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冬夏閑談, 김영죽칼럼] 서시를 위한 변명
2017-09-08 09:24
동하한담冬夏閑談
서시를 위한 변명
김영죽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수석연구원
중국 역사에는 수많은 미인들이 등장한다. 역사적 사건들에 문외한이라 해도 중국의 4대미인 양귀비, 초선, 왕소군, 서시를 떠올리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처럼 여인을 소재로 한 사실(史實)들은 많은 이의 이목을 끌어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평가는 가혹했다. 재색을 겸비했던 권력자의 여인들은 시대의 영욕을 한 몸에 떠안아야 했다. 지탄 받아 마땅한 면도 상당하지만 지금 와서 공과를 따지고 든다면 부당한 화소들 역시 존재한다. 요염한 미인이 군주를 유혹하여 나라를 기울게 했다는 스토리는 너무나 전형적이며 ‘여자를 잘못들이면 집안이 망한다.’ 류의 말들은 식상하리만큼 익숙해졌다. 한 집안이나 나라의 몰락을 여인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이른 바 여화론(女禍論)은 시대를 넘어서도 여전히 끝나지 않은 편견으로 자리 잡았다. 더구나 우리는 최근 몇 년 사이 이에 대한 국가적 트라우마까지 안게 되었느니 과연 이 편견을 과연 깰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謀臣本自繫安危 계략에 뛰어난 신하가 본래 안위에 매이지요.
賤妾何能作禍基 천첩이 어찌 화의 근원이 될 수 있나요?
但願君王誅宰嚭 그저 군왕께서는 백비를 죽이십시요
不愁宮裏有西施 궁중의 서시 걱정일랑 마시구요
오나라에 미인계로 쓰였던 서시. 오나라의 멸망은 과연 서시로부터 비롯되었을까? 이 시의 행간에는 함의가 담겨 있다. 왕안석은 망국의 요인이 여화에 있지 않고 군주의 안일함, 백비를 비롯한 재상의 간계(奸計)라는 점을 짚어내었다. “천첩이 어찌 화의 근원이 될 수 있나요?” 이는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지 말라는 원망 섞인 호소이기도 하다.
필자 또한 앞선 여인들의 과오에 대해 두둔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저 그녀들을 통해 통치 집단의 정치적 잘잘못을 덮어버리는 침묵의 카르텔, 그것이 유구한 세월을 관통해왔다는 점을 묵과하는 역사가 유감스러울 뿐이다. 그러니 왕안석의 서시를 향한 변명이 일견 고맙게 느껴지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