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맨’ 류중일의 낯선 ‘LG맨’ 도전…23년간 사라진 ‘우승 DNA’ 입힐까
2017-10-04 18:27
LG는 3일 “류중일 감독을 LG의 제12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계약기간 3년에 총액 21억원(계약금 6억원, 연봉 5억원)으로 국내 프로야구 감독 최고 대우다. LG를 이끌었던 양상문 감독은 계약 만료 뒤 LG 신임 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류 감독의 LG행은 신선하다. KBO리그를 대표하는 두 명문구단인 LG와 삼성은 과거 선수간 트레이드조차 거의 없었을 정도로 모기업간의 경쟁이 치열한 팀들이다.
류 감독은 대표적인 ‘삼성맨’이다. 1987년 삼성에 입단해 선수로 활약하다 1999년 삼성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11년 삼성의 지휘봉을 잡은 뒤 2014년까지 4년 연속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2015년 통합 5연패는 무산됐지만, 정규시즌 1위를 지켰다. 류 감독은 2016년 주축 선수들이 팀을 빠져나간 뒤 팀이 9위 성적을 내자 사령탑에서 물러나 기술자문을 맡았다.
일선에서 물러났던 류 감독이 1년 만에 LG 유니폼을 입고 다시 지휘봉을 잡는다. LG는 낯설지만, 잠실구장은 인연이 깊다. 경북고 재학시절 LG의 홈구장인 잠실구장 개장 기념 대회 1호 홈런의 주인공이 바로 류 감독이다.
LG는 류 감독 영입으로 대대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류 감독과 호흡을 맞추며 ‘삼성 왕조’를 이뤘던 코치들이 LG로 대거 이동할 가능성도 높다. 선수단 변화도 감지된다. 양 감독이 이끈 LG는 그동안 리빌딩에 집중했다. 확실한 결과물을 만들지는 못했다. 박용택, 정성훈 등 베테랑 야수들을 제외하면 확실한 주전이 없었고, 오지환도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어색한 LG 유니폼을 입은 류 감독이 얼마나 빠르게 자신의 색깔을 입히느냐가 관건이다. 물음표가 붙는 것은 현장과 프런트의 묘한 삼각구도다. 류 감독의 영입과 함께 양 감독이 단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1년간 프런트 수장을 맡은 송구홍 단장은 2군 감독으로 이동해 현장으로 복귀한다.
류 감독이 이끌던 당시 ‘삼성 왕조’는 신구조화가 완벽하게 이뤄진 최상의 팀이었다. 류 감독의 LG행 공식 발표가 나온 날 얄궂게 은퇴식을 가진 ‘국민타자’ 이승엽이 화려한 마무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류 감독의 공이 컸다. 류 감독은 베테랑 선수들을 존중하며 젊은 선수들을 키워낸 덕장으로 불렸다.
반면 양 단장은 LG 감독 시절 리빌딩을 선언하며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LG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이병규의 초라한 은퇴 시즌 탓에 LG 팬들의 원성을 샀고, 기존의 베테랑 선수들도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다른 팀으로 이적하기도 했다.
지도 철학에서 확연하게 성향이 다른 류 감독과 양 단장이 꾸려갈 LG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현장 복귀를 그리워했던 송 전임 단장이 2군 감독으로 옮겨 균형의 한 축을 맡을 수 있다는 점은 반갑지만, 류 감독과 양 단장이 풀어야 할 과제는 많다. 류 감독과 양 단장이 국가대표 코치로 함께 지도자로 나서 의기투합했던 기억을 더듬어야 한다. 류 감독이 또 하나 넘어야 할 벽은 삼성을 버리고 LG에 적응해야 하는 과제다. 야구는 같지만, 모기업과 구단의 색은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LG는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23년 동안 ‘KS 우승’ 숙원을 이루지 못했다. 류 감독에게 주어진 시간은 3년이다. 류 감독은 리빌딩이 아닌 우승을 위해 거액을 들여 영입한 ‘우승청부사’다. 당장 내년부터 성적을 내기 위한 완벽한 설계도가 필요하다. 오랜 기간 우승과 인연이 없던 LG 특유의 색에 삼성의 우승 DNA가 스며들 수 있을지, 류 감독의 어깨가 무겁다.
류 감독은 “그동안 팀을 잘 이끌어 주신 전임 양상문 감독님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최고 인기 구단인 LG 트윈스의 새로운 감독으로,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명문구단으로 나아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