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변방별곡] 21세기 퇴계선생
2017-08-28 05:00
경상북도 안동으로 통하는 다섯 군데의 길목에는 다섯 개의 관문이 세워져 있다. 동인문(東仁門)·서의문(西義門)·남례문(南禮門)·홍지문(弘智門)·도신문(陶信門)이 그것으로, 유교의 5대 덕목인 인·의·예·지·신을 상징한 것이다. 조선시대 서울에 지어진 흥인지문(동대문)과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 홍지문(북대문)을 연상시킨다.
안동의 관문 위에 붙어 있는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는 표현도 안동은 다른 도시와는 다르다는 첫인상을 각인시켜준다. 서울('I 서울 YOU')과 대전('it's Daejeon'), 대구('컬러풀 대구')와는 다른 안동만의 특색을 잘 드러내주는 캐치프레이즈 같다.
우리나라의 수도가 서울인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한국정신문화의 수도가 안동이라는 사실은 안동에 도착해서야 하나하나 그 연유를 짐작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IT산업이 지상최고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21세기에 공자와 맹자를 들먹이는 게 고리타분하고 케케묵은 소리라는 핀잔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안동은 예나 지금이나 동양문화의 핵심인 유교문화의 정수를 구현하고 있는 오래된 도시인 것만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안동은 특히 독립운동의 본산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15 경축사에서 언급한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 선생의 고택 '임청각'이 있을 뿐 아니라 독립운동가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이 바로 안동이라는 사실은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독립운동 기지를 세우겠다며 만주로 망명, 신흥무관학교와 경학사를 세운 것도 모두 안동을 떠난 석주 선생과 김동삼 등이었다.
얼마 전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을 찾아 김병일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35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경제기획원 총괄예산과장과 통계청장, 조달청장에 이어 기획예산처 장관까지 지낸 고위공직자 출신이다. 그런 그가 공직생활을 접고 퇴계선생을 좇아 내려온 지 10년이 지났다.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을 맡은 후 본격적으로 퇴계선생의 삶의 궤적들을 하나하나 찾아 나서고 퇴계처럼 살고 있다.
그런 작업들의 결과물이 '퇴계처럼'과 '선비처럼'이라는 책의 출간이었다. 성리학을 학문이 아니라 생활규범으로 실천해 온 퇴계선생의 소박한 삶을 통해 이 시대에 귀감이 될 수 있는 삶의 철학을 전파하는 역할을 기꺼이 맡은 셈이다. 김 이사장은 퇴계선생의 삶이나 선비의 삶이 '공자왈 맹자왈'하면서 사서삼경을 읊조리는 고리타분한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살아가는 올바른 삶의 지혜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김 이사장의 삶은 퇴계처럼 사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듯했다. 돈과 권력의 유혹을 미련 없이 뿌리치고 퇴계를 좇는 후학의 길을 고수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지만 말이다.
'인십기천'(人十己千)이라는 퇴계선생의 친필 휘호를 받았다. 이 경구는 중용(中庸) 20장에 나오는 '人一能之어든 己百之하며 人十能之어든 己千之니라'(남이 한 번하면 나는 백 번, 남이 열 번하면 나는 천 번의 노력을 한다‘는 뜻이다. 노력해서 성공하지 못할 일은 없다)는 경구를 집자한 것이다.
퇴계가 삶의 규범으로 삼은 이 경구를 오늘부터라도 내 삶의 경구로 삼고자 다짐한다.
구한말 일제에 의해 나라가 망하고 식민지배 상태에 빠져들게 되자 '퇴계선생처럼' 살아오던 안동의 선비들은 현실을 외면하지도 도피하지도 않았다. 식민현실을 받아들이거나 좌절하고 있을 때, 자신들의 당대에 독립이 이뤄질 수 있을지 불투명하던 암울한 시대에 그들은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퇴계의 영향이었다. 가족과 형제와 식솔들을 모두 데리고 가산을 서둘러 처분하고 대대로 내려오던 고향을 떠나 만주로 갔다. ‘인의예지신’을 실천해 온 선비들에게는 식민통치에 순응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중국은 21세기 들어서면서 ‘공자학원’을 전 세계에 만들어 중국어를 교육하고 중국문화를 보급하고 있다. 한국에 세워진 10여 곳을 비롯, 이미 500곳이 넘는 공자학원이 있지만 그곳에 공자와 맹자는 없다. 공자의 정신도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안동에는 김병일 이사장 같은 ‘21세기 퇴계선생’이 수없이 많이 살고 있다. 안동을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를 넘어 동양문화의 정수로 우뚝 서게 할 수 있는 힘이 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