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연한 리뷰]연극 ‘엠. 버터플라이’ 그 불편한 진실에 대해

2017-09-18 09:42
서구 중심적 가치관 비판…인간의 내재된 욕망 심도 있게 다뤄

연극 ‘엠. 버터플라이’는 1986년 중국 경극 배우이자 스파이였던 여장 남자 쉬 페이푸가 프랑스 외교관 버나드브 루시코를 속이고 국가 기밀을 유출한 실화를 배경으로 했다.  [사진=더 베스트 플레이 제공]



“동양인은 늘 큰 힘이 복종하죠.”

1960년 중국 베이징의 독일 대서관저 파티. 프랑스 영사관 직원 르네 갈리마르는 오페라 ‘나비부인’의 자결 장면을 부른 우아한 자태의 중국배우 송 릴링을 보고 첫 눈에 매료된다. 두 사람의 만남이 지속될수록 르네는 나비처럼 연약하고 순종적인 송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남성성과 우월감에 젖어들며 송에게 빠져든다.

연극 ‘엠. 버터플라이'(M. Butterfly)는 중국계 미국인 극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의 대표작으로, 1986년 중국 경극 배우이자 스파이였던 여장 남자 쉬 페이푸가 프랑스 외교관 버나드브 루시코를 속이고 국가 기밀을 유출한 충격적인 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사진=더 베스트 플레이 제공]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차용한 ‘엠. 버터플라이’는 두 사람의 기묘한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서양이 동양에, 특히 동양 여성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을 비판하는 동시에 인간의 욕망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어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취하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인물은 송이다. 실제로 배우 장율과 오승훈이 더블 캐스팅 돼 여장 남자 연기를 소화하는데, 그 모습이 도도하면서도 수줍은 동양 여성의 면모와 차갑고 섹시한 남성의 모습까지 담아내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헷갈릴 정도다.

르네가 송을 수동적이고 나약한 동양인으로 만드는 부분도 있지만, 송 스스로가 자신을 서양인 르네의 소유물로 전락시키는 부분도 있다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르네와 송의 관계를 통해 작품은 동양에 대해 정복의 대상, 계몽의 대상으로 묘사하고 있다. 동양인 작가의 당시 시대상을 보는 시각을 느낄 수 있다.
 

[사진=더 베스트 플레이 제공]



남성과 여성, 동양과 서양의 이분법적인 구조와 함께 당시의 제국주의적 가치관을 실존 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본질적인 심리와 욕망에 대한 접근으로 풀어낸 것은 분명 흥미롭다. 여기에 거듭되는 반전과 인물들 간의 갈등은 극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년 만에 무대에 다시 오른 올해 공연은 원래 축약됐거나 생략됐던 장면을 되살려 원작의 구조적·의미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원작의 시대적 거리감을 극복하고 오늘날의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한 의지가 느껴진다.

한편, 이번 공연은 극단 시인과 무사 대표 김동연이 연출을 맡았다. 르네 갈리마르 역에는 김주헌, 김도빈, 송 릴링 역에는 장율, 오승훈, 툴롱 역에는 서민성, 권재원, 친·스즈키 역에는 송영숙, 마끄 역에는 황만익, 김동현, 헬가 역에는 김유진, 소녀 르네 역에는 강다윤 등이 캐스팅됐다. 공연은 오는 12월 3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
 

[사진=더 베스트 플레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