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의 도시, 대구의 재발견

2017-10-23 00:05
대한민국 '음악광역시'를 거닐다

여름이면 '대프리카'(여름철 우리나라에서 가장 덥다고 하여 이 같은 별명이 붙었다)로 불리는 대구는 먹거리가 풍부하고 다양한 체험공간이 존재한다. 걸으며 살아있는 역사를 경험할 수도 있는 근대골목과 사회관계망(SNS)을 통해 소통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이색 공간들이 공존한다. 

하지만 대구를 안다 하는 이는 가장 먼저 '음악'을 떠올린다. 대구와 음악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문하겠지만 대구는 단연 음악의 도시다.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감상실이 설립된 곳, 고전적인 음악감상실의 명맥이 여전히 유지되는 곳, 고(故) 김광석을 비롯해 수많은 유명 가수가 배출된 곳, 대구에서는 매년 다양한 음악 축제의 향연이 펼쳐진다. 

소리를 통해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 음악(音樂). 상처받은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고 정서적인 교감을 통해 치유하게 하는 가장 좋은 매개체 음악은 여전히 대구 전역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클래식부터 근대음악까지··· 녹향, 그리고 하이마트
 

향촌문화관 지하 1층에 자리한 녹향 내부[사진=기수정 기자]

1946년, 음악감상실이 대구 향촌동에 문을 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감상실 '녹향'이다. 창립자는 이창수 선생이다. 그는 SP 레코드판 500여장과 축음기 1대를 갖고 자택 지하에 음악감상실을 꾸몄다. 

이곳은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대구로 이주한 많은 예술인의 사랑방 역할을 했고 그들의 작품 산실이 됐다. 
 

향촌동에 자리한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대구로 이주한 많은 예술인의 사랑방 역할을 했고 그들의 작품 산실이 됐다. [사진=기수정 기자]

이후 고전음악을 찾는 발길이 줄면서 극심한 경영난을 겪었지만 대구 원로음악가회 등 예술가들의 노력 덕에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2014년 7월, 이창수 선생의 유가족은 녹향 관련 기자재 일체를 대구 중구에 기증했고 향촌문화관이 개관하면서 이곳 지하로 옮겨와 그 역사와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녹향에는 1950년대 극장에서 주로 사용됐던 거대한 스피커가 있다. 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의 웅장함을 가까이서 감상하는 한 관객. [사진=기수정 기자]


이곳은 오전 10시부터 팝송, 영화음악, 고전음악, 오페라 등을 순차적으로 들려준다. 1950년대 극장에서 주로 사용됐던 거대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의 웅장함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감동이 된다.

신청곡 접수도 받는다. 세월의 때가 묻은 소파에 앉아 눈을 감고 음악을 감상할 때 느끼는 감동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울림을 준다. 향촌문학관 관람료 1000원을 내면 녹향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하이마트 고전음악 감상실의 역사는 1957년부터 시작됐다. [사진=기수정 기자]


향촌동에 녹향이 있다면, 공평동에는 '하이마트'가 있다. 녹향과 함께 오래된 음악감상실 타이틀을 갖고 운영되는 또 한 곳의 클래식 음악감상실이다.
 

하이마트 고전음악감상실은 입장료 8000원만 내면 명곡을 하루종일 감상할 수도 있고 그랜드 피아노 연주도 마음껏 할 수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우리가 흔히 아는 '가전 편집숍'은 물론 아니다. 하이마트(HEIMAT)는 고향이라는 뜻의 독일어다. 고향에 온 듯, 마음 편히 머물다 갈 수 있는 곳이다. 
 

하이마트 고전음악 감상실 홀 한편에 마련된 부스. 명곡 레코드판이 빼곡하게 꽂혀 있다.[사진=기수정 기자]


하이마트 고전 음악감상실의 설립주는 고(故) 김수억 대표다. 그가 불혹에 접어들던 때 "함께 음악을 나눌 수 있는 장소를 만들자"라는 생각으로 1957년 5월 설립했다.

전성기 때는 하루 1500명이 찾아오던 대구의 명소였던 이곳은 딸 김순희씨가 대물림하다 지금은 3대째인 박수원∙이경은씨 부부가 함께 운영 중이다. 

설립 이후 많은 이가 거쳐 갔던 마음의 고향, 하이마트 고전 음악감상실은 어느덧 설립 60주년이 됐다. 60주년을 맞은 지난 5월에는 대구 클래식 아카데미와 함께 음악 축제를 열기도 했다. 

아담한 규모의 디제이 부스 안에는 클래식 명반이 빼곡하고 90석 규모의 홀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자리하고 있다. 

