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 冬夏閑談] 수전노와 거지

2017-11-02 05:00
남현희 전통문화연구회 번역실장

돈을 쌓아두고 쓰지 않는다면(積錢若不用, 적전약불용)
거지의 가난과 무엇이 다르랴!(何異丐者貧, 하이개자빈)
- 박지원(朴趾源, 1737~1805)

돈을 쌓아두기만 하고 쓰지 않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을 수전노(守錢奴)라 부른다. 수전노와 거지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돈을 못 쓴다는 것이다. 수전노는 돈이 많아도 못 쓰고, 거지는 돈이 없어서 못 쓴다.

돈 전(錢), 지킬 수(守), 노예 노(奴). 말 그대로, 돈을 지키는 노예가 수전노이다. 말을 풀어서 보니, 집 지키는 강아지와 같다고나 할까? 목줄에 묶인 채 집을 지키는 강아지처럼, 아무리 가진 게 많아도 돈줄에 얽매여 사는 게 수전노이다.

얽매인다는 건 무엇인가? 누군가에 또는 무언가에 몸이나 마음이 구속당하는 것이다. 구속당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유를 상실한다는 것이다. 돈에 구속되어 자유를 상실당한 수전노의 삶은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거지의 삶만 못할 수도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돈의 주인이면서 도리어 돈에 구속당하는 이런 모순적(矛盾的)인 삶에서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가? 돈을 벌어도 벌어도 여전히 돈에 목이 마른 게 우리의 현실 아닌가? 연봉이며 아파트값에 사람의 크기가 정해지는 현실, 심지어 어린아이까지도 아파트 크기로 친구와 비교하는 씁쓸한 현실의 우리는 과연 돈에서 자유로운가?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큰 집, 비싼 집을 살 형편은 못 되고 우리 아이도 그런 이유로 제 크기를 제 스스로 줄이지나 않을지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더 큰 집, 더 비싼 집을 갈망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무리하게 집을 사다가 하우스푸어로 전락하기도 한다. 거금을 들여 비싼 집을 사서 소유하고 있음에도 쓸 돈이 없어서 가난한 것이다. 수전노와 처지가 다를 게 없다. 값비싼 집을 소유하고 있어도 쓸 수 있는 돈이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