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골음식을 일본이 개발한 듯
샤브샤브 요리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끓는 물에 얇게 쓴 고기와 야채를 살짝 데쳐서 먹는 요리다. 이 요리는 또 칭기스칸 요리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그렇다면 이 요리는 일본에서 온 것일까, 아니면 몽골에서 온 것일까?
일부 포털의 설명은 이렇다. 샤브샤브는 '살짝살짝 또는 찰랑 찰랑'이란 뜻의 일본어 의태어에서 나온 말이다. 13세기 칭기즈칸이 대륙을 평정하던 시절, 투구에 물을 끓이고 즉석에서 조달한 양고기와 야채를 익혀 먹던 야전 형 요리가 있었다. 이를 일본에서 현대적 요리로 정리해 샤브샤브라는 명칭을 붙였다.
그러나 세계 요리사전에는 얇게 썬 쇠고기와 채소를 끓는 물에 살짝 익힌 후 건져서 소스에 찍어 먹는 일본의 나베 요리(鍋料理)라고 설명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칭기스칸과 연관 짓는 내용은 없다.
몽골 관련 서적을 여러 권 냈던 한 인사는 샤브샤브가 몽골의 음식도 아니고 더구나 칭기스칸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사람은 샤브샤브에 칭기스칸 이름이 부쳐진 것은 고기를 얇게 썰어서 수없이 많은 칼질을 해놓은 것이 마치 칭기스칸 같은 잔인함을 연상시키거나, 칭기스칸을 그렇게 난도질하고 싶어질 만큼 미웠던 적의(敵意)를 가진 사람이 붙인 이름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맛있는 음식에 그런 끔직한 의미와 적의를 담았다는 것은 정서적으로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원래 몽골에서 있던 음식을 일본에서 자기네 식생활에 맞게 개발했다는 쪽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유목민의 비상식량인 보르츠(Borcha)라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유목민 비상식량 보르츠
끊임없이 이동하며 살아가야 하는 유목민들은 항상 짐을 간편하게 꾸리고 무게를 줄이는 것이 생활화 돼 있다. 기능이나 효율을 유지하면서 짐을 줄이는 방법, 이것은 유목민들이 살아가면서 터득한 지혜다.
그래야만 언제 어디서나 다른 장소로 쉽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활 관습은 몽골 군대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그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이 보르츠라는 식량이다. 전쟁 시에는 비상식량으로 사용되는 이 보르츠는 군장을 줄이는 데도 큰 역할을 하지만 장거리 원정 때 병참문제를 해결해 주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 혹독한 몽골의 겨울나기
보르츠는 소고기나 양고기를 말려 가루로 만든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곡물로 만든 미숫가루가 아니라 고기로 만든 미숫가루로 이해하면 쉬울 것 같다. 이 보르츠는 유목민들의 생활의 지혜가 만들어낸 대표적인 식량이다.
한 때 우리에게도 보리 고개라는 춘궁기가 있었지만 몽골의 유목민들에게는 아직도 가을부터 늦봄에 이르는 거의 7-8개월은 보리 고개보다 더 혹독한 기간이다. 몽골의 초원에서는 여름 동안 먹을 것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겨울이 되면 먹을 것을 구하기가 어렵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꽁꽁 얼어붙거나 눈 덮인 대지뿐이다. 야생동물을 사냥해 식량으로 충당하는 일도 있지만 사냥감도 충분치 못하고 모든 사람이 사냥으로 식량을 마련할 수도 없다.
혹독한 겨울과 풀이 자라기 전의 봄을 어떻게 견뎌 내느냐 하는 것은 과거부터 유목민들의 생존여부를 결정하는 숙제였다. 먹을 것이 없다고 해서 가축을 마구 잡아먹을 수는 없다. 우선 식량을 해결하기 위해 가축을 계속 잡아먹게 되면 그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고 만다. 더욱이 건초 한줌 준비하지 않고 맞이하는 겨울은 가축들에게도 혹독한 시기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기간에 가축들은 마를 대로 말라 식량으로서의 가치도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가능한 한 겨울에는 가축을 잡는 일을 삼간다.
이런 상황에서 생겨난 것이 바로 보르츠라는 비상식량이다.
