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칼럼] 결혼과 육아, 결혼 할까 말까 그것이 문제로다
2017-09-09 19:16
어려움에 처한 사슴을 구해준 착한 심성이 고운 선녀를 얻게 했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이 ‘알콩달콩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야기는 비극으로 결말을 짓는다.
나무꾼은 아이가 셋 이상 태어나기 전까지는 날개옷을 숨겨야 한다는 사슴과의 약속을 어기고 두 아이를 낳은 선녀에게 날개옷을 보여주고 만다. 날개옷을 받은 선녀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양팔에 두 아이를 안고서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는 나무꾼을 주인공으로 지어진 옛 이야기다.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약속을 어기게 되면 그 만큼의 댓가도 치러야 한다는 권선징악의 전래동화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보고 있으니 자꾸만 이 이야기를 지은 작가가 ‘혹시 여인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한다.
이 이야기가 구전되어 내려왔던 시대는 옛날옛적 아마도 그때는 여인의 삶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고달팠을 것이다. 먹을 것도 부족한 산속의 오두막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여인에게 친정은 얼마나 그리웠을까.
선녀의 입장에서 ‘선녀와나무꾼’을 들여다보았다. 하늘과는 다른 세상인 지상에 놀러왔다가 난데없이 날개옷을 잃어버린 그 순간 선녀의 심정은 어땠을까. 당혹감과 불안감 그리고 마치 모든 것을 다 잃은 듯 망연자실했을 것이다.
그 때 정의의 사도와 같은, 백마 탄 왕자님이 나타났으니 첫 만남은 든든함이고 갈 곳 없는 그녀를 받아주었으니 은인과도 같다. 어찌 보면 나무꾼에게 속아 결혼한 셈이다.
사기라고 할 수 있지만 동화책이니만큼 극단적으로 보지 않으려 한다. 때로 결혼은 눈에 꽁깍지가 씌여 봐도 보지 못하고 보여도 보지 못해 서로 속고속아 결혼한다고 하는 그런 것이니 말이다.
필자가 이 동화책을 처음 읽었을 때가 초등학교 3학년 10살 때다. 당시 필자의 시선으로 선녀는 마땅찮고 모질고 미운 등장인물이었다. ‘그냥 나무꾼이랑 행복하게 살지’ 불쌍한 나무꾼을 버리고 하늘로 냉큼 올라가 버린 선녀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10살 아이에게 그것은 당연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 딱 10살인 내 아이도 선녀를 미워한다. 나무꾼의 처지만 생각했지 아내가 엄마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선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도 그렇고 조남주의 82년생 지영이도 그렇고 시대가 흐르고 흘러도 지구 어느 곳곳을 보아도 평범한 여인의 일생은 참으로 비극적이다.
자 그렇다면 이렇게 힘들고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비명을 지르고 싶을 만큼 고된 결혼이란 것을 해야 하는 걸까 말아야 하는 할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의 有無에 따라 달리 결정해야 한다. 결혼이란 사랑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달콤한 결혼은 없다.
결혼과 동시에 가족이 두 배로 늘어나고 아이가 태어나면 밭에 일하러 나가는 게 더 낫다는 옛말처럼 육아는 지상 최대 가장 힘든 일이다. 수면부족의 상태가 오고 아침, 점심, 저녁 세끼 밥 만 먹고 사는 동물처럼 돌아서면 부엌으로 들어가야 하니 장래희망이 현모양처, 가정주부가 아닌 이상에야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결혼 전에 미리 좀 연습을 하고 간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싶다. 요리도 해보고 엄마의 집안일을 도와주며 조금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결혼생활에 도움이 될 듯하다. 결혼은 눈에 꽁깍지가 제대로 씌여서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해야 한다.
아이들이 부모에게서 떨어질 사춘기가 되면 엄마에게도 자유의 시간이 온다. 경력 단절로 쉽게 일을 구할 수는 없겠지만 또 82년생 지영이의 어머니 오미숙 처럼 자식들을 바라보며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여자에게 결혼은 늦게 하는 것보다 빨리 하는 것이 더 나을 듯하다. 하루라도 젊었을 때 아이를 낳고 하루라도 젊었을 때 사회에 복귀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이왕 후회할 거면 해보고 후회하라는 말이다. 결국은 해보고 후회가 안 해 본 후회보다 낫다는 말이고 이것은 그래도 혼자 사는 것 보다는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이 더 낫다는 보편적인 의미이다.
결혼을 통해 잃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 라는 존재를 많이 잃을 수 있지만 또 나보다 더 값진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 결혼이고 출산이다. 출산과 육아로 우울증이 오기도 한다. 그러나 남편의 관심과 협조가 있다면 분명히 넘을 수 있는 산이다.
내가 죽을 때를 상상해 보자. 부와 명예, 권력 그 모든 것을 이룬 사람에게 죽음은 어떻게 다가올까.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고 자기성찰을 다 한 정년퇴직의 남자들이 하는 소리는 ‘허무하다, 헛헛하다’이다. 남들이 보기에 분명 부러운 삶을 살았을 그들의 최후에 그들 앞에 남는 것은 그들이 이룬 업적이 아니라 결국 가족이고 가정이다.
우울한 지영이들에게 그리고 지영이를 보면서 결혼을 기피하려는 여자들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 결혼하자.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사는 지금이 너무 힘들더라도 굴속에서 마늘과 양파를 먹고 살았을 웅녀를 떠올리며 인내하자. 지금은 너무너무 힘들지만 10년이 흐르고 20년이 지나 돌이켜 보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힘들게 살았던 그 시절이 일생 중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예쁜 것만 남아있게 될 것이다.
계 8개국으로 수출된 영화 ‘수상한 그녀’의 욕쟁이 칠순 할매 오말순도 ‘어머니의 꿈을 찾으라’는 아들에게 이렇게 답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제일 잘한 것이 있다면 너를 낳은 것이고 다시 태어나도 나는 너를 낳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그 어떤 업적을 이룬 위인들이 아니다. 바로 ‘엄마’라는 존재다. 그러니 지금 결혼해서 자신을 잃고 살고 있다고, 지금 이 순간 괴롭다고 내일도 괴로울 것이라 단념치 말자. 엄마라는 존재가 얼마나 가치 있고 위대한 존재인가를 떠올리며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자 다시 선녀와 나무꾼을 들여다본다. 다시 돌아가고픈 여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그렇게 미련 없이 날아가 버린 선녀는 과연 하늘에서 행복했을까? 아빠를 그리워 할 아이들을 보며 그녀의 심정은 어땠을까? 남편 없이 홀로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상황이라면 또 어떠할까?
그리고 세상의 이치를 봐도 하늘 세상이라고 놀고먹고 만은 할 수 없음이 분명한데 과연 그녀는 진정 행복했을까? 곰곰이 더 생각해 볼 일이다.
/글=구원진 작가 #버터플라이 #청년기자단 #김정인의청년들 #지켄트북스 #청년작가그룹 #지켄트 #지켄트인터뷰 #워킹맘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