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C, 삼성·LG 세탁기 美 수입급증? “총수입액 변화 없어”

2017-10-06 20:02
세탁기 전체 수입액 한국 등 5개국에 최대 95% 집중
태국·베트남 수입 증가 대신 중국 수입 줄어
삼성·LG 혁신제품으로 시장확대, 월풀은 정부 의존 ‘좀비기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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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5일(현지시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수출한 세탁기로 인해 자국산업이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다고 판정했으나, 미국 정부가 집계한 수출입 통계를 살펴보면 금액기준 세탁기 수입 규모는 최근 수년간 특별한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LG가 세탁기 생산기지를 운용하고 있는 태국과 베트남이 주요 수입국으로 등극했으나, 이들 국가가 수입국 상위 순위에 오른 것은 최근의 일이며, 특히, 이들 국가산 제품 수입이 늘어난 만큼 중국산 제품의 수입이 줄어 전체 규모는 큰 변동이 없었다.

오히려 ITC가 이미 반덤핑·상계관세 조치를 내리고 있는 한국과 멕시코산 세탁기 수입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어 관세보복을 피해 생산기지를 이전했다는 ITC측의 주장은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궤변이라고 전자업계는 주장했다.

무엇보다 미국측이 삼성·LG 세탁기의 수입이 급증했다고 주장하는 2015년은 양사가 ‘트윈워시’(LG전자)와 ‘액티브 워시’(삼성전자) 등 기존 세탁기의 고정관념을 깬 혁신제품이 출시되어 소비자들의 구매열풍이 불었다. 더군다나 이들 제품은 경쟁사 제품에 비해서도 고가로 책정되었지만 소비자들은 기꺼이 돈을 지불했다. 저성장 기조에서 혁신을 도외시 한 채 정부에 기대어 자국시장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미국업체 월풀의 무사안일적인 태도와 그런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라는 통상압박을 치르려는 미 정부의 태도가 더 문제다.

◆삼성·LG 세탁기 美수출 전체 생산의 10% 수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 시장에 판매하는 세탁기는 연간 물량으로는 200만대 이상, 금액으로는 10억 달러(한화 약 1조1400억원) 규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양사의 전체 세탁기 생산 대수에서 10% 가까이 되는 규모다.

일본 시장 조사기관 후지 키메라가 발간한 ‘2017 월드와이드일렉트로닉스시장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지난해 총 2511만대의 세탁기를 생산해, 글로벌 생산량(1억686만대)가운데 23.5%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1421만대, LG전자는 1090만대를 생산했다. 지역별로는 △한국에서 460만대(삼성 200만대·LG 160만대, 이하 순서 동일) △중국 561만대(261만대·300만대) △태국 350만대(110만대·240만대) △멕시코 320만대(300만대·20만대) △인도 300만대(300만대·300만대) △동유럽 460만대(300만대·160만대)를 생산했으며, LG전자는 베트남(50만대)과 브라질(10만대)에서도 공장을 운영중이다.

이 가운데 ITC가 삼성·LG의 대미 수출 급증에 관련이 있다고 지목한 국가는 중국과 태국, 베트남, 멕시코다. 4개국 생산 규모는 1281만대다. 한국산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세이프가드 조치 때 제외하기로 했다.

ITC는 특히 건조용량 10kg 이상의 대형 세탁기(가정용) 품목의 수입급증 현상을 눈여겨 보고 있다. 이 품목 시장이 확대되어 수입이 늘어나자, 미 정부는 세관 수출입 통관업무용으로 정확한 품목분류를 위해 해당 품목에 대한 세번(HS코드)를 새로 정해 2015년부터 수입통계를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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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LG 진출 5개국서 미국 세탁기 수입의 95% 차지
세관을 통해 정식 수입된 대형 세탁기의 미국 수입액은 2015년 12억8525만달러에서 2016년 13억1133만달러로 2.0% 증가했고, 올해 1~7월 누적액은 7억5209만달러로 12.4% 감소했다. 같은 기간 한국을 포함해 삼성·LG의 세탁기 공장이 있는 중국과 태국, 베트남, 멕시코 등 5개국으로부터의 수입액은 12억4033만달러 → 12억6105만달러(전년 대비 1.7% 증가) → 7억5114만달러(14.8% 감소)로 사실상 수입을 석권했다.

국가별로는 △중국이 2015년 9억7898만달러에서 2016년 6억3845억달러 △한국 6998만달러 → 1억2495만달러 △태국 8399만달러 → 1억2862만달러 △베트남 0달러 → 1억6587만달러 △멕시코 1억8297만달러 → 1억7315만달러였다.

