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칼럼] 김주영과 한국적 코포라티즘

2017-10-31 20:00

[이재호칼럼]

 

[사진=이재호 초빙논설위원 · 동신대교수(정치학)]



김주영과 한국적 코포라티즘

노사정 대화가 본궤도에 오를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청와대에서 노동계와 만찬회동을 한 후 대화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은 지난 30일 국정감사가 끝나는 대로 대통령이 언급한 ‘노사정 대표자회의’ 개최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노사정위원회는 갈등 해소와 타협을 위한 우리 사회의 주요한 메커니즘의 하나다. 1999년 민노총이 노사정위를 탈퇴한 후 지금껏 작동을 멈췄으니 사회적 손실이 막대하다.

대화에 더운 숨을 불어넣은 건 한국노총이다. 민노총이 청와대 회동을 거부하면서 한국노총의 대표성과 위상은 상대적으로 강화됐다. 그 중심에 김주영 한국노총위원장(56)이 있다. 그는 처음부터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줄 것을 요구했고, 대통령을 포함한 8자회의를 공식적인 논의구조로 삼자고 제안했다. 문 대통령도 “형식에 구애받지 않겠다”고 화답했다. 민노총의 참가 여부가 역시 관건이나 그들도 계속 거부만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노사정 대화의 주역으로 부상한 김 위원장을 처음 만난 건 2008년 3월,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바람이 거셀 때였다. 전력(한전)노조위원장 3선에 막 성공한 그는 10년을 끌어온 전력산업 구조개편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싶어 했다. 한전은 1998년 IMF 위기 이래 끊임없이 민영화와 분할매각의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었다. 신자유주의 열풍이 지구촌을 휩쓸 때였다.

김 위원장에게선 투쟁적 노조 지도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부드럽고 겸손했다. 그는 공부하는 노조, 연구하는 노조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했다. 전력회사를 민영화할 경우 초래될 폐해를 입증하기 위해 외국의 전문가들을 불러 토론회도 몇 차례 가졌다고 했다. 자신의 노조원 중엔 미국과 영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인재도 많아 어떤 민간연구소나 대학과의 토론에서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했다. 노조 쪽엔 문외한이었던 나로선 신선했다. 투쟁 못지않게 논리와 전문성에서 사측을 압도할 만한 역량이 필요한 시대라고 느꼈다.

김 위원장은 2011년 전력노조위원장 4선에 성공한다. 한전 노조가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한전 자회사나 출자회사의 민영화를 저지하고, 1300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했으며, 콜센터 노조 설립 등 주요 투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2012년엔 전국공공산업노조(공공노련) 위원장도 맡아 내리 3선을 했다. 공공노련을 단기간에 급성장시켰다는 평가도 받았다(곽용희, 월간 노동법률 2017년 1월).

틈틈이 책도 썼다. 2009년엔 공기업 근로자들의 애로를 보여주는 ‘신의 직장에서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펴냈다. 공기업 근로자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맞서 그들이 얼마나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 책에다 전력산업 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순직한 동료 선후배 478명의 이름을 실었다. 그 중엔 자신의 입사 동기도 둘이나 있다. 2010년엔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저항한 과정을 정리한 ‘전기는 인권이다’라는 책도 냈다.

그는 2004년 5∼6월 정부의 배전분할 시도를 파업 없이 막아냈다. 스스로도 그 때가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배전분할이 코앞에 닥친 현실이 되자 그는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노정(勞政)공동연구단을 구성한다. 연구단은 해외사례를 집중 조사해 제시함으로써 배전분할을 중단시킨다. 노조에선 한 명의 희생자도 나오지 않았다. ‘옥쇄 파업’ 없이도 중대 현안을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준 극히 드문 사례였다. 그해 말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한전의 신용등급을 국가보다 한 등급 높은 A3포지티브로 매겼다. 배전분할이 중단돼 전력산업의 불확실성이 제거됐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김 위원장은 경북 상주 출신이다. 고향마을엔 중학교 2학년 때 전기가 들어왔다. 대학은 전북 익산의 원광대학교를 나왔다. 전기공학을 전공했고 4학년 때는 전기공사 1급 자격증도 땄다. 졸업 후엔 48대의 1의 경쟁률을 뚫고 한전에 입사했다. 입사 2년차 때 노조위원장 출마를 생각할 만큼 노조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합리적 개혁주의자를 자처한다. 노동계에선 온건파, 신중파 등으로 분류된다.

김 위원장에 대한 얘기가 너무 길어졌다. 개인적으론 그가 앞으로 노사정 대화에서 한 역할을 할 것으로 믿고 있다. 이번 청와대 회동만 하더라도 그는 처음부터 대통령을 끌어들일 생각이었고 결국 성공했다. 그가 대통령을 거론하자 주위에선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노사정위가 대통령 직속기구인 점을 감안하면 바른 접근이었던 셈이다. 그는 대통령에게 8자 회의(대통령, 한국노총, 민노총, 대한상의, 경총,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부, 노사정위원회)를 제안함으로써 노사정 대화의 외연을 크게 넓혔다.

김 위원장은 특유의 부지런함과 진솔함, 친화력으로 노사정 대화를 성사시키기 위해 뛰고 있다. 수감 중인 한상균 전 민주노총위원장도 만났고, 한노총을 찾은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과 호프집 미팅을 갖기도 했다. 다행히 환경도 나쁘지만은 않다. 노동자 친화적인 대통령에, 민노총 출신의 노사정위원장, 한국노총 출신의 고용노동부 장관 등 역대 어떤 정권 때보다도 노동계를 잘 아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대화의 장이 꾸려지고 있다.

노사정 대화는 일종의 코포라티즘(corporatism)이다. 크게 보아 노동자 사용자 정부 3자가 머리를 맞대고 현안 해결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노동단체에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대신 정부는 국정 현안에 노조 측의 협조를 요청하거나 때로는 강제하는 게 코포라티즘의 핵심이다. 짐작하겠지만 성공률은 높지 않다. 유럽국가들 중에서도 네덜란드나 스웨덴 등을 빼고는 성공한 나라가 많지 않다. 코포라티즘이 자리 잡으려면 유능한 정부의 영리하고도 적절한 개입이 긴요하고, 이에 호응할 유연하고 실용적인 카운트파트가 있어야 한다.

코포라티즘은 사회주의와 전체주의의 부정적 유산도 안고 있지만 활용하기에 따라선 유용한 점도 많다. 우리처럼 타협과 조정의 문화가 일천한 곳에선 특히 그렇다. 노사정위 같은 사회적 타협기구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노동개혁의 지체로 경제도 사회도 완전히 주저앉기 전에 한국적 코포라티즘의 기제가 작동해야 한다. 김주영 위원장에게 거는 기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