▶ 소 한 마리가 방광 속에 모두 들어가
여름과 가을에 가축의 수를 조절하면서 살찐 소나 양을 골라 도축을 한 뒤 이를 겨울을 대비하는 식량으로 비축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목민들이 보르츠를 만드는 일은 우리가 김장을 담는 일이나 마찬가지로 생각하면 된다. 몽골의 유목민 게르를 가을이나 겨울에 방문하면 게르 안에 고기를 꼬챙이에 끼워 매달아 놓은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시뻘건 고기가 집안에 매달려 있는 것을 처음 봤을 때는 흉하고 지저분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지만 자주 보게 되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겨진다. 고기를 바깥에서 말릴 경우 가축이나 야생동물 또는 매가 물어갈 염려가 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집안에서 말린다. 유목민의 전통 가옥 게르 안은 공기가 건조하기 때문에 안에서 말려도 며칠만 지나면 물기가 모두 날라 가고 금방 딱딱해진다. 고기가 마르면 절구에 넣어 빻아 가루를 만든다.
말하자면 육포를 가루로 낸 것이라고 보면 된다. 소 한 마리를 말려 가루로 만들면 조그마한 보따리 하나가 될 정도로 양이 줄어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보르츠는 소의 방광(오줌보) 안에 넣어 보관한다. 소의 방광은 기후의 변화에 잘 적응하는 능력이 있어 그 속에 담긴 고기 가루가 잘 상하지 않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보르츠를 끓는 물에 두세 스푼정도 넣고 2-3분이 지나면 훌륭한 영양식이 된다. 컵 라면 하나를 끓이는 것만큼이나 간편한 인스턴트식품은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소 한 마리를 잡으면 조그마한 보따리 하나의 양이지만 이것만으로도 비상시에는 너끈하게 1년 치 양식이 된다. 바로 이렇게 가볍고 요리가 간편한 점 때문에 몽골의 푸른 군대의 병사들은 이 보르츠 보따리를 말안장 밑에 넣어 두고 식량으로 사용해 왔다. 특히 물에 타서 먹으면 한 끼 식사가 뚝딱이다. 1년 치 양식을 가지고 다니면서도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는 기동성은 정주문명권의 군대보다 높은 경쟁력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 야채를 함께 넣었을 가능성은 없어
유목민들은 야채를 거의 먹지 않았다. 이동하며 살기 때문에 한 곳에서 야채를 기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장에서 병사들이 끓는 물에 야채를 함께 넣어서 먹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아마도 운 좋으면 끓는 물, 아니면 찬물에 고기 가루를 타서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르츠를 물에 타면 약간 비릿하고 역한 냄새가 난다. 고기에 익숙한 몽골인들은 이 맛을 즐기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은 역해서 그대로 먹는 것이 쉽지 않다.
그 역한 맛을 없애기 위해 야채를 넣고 육포대신 얇은 날고기를 넣어서 개발한 것이 샤브샤브가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굳이 그 요리에 칭기스칸 이름이 부제(副題)로 붙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샤브샤브가 보르츠에서 온 것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이 없지만 그럴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그렇든 아니든 보르츠는 칭기스칸의 푸른 군대의 먼 거리 원정에 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 운송수단이자 식량인 가축
푸른 군대가 호레즘 정벌에 나섰을 때 병사들과 함께 수십만 마리의 양과 소 그리고 낙타 등 각종 가축들도 함께 원정길에 나섰다. 이들 가축의 등에는 각종 무기와 군수품들이 실려 있었다. 그러나 몽골군이 전쟁을 끝내고 몽골 초원으로 돌아올 때 이들 가축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가축들은 전쟁 중에 병사들의 식량으로 모두 소모됐기 때문이었다. 가축들을 이용해 군수물자를 조달하고 그 가축을 식량으로 이용함으로써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한 셈이었다.
▶ 병참시스템도 승전에 결정적 요인
장거리 원정에 나서는 전쟁의 경우 승패를 가름하는 결정적인 요인 가운데 하나가 이 병참 시스템이다. 병참라인이 길어지면 길어지는 만큼 전투력이 감소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보급라인이 끊겨 전쟁에서 지는 수가 허다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몽골군의 독특한 병참시스템은 기동성과 함께 전투력을 높이는 결정적인 요인 중의 하나가 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