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한국산업, 자신감을 갖자
2017-12-05 17:45
직경 21.2㎝의 뒷면에 0.03mm의 동심원이 1만3300여개나 그려져 있다. 선의 굵기와 간격 모두 마이크론 단위다. 청동기시대였던 당시, 마이크론 단위의 선을 동(구리)에 그린 게 아니라 모래로 형틀을 만들고, 모래 형틀에 그림을 그린 후 동을 부어서 만들었다. 현재의 기술로도 이를 재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경기도 기흥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려고 땅을 팠더니 다뉴세문경 형틀공장이 나왔다. 이곳에서 한국은 반도체 세계 1위의 기틀을 세웠다.
한국의 동굴과 무덤 등을 찾아가 보면, 그 시대의 상황을 그려놓은 벽화가 많다. 한국처럼 벽화를 많이 그린 나라는 흔하지 않다. 한국은 브라운관(CRT)으로부터 시작해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액정화면(LCD), 발광다이오드(LED),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 이르기까지 디스플레이 산업을 가장 앞서 주도하고 있다.
19세기 말 조선 후기 풍수지리가라고 알려진 이성지는 현재 포항시 송정동 일대의 영일만 백사장을 둘러보고 "어룡사에 대나무가 나면(竹生魚龍沙) 수만명이 살 만한 땅이 된다(可活萬人地). 서양문물이 동쪽으로 올 때(西器東天來) 돌아보면 모래밭이 없어지리라(回望無沙場)"라는 예언시를 남겼다. 여기서 ‘어룡사’란 현재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들어선 백사장 일대를 일컫는 지명이다. 오랜 시간 사람들은 모래사장뿐인 이곳에 대나무가 날 일이 없어 처음에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러다가 하늘을 찌를 듯한 제철소 굴뚝이 대나무처럼 우뚝우뚝 서고 이 일대가 큰 도시로 번창하자, 그제야 이성지의 예언이 적중했다며 감탄했다. 현재 포스코는 세계 최고의 철강업체로 성장했다.
신라의 무장으로 청해진을 설치하여 당나라와 신라,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을 주도한 장보고가 해신(海神)으로 불릴 수 있었던 것은 배 덕분이었다. 당시는 목선이 주를 이뤘는데, 바다에 오래 떠 있으면 목선은 물을 먹어 가라앉는다. 당시 한반도에서 인도양까지 먼 항해가 가능한 배를 만드는 기술은 우리나라밖에 없었다. 여기에 선원들의 머리가 좋아 외국어를 배워 중국말·일본말·우리말 통역도 가능했고, 뛰어난 항해술까지 지녔다. 이러한 재능을 이어받아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는 세계 최초의 철갑선을 건조했고, 뛰어난 항해술을 활용해 왜적과의 해상전에서 전승을 거뒀다. 지금 글로벌 조선 1·2·3위 업체가 한국기업이다.
서울 남산에 가면 봉화대 5개가 있다. 제주도에도 있고, 전국 요지마다 봉화대가 설치되어 있다. 원거리 통신을 위한 봉화대는 어느 것을 피우느냐에 뜻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한 개를 피우면 “조금 있다 올 테니 기다려라”는 뜻이다. 봉화의 작동 순서가 ‘원·제로’, ‘원·제로’다. ‘0’과 ‘1’로 이뤄지는 이진법 조합을 활용하는 디지털과 매우 유사하다. 한국의 디지털 통신 경쟁력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한국 산업이 어떻게 세계 최고의 지위에 올랐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있는 사례는 너무나 많다. 아산(峨山)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말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하려야 더 할 게 없는 최선을 다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거슬러 올라가 이러한 사례를 접할 때면 우리 조상들이 이미 2000여년 전부터 한국 산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주신 것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라고 생각해본다.
2017년 정유년(丁酉年)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우리 기업들은 올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역량을 발휘해 한국경제 곡선을 성장으로 반등시켰다. 그렇다고 안심하기엔 이르다. 내년에는 ‘스피드 경쟁, 융·복합 경쟁’이 더욱 거세질 것이다. 불안해하지 말고, 우리의 정신에 내재된 우수성과 역량을 믿고 뛰어보자. 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다는 자심감을 가져야 할 때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경영진 세대교체와 조직개편을 통해 경쟁을 주도할 대비를 하고 있다. 남은 기간 잘 마무리해 내년에는 보다 반가운 소식이 들리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