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평규 칼럼] 의료협력 제안해오는 중국
2017-11-07 07:00
구미 선진국보다 효율적인 의료시스템, 고도의 의료기술, 문화적 동질성 등이 이유
중국 공산당 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을 집권 2기 중점정책으로 제시하며 의료개혁을 통한 신시대 국민건강 증진을 국가적 최우선 과제의 하나로 채택했다. 중국 인민들의 봇물 터지듯 넘치는 기본 및 고급 의료서비스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지난해 8월 26일 중앙정치국회의에서 심의를 통과한 '건강중국 2030((Healthy China 2030)' 행동강령은 2030년까지 국민건강을 국가적 최우선 발전전략 목표로 삼고 사회주의 현대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도시와 농촌간 의료서비스 격차를 해소하며 아동·노인·부녀·장애인·저소득 계층의 보건 의료 서비스 개혁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중국의 의료현실은 '칸빙난,칸빙꾸이(看病難, 看病貴·병을 보이기도 어렵고, 비싸다)'로 요약된다. 중국은 우리와 달리 아는 사람의 소개가 없으면, 돈이 있어도 진료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유명한 의사의 문진표(진료접수증)는 수십만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그리고 약값도 폭리에 가깝게 비싸다.
중국 국민들은 경제발전에 따른 소득 증대로 의료비를 지출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러나 의료수준은 환자의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의료비로 얼마를 지출하든지와 관계없이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갈망한다. 오래 전부터 돈 많은 사람들은 이미 의료 선진국을 찾아 의료쇼핑에 나서왔다.
의료 기술이나 서비스는 공장을 짓고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면 금방 수준이 높아지는 제조업과 다르다. 의사 및 의료인을 양성하고 서비스를 시스템화 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법과 제도, 그리고 인력 및 장비에 엄청난 투자가 선행 되어야 앞으로 나아가는 분야다.
필자는 중국의료기관이 한국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고 본다.
첫째,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국보다 오히려 효율적이고 환자 위주로 잘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한국의 의료기술은 선진국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한국의 뛰어난 성형미용, 피부과 및 치과를 비롯한 질병치료 기술은 중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셋째, 중국의 의료기관들도 지난 10여 년간 미국 등 선진국으로부터 선진의료를 받아 들이려고 노력했으나, 사회·문화적 차이 때문에 대개 실패 했다. 그러나, 한국은 동양 문화를 중국과 공유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을 제외하고는 문화적인 이질감이 거의 없다. 한국은 중국에 진출해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다.
넷째, 한국의 의료인 교육시스템이 우수하다. 한국과 합자(자)하면 중국의사들이 가까운 한국으로 와서 한국의 의료기술을 배우는데 용이하다. 한국과 합자를 희망하는 한 축이 이것 때문이기도 한다.
물론 중국 의료기관들이 한국과 합작을 하고 싶어도 적지 않은 장벽이 존재하는 것도 현실이다. 중국이 자국의 법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어야 하는 분야도 있는가 하면, 한국 정부와 공동으로 해결해야 하는 분야도 적지 않다. 이 분야는 우리의 유관기관과 중국의 기관이 노력만 하면 금방 해결할 수 있다. 중국의 시스템은 정부의 입김이 강한 나라다. 우리 정부가 적극 나서서 진입장벽을 제거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예로부터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의술은 상업적인 접근을 경계해 왔다. 한국이나 중국, 그리고 미국에서조차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이 대개 비영리 조직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우수한 의료시스템의 구축과 의료기술의 향상은 모든 국가가 희망하기에, 형식적으로는 상업을 금하지만, 실질적으로 상업적인 접근을 상당히 허용한다. 물론 중간에 사업적인 역할을 하는 기업을 끼워 넣어 원만한 추진을 도모한다.
우리의 이웃인 중국에는 13억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한국의 의료기술과 서비스는 세계 최고수준이다. 옆집에 거대한 시장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기회이며 행운이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 중국이 합작을 요청하면 거침없이 응하는 것이 마땅하다.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도 뛰어난 의료기술을 가진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다. 사람의 생명을 연장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일은 모든 인류의 보편적인 소망이기 때문이다.
조평규 단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