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101] 강화도는 천혜(天惠)의 요새인가?
2017-12-02 10:50
바다지만 마치 강과 같이 보인다고 해서 염하로 불렀던 이 해협은 좁은 곳은 200-300m, 제일 넓은 곳이 1Km정도 된다. 최대 유속은 약 3.5m/sec 정도로 물살이 거세고 수심이 얕다. 고려가 몽골의 침공을 피해 강화로 천도(遷都)한 것은 1236년 7월, 2백년 도읍지 개경을 버리고 강화도로 천도했던 고려는 이후 천연의 요새인 강화에 머물면서 34년간 몽골에 대항했다.
▶ 천연 장애물 손돌목 급류
▶ 급류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손돌
급한 조류가 이는 지점의 이름이 손돌목이라 불려 지게 된 연유도 몽골의 고려 침공과 관련해 얘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강화로 피난가게 된 고려왕 고종이
손돌이라는 뱃사공의 배를 타게 됐는데 배가 광성진 근처에 이르자 물살이 거세어지면서 심하게 요동을 쳤다.
피신 길에 있는 왕인지라 의심이 많아 뱃사공이 자신을 죽이려한다고 생각하고 목을 베도록 명령했다. 손돌은 지형이 원래 그런 곳이라며 하소연했지만 왕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손돌을 처형했다. 죽음을 당하기 전에 손돌은 바가지를 하나 건네면서 바가지를 물에 띄우고 바가지가 가는 대로 따라가면 바다를 건널 수 있을 것이라는 유언을 남겼다. 왕도 별수 없이 그의 말에 따랐고 그 결과 무사히 바다를 건널 수 있었다. 강화도에 도착하자마자 회오리바람이 불자 왕은 뒤늦게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강화 사람들은 광성진 앞 수로를 손돌이 억울하게 죽은 곳이라 해서 손돌목이라 부르게 됐다.
▶ 천도 후 방어진지 구축
고려는 몽골군이 수전에 약하다는 약점을 최대한 활용해 강화도로 천도한 뒤 다가올 침략에 대비했다. 우선 43리(里)에 이르는 외성을 흙으로 쌓고 내성 안에는 궁궐을 지어 장기전에 대비했다. 육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는 북문을 설치하고 바다 쪽에는 서문을 세웠다.
강화는 섬이면서도 분지형태를 취하고 있어 군사적 방어진지로서도 유리한 입지를 지니고 있다. 해안가는 거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안은 넓은 평야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에 방어 진지로서는 더 없이 훌륭한 곳이었다.
▶ 육지로 연결된 섬
▶ 이규보, 육지 쪽 몽골군 조롱
고려의 이름난 문인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의 시다. 좁은 바다를 건널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맞은 편 육지에 나타나 위협적인 시위를 벌이며 섬에서 나올 것을 종용하는 몽골군의 모습을 조롱하고 있다.
▶ 몽골, 강화 공략 못한 이유는?
강화도가 이처럼 건너기 어려운 수로를 앞에 두고 있고 전략적으로 이점을 지닌 군사 요충지라는 점을 인정 할만하다. 그래도 단지 그 때문에 당시 세계 최강의 군대인 몽골군이 30여 년 동안 강화도를 공략하지 못했다는 것은 어딘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 것도 이유가 되기는 했겠지만 그 것만이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경우에 따라서는 해자(垓子)로 둘러싸인 성을 공격하기 위해 말가죽에다 공기를 불어넣은 뒤 길게 이어 부교를 만드는 기술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지닌 몽골이 전력을 기울여 강화도를 완전 접수하겠다는 마음만 먹었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물의 벽’ 넘는 공격 가능했을 듯
특히 수로가 2-3백m 정도로 폭이 좁은 곳을 골라 배에다 회회포를 싣고 조금만 섬 쪽으로 접근해 집중 공격을 했다면 섬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토성도 방어벽으로서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사거리가 5백 미터가 넘는 투석기는 아마도 토성을 넘어 그 안쪽에 돌멩이 세례를 퍼부었을 것이다. 남송의 여문환이 견디지 못하고 성문을 열었던 것처럼 고려 조정도 오래 견디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도 몽골군은 전혀 그런 방법을 동원할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
또 중국의 한인(漢人)들을 수전에 활용하거나 포로로 잡은 육지 고려인들을 강압적으로 동원할 수도 있었을 터지만 그 방법 역시 시도한 적이 없었다. 그 오랜 세월을 대치하는 동안 몽골은 한 번도 제대로 된 공격을 펼친 적이 없었다. 물론 육지의 고려 땅은 그 동안 몽골군에게 철저히 유린되기는 했지만 적어도 고려의 조정과는 지루한 대치상태만 이어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몽골이 고려와의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어가면서 강화도를 점령하지 않거나 점령하지 못한 또 다른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42년간에 걸친 고려와 몽골간의 전쟁을 살펴보면서 그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자. 고려와의 몽골간의 전쟁 과정은 우리 역사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또 자료를 구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지만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훑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