무를 부여했다.
 

[사진 = 마르코 폴로 가족]

그 때가 1269년으로 쿠빌라이가 정권을 장악한 뒤 남송 공략을 위한 양양 번성 작전에 막 착수한 때였다. 마르코 폴로는 그의 부친과 숙부가 동방여행을 떠난 뒤 태어났다. 그리고 곧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 정상적인 어린 시절을 보내지는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정규교육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15살 때 동방여행에서 돌아온 아버지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2년 뒤 그의 부친은 두 번째 동방여행을 떠나면서 당시 17살이었던 마르코 폴로를 데리고 긴 여정 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