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호랑이 아버지 없었으면 불곰 이승택도 없었죠”
2017-11-23 00:00
지난 17일 경기 광주시에 있는 골프 연습장에서 만난 이승택은 “60타는 전환점이 됐죠. 평생에 한 번 하기 힘든 기록이잖아요. 덕분에 자신감을 많이 얻었습니다. 팬들에게 저를 알릴 수 있는 계기도 됐구요”라고 회상했다.
60타를 칠 당시 이승택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신기록을 향해 불곰처럼 저돌적으로 돌진했다. 불곰은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집중을 하게 되면 하나에만 달려드는 것이 꼭 곰과 닮았기 때문이다. 곰 같은 외모에 얼굴이 자주 빨개져 불곰이라는 별명이 완성됐다.
이승택의 불곰 같은 공격적이고 시원한 골프는 호랑이 같은 스승 아버지 이용수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말 골프가 좋아?”라는 아버지의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한 이승택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골프를 시작했다. 아들의 꿈을 확인한 아버지는 확 달라졌다. 마음 한 편이 아프지만 호랑이 같은 스승으로 변했다. 혹독한 연습이 이어졌다.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공식 훈련을 한 후, 집에 와서는 아버지와 함께 마주 서서 빈 스윙 500개씩을 함께 했다. 이런 노력들이 쌓이고 쌓여 이승택 특유의 장타가 완성됐다.
아버지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캐디다. 평소에 아들과 몸 장난을 칠 정도로 격의가 없지만, 골프에 있어서만큼은 양보가 없다. 이용수씨는 “티박스에 서기 전까지는 천사가 돼야 하지만 티박스에 올라가는 순간 전사가 돼야 한다”는 말을 아들에게 해줬다. 아버지는 가장 무서운 스승인 동시에 가장 편한 친구다. 이승택은 “아버지랑은 1년 내내 함께 대회를 해도 편하다. 한 시즌을 보내면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는데 아버지와 함께 하면 많이 풀린다. 남들이 가지지 못한 강점이다. 매년 시즌이 끝나면 아버지에게 ‘한 번 더 도움을 주십시오’라고 부탁드린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고 말했다.
이용수씨에게 이승택은 프로 골프 선수이기 이전에 아직은 어린 하나뿐인 아들이다. 아들이 아프면 아버지는 더 아프다. 이승택은 지난 5월 장수에서 열린 2차 카이도시리즈 대회 이후 체중이 10kg이나 빠지면서 어려움을 겪었고, 이후 열린 3개의 대회에서 부진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 시름시름 앓는 승택이를 지켜보면서 가슴이 아팠다”며 눈물을 훔쳤다.
2017년 KPGA 제네시스 포인트에서 최진호, 이정환, 이형준에 이어 4위에 오른 이승택은 새로운 도전을 위해 비시즌에도 분주하다. 1월초에는 태국에서 열리는 아시안 투어 큐스쿨에 참가하며, 이후에는 필리핀에서 전지훈련을 시작한다. 이승택은 “여러 번 외국 무대를 경험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외국 대회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아시안 투어에서는 어떤 기술을 사용하고 그들만의 골프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아시안 투어 이후에는 차근차근 일본 투어 도전을 계획하고 있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큐스쿨 이후 치를 필리핀 전지훈련에서는 체력과 어프로치, 쇼트 게임을 집중적으로 보완할 계획이다. 프로에서 첫 승을 하는 것과 세계랭킹을 끌어올려 2020년 도쿄 올림픽, 2024년 파리 올림픽에 나가는 것이 이승택의 목표다.
하지만 이승택에게는 이런 가시적인 목표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팬들에게 공격적이고 시원시원한 이승택만의 골프를 선보이는 것이다. 이승택은 지난 9월 열린 제네시스 오픈 마지막 홀에서 수천 명의 팬들이 자신의 이름과 별명인 불곰을 환호해준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승택은 “다시 한 번 골프를 하는 이유가 뭔지 생각하게 됐다.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프로로서 멋진 플레이를 보여드리고 싶다. 그래서 내년에는 팬들에게 더 다가서고 싶다”며 “곰이 좀 더 성장해서 오겠습니다”라고 씩씩하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