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태칼럼] 이단적 정책 실험을 조장하는 좀비 귀족 정당

2017-08-28 20:00

 

[사진 = 이병태 KAIST경영대학 교수·KAIST청년창업투자지주 대표]

신문보기가 무서울 정도로 깜짝깜짝 놀라는 충격적인 정책들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영세사업자의 고용이 압도적이고 최저임금 적용대상자가 3~7%인 선진국과는 달리 이미 그 영향이 18%를 넘어선 나라에서 한 순간에 최저임금을 16.4% 추가 인상했다. 그러고서는 현직 최고위 정책결정자 중 한사람으로부터 그렇게 높게 책정될 줄 몰랐다는 어이 없는 발언이 나오고 있다. 사전에 면밀한 연구나 검토가 없었다는 반증이다.

부동산대책도 마찬가지다. 수도권에서 사실상 주택거래를 종식시키는 과격한 조치가 취해졌다. 이번 조치가 결과적으로 부동산 거래의 실종을 가져온다면, 주택정책의 궁극적 목표인 국민의 자가 소유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질 것이다. 서민경제에 대한 충격, 은행을 포함한 금융산업에의 영향, 장기적 공급 부족에 따른 경제전반에 대한 악영향 등 고려사항이 무수히 많은 것이 부동산정책이지만 정부 부처 어디에도 그런 원인과 영향을 면밀히 분석한 보고서는 없는 듯하다. 있다면 벌써 손에 쥐고 흔들며 내놓고 부동산시장을 윽박질렀을 터인데, ‘투기꾼들에 의해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는 아마추어적 비난 공세만 정책 집행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 가계 지출에 통신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4~5%에 불과하다. 통신사들을 압박해 그들의 영업이익(현재 7% 수준)을 제로(0)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해도 결과적으로 가계 지출의 절감효과는 0.4~0.5% 정도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통신산업을 적자산업으로만 만들 뿐이다. 가구당 월 몇 백원의 절감효과도 없는 약정할인율의 인상이나 알뜰폰 사업자와 판매점들이 죽든 살든 상관 없다는 식의 보편요금제를 정부가 강제하겠다고 나선다. 그나마 수출을 주도하고 있는 스마트폰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은 아랑곳하지 않고 단말기 완전자급제 또는 단말기 지원금 분리 공시제도와 같은 국수적이고 관치적인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그야말로 우물안 개구리 같은 발상이다.

탈원전 선언이나 경제학적 근거가 희박한 소득주도성장론과 같은 이념 편향적 정책들이 여과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 또한 그 부작용에 대한 고려나 과학적 검증은 흔적도 없다.

실제 많은 정책들이 실질적인 소비자 후생이나 산업경쟁력에 관한 종합적 검토 없이 대통령 공약이라는 교조적 주장 아래 시행되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정책들이 체계적인 고찰과 숙의 과정 없이 대통령 말 한마디에 따라 기정 사실화하고, 공무원들은 '영혼 없는 도구'가 되어 한 순간에 부처의 입장을 180도 바꾸어 실행계획을 짜는 상황이 너무나도 쉽게 연출된다.

이런 것이 가능한 배경에는 우리 정치권 특히 현재의 정당들이 정책 개발 능력이 형편 없는, 다시 말해 ‘정책불임정당’들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기업이 소비자의 선택이 아니라 정부 보조금 등으로 연명하는 경우를 좀비 기업이라고 한다. 좀비 기업은 국가 자원을 낭비할 뿐 아니라 혁신기업의 성공 가능성을 낮추어 경제를 망친다.

정당도 정책이라는 상품으로 평소 국민에게 선택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당들은 정치공학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선거 직전에야 대선 후보 개인을 중심으로 명망 있는 전문가(주로 대학교수)들을 몇몇 모아 정책을 아웃소싱한다.

지금과 같은 다원화 다층화 초정보화 시대에서 실효성 있는 정책을 수립하고 검증하는 데는 많은 데이터와 자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들의 현 주소로에서는 그러한 정보와 인적자원을 공급하기에 충분치 않다. 기껏해야 원론 수준의 이론적 담론과 파편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이들에게 정책을 의존한다. 이런 이유로 원론적이고 이념적인 설익은 아이디어들이 캠프를 통해 대선공약으로 탈바꿈된다. 이 과정에서 정책개발의 능력이나 검증을 위한 축적된 지식 및 인력이 없는 정당은 배제된다. 즉 설익은 아이디어→대선 캠프→대선공약의 과정에서 정당은 배제되고 대통령이라는 제어되지 않는 권력의 창구를 통해 바로 정책으로 직행하는 것이다.

이런 구조가 가능한 것은 평소에 정책 경쟁을 해야 하는 시장의 압력이 적기 때문이다. 정당이 지지를 받으려면 지지자들을 설득할 정책을 개발하고 그 상품에 따라 정당 후원금이 모이고 그 자원으로 정당이 운영돼야 한다. 그러면 평소에도 정책개발을 유발하는 시장의 압력이 존재하게 된다. 바로 선진국의 정당정치구조이다.

우리 정당들은 국민세금을 나누어 받아먹고 사는 조직으로, 좀비 기업 중에서도 최악의 경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정당들의 정책연구소나 사무처에도 권력자들이 자기 참모들을 내리 꽂아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전형적인 좀비 기업의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정당이 경제수준에 맞는 정책개발과 검증 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세금으로 먹여 살리는 정당내 복지 제도부터 수술해야 한다. 5년 단임 대통령이 급하게 빌려온 머리들에 의한 생체 실험적 과격한 정책들을 막는 길은 국민으로부터 직접 재정적 참여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당은 존립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국민이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지지하고 싶은 정당이 되도록 정책 경쟁을 시장의 원리대로 촉진하여 좀비 정당을 퇴출해야만 한다. 좀비기업보다 좀비 정당의 해악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그러한 좀비 정당들의 실체를 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