한국을 제외한 4개국이 모두 삼성과 LG의 제품을 수출한 것은 아니다. 다만, 대형 세탁기의 수출이 단기간 급증한 태국과 베트남의 대미 수출은 삼성·LG, 특히 베트남은 LG전자가 주도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마찬가지로 미 정부의 요구에 따라 재협상을 추진중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회원국 멕시코의 수입액도 역시 1억달러 이상을 기록했다.

◆세이프가드 발동시, 외국업체 美시장 진입 어려울듯
대형 세탁기 미국 수입시장 규모는 삼성·LG가 미국에서 올리고 있는 세탁기 매출 규모와 유사하다. ITC는 이러한 배경을 근거로 삼성·LG가 미국에서 자국업체인 월풀을 제치고 대형세탁기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ITC는 태국과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로부터의 수입이 증가한 것은 삼성·LG가 반덤핑 회피를 위해 우회 수출을 추진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중국’이라는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는 주장이다. 미국의 중국산 대형 세탁기 수입은 2015년 9억7898만달러에서 2016년 6억3845억달러로 3억4053달러(34.7%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한국이 5497만달러(2015년 6998만달러 → 2016년 1억2495만달러), 태국은 4463만달러(8399만달러 → 1억2862만달러), 베트남 1억6487만달러(0달러 → 1억6587만달러) 등 2억6447만달러가 증가했다. 삼성전자나 LG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가전업체들이 중국 대신 동남아시아 국가로 생산기지를 이전한 것은 인건비 인상과 중앙·지방 정부의 인센티브 축소 및 규제 강화, 정치·사회적 외국 배척과 함께 진출국가들의 경제발전 가능성이 큰 점 때문이지, 통상압박 회피용이 아니었다. 또한 이들 국가로부터의 수입이 늘어난 덕분에 미국도 대중국 수입의존도를 낮추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또한 대형 세탁기를 미국에 수출하는 국가의 수는 최대 20개국에 달하지만 전체 수입의 90% 이상을 삼성·LG가 진출한 4개국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미 정부와 의회가 ITC의 권고를 받아들여 세이프가드를 발동할 경우, 사실상 해외에서 생산된 대형 세탁기의 미국수입을 막게 된다. 이는 교역국가 기업에 대해 무차별적인 자국시장 접근을 허용하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규범에도 벗어나는 일탈이다.

또한 세이프가드가 발동되면, 규제가 10kg 미만의 가정용 세탁기 품목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 품목의 연간 미국의 수입액은 2015년 2억523만달러에서 2016년 2억3657만달러, 올 7월까지 1억5001만달러를 기록중이며, 한국을 포함한 5개국산 제품의 비중은 80% 이상이다.

◆경영 실패를 외국업체에 떠넘기는 월풀
종합해 보면, 한국과 중국, 태국, 베트남, 멕시코 등 5개국의 점유율은 미국 가정용 세탁기 수입시장의 95%까지 미치고 있다. 월풀이나 하이얼에 인수된 GE 등 토종 가전기업들은 같은 카테고리에 속하는 세탁기 제품을 수출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내에서 생산하면 가격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디자인과 성능 면에서 삼성·LG 등에 비해 수준이 한참 떨어지기 때문에 세계시장에서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연명할 수 있는 방법은 정부를 동원해 자국으로 들어오는 외국산 제품에 대해 관세와 수입물량 규제를 펼치려고 한다. 최근 수년간 월풀이 끊임없이 한국산 세탁기에 대해 반덤핑·상계관세 및 특허 제소를 하고, 이번에 세이프가드까지 발동하도록 한 것은 그런 이유다.

또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소비자 욕구에 맞춘 혁신제품을 개발·출시하면서 시장을 앗아가는 것도 월풀로서는 위협적이다. 2015년 LG전자가 ‘트윈워시’ 등의 제품을 출시하자 미국 내에서 대형 세탁기의 판매가 급증했고, 삼성전자도 ‘에어워시’ 등을 통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애국 마케팅에만 호소하며 그저그런 제품만 내놓은 월풀 제품이 먹혀들리 만무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ITC 발표 후 “소비자 선택권 제한, 가격 상승, 혁신 제품 공급 제한 등으로 이어져 미국 소비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비판하고, 구제조치가 가전시장의 공정성도 해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이유다.

하지만, 월풀이 더 두려워하는 것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에 마련한 공장에서 백색가전 제품을 생산·판매를 할 경우다. 이 때는 더 이상 통상압박 카드도 쓸 수 없다.

ITC 판정과 무관하게 LG전자는 테네시주에 신규공장 설립을 위해 2억500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으며 이는 약 6000개의 일자리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도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신규공장 설립을 위해 3억8000만달러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삼성과 LG가 ‘미국산(Made in USA)’ 마크를 달고 제품 판매를 개시할 경우 월풀과 GE 등 토종업체들은 자국 시장에서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