입장료만 내면 온종일 음악감상을 하거나 피아노 연주를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음악을 통해 마음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이곳 하이마트 고전음악 감상실은 최근에는 블로그 등을 통해 접한 음악 동호회 회원이 많이 찾는다. 입장료는 8000원.

한편 가을의 낭만을 정점으로 끌어올리는 오페라 축제, '대구 국제오페라축제'도 오는 11월 12일까지 '오페라와 인간(opera&human)'을 주제로 대구오페라하우스 등에서 진행된다.

이번 축제에서 리골레토, 일 트리티코, 아이다, 창작 능소화, 창작 하늘꽃,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박쥐 등 그동안 국내에서 쉽게 만나볼 수 없었던 작품이 다양하게 펼쳐져 오페라 애호가들은 물론 일반 시민까지 많은 이가 축제를 즐길 수 있다. 

◆김광석 음악에 젖어 거닐기···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
 

김광석다시그리기길 [사진=기수정 기자]


서른 즈음에, 이등병의 편지, 사랑했지만, 바람이 불어오는 곳 등 수많은 명곡을 남기고 떠난 천재 가수 김광석.

2010년 방천시장 인근에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라는 이름으로 벽화거리가 조성됐다. 김광석을 그리워하는 마음(想念, Miss)을 갖고 그를 그린다(畵, Draw)는 중의적 의미가 담긴 곳이다.
 

김광석 다시그리기길에 그려진 생전 김광석의 모습과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그의 노래 '사랑했지만'. [사진=기수정 기자]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은 그의 안타까운 가족사가 재조명을 받으면서 올해 가을, 대구 여행객이 가장 많은 발걸음을 하는 장소가 됐다.

1964년 1월 22일 대구 중구 대봉동에서 태어난 김광석은 방천시장에서 전업사를 운영하던 아버지 밑에서 유년시절을 보낸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을 찾은 여행객의 모습. [사진=기수정 기자]

서울로 올라온 김광석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 등의 활동을 거쳐 1989년 1집 앨범을 발표했고 전성기를 누리던 중 1996년 1월 6일 돌연 세상을 등져 많은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아련함이 묻어나는 '김광석 특유의 음성'과 노랫말은 지금까지도 각색돼 불리고 있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 중간에 세워진 김광석 동상. 이를 바라보는 한 여행객. [사진=기수정 기자]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은 그가 태어난 봉산동에 2010년 조성됐다. 조성 당시만해도 우범지역으로 발길이 뜸했던 이곳은 현재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까지 많이 찾는 대구 명소로 거듭났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에 그려진 김광석은 여전히 그리움으로 다가온다.[사진=기수정 기자]

이곳을 찾는 이는 기타 선율에 실려 오는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김광석의 모습이 담긴 벽화거리를 걷는다.

그가 떠난 지 20여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환한 미소로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을 찾는 사람들을 반긴다.

길의 끝자락에는 올해 6월 문을 연 김광석 스토리 하우스가 자리하고 있다. 
 

김광석 스토리 하우스 내부 초입. 방문객을 반기는, 지금은 고인이 된 김광석과 그의 딸 서연양의 환한 모습에 눈시울이 절로 붉어진다.[사진=기수정 기자]


김광석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이 공간에는 그의 살아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과 유품(손때가 묻은 수첩, 악보, 하모니카), 그리고 음악이 있다.

딸 서연양과 함께 찍은 사진에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진다. 
 

김광석의 유품[사진=기수정 기자]

스토리 하우스가 문을 연 이후 평일 100명, 주말 평균 200명가량이 찾았지만 최근 김광석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이 주목받으면서부터는 주말에만 1000명을 웃도는 이가 이곳을 찾는 등 추모 열기가 되살아났다. 

음악을 향한 그의 열정, 미래의 삶에 대한 소망들이 고스란히 전해지며 묵직한 감동을 안긴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과 이어지는 방천시장도 가볼 만하다.

문화와 예술을 품은 전통시장으로 수성교 옆에 자리한 이곳 방천시장은 지난 1945년 해방 후 일본과 만주에서 온 사람들이 장사를 시작하며 형성됐다.

한때는 대구 서문시장, 칠성시장과 더불어 대구를 대표하는 시장으로 손꼽혔다. 지금은 문화예술가들의 활동으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 음악감상실 '녹향'의 내부 [사진=기수정 기자]

김광석다시그리기길에 세워진 김광석 동상[사진=기수정 기자]

하이마트 고전음악감상실에서는 입장료 8000원만 지불하면 하루종일 음악 감상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피아노 연주도 해볼 수 있다.[사진=기수정 기자]
 

하이마트 고전음악감상실에서는 입장료 8000원만 지불하면 하루종일 음악 감상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피아노 연주도 해볼 수 있다.[사진=기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