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현칼럼] 북핵 문제의 종착점
2017-08-06 20:00
김봉현
초빙논설위원·전 주호주대사
북핵 문제의 종착점
협상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협상 당사자 간의 ‘신뢰형성’이다. 협상 상대방과 신뢰가 형성되어야 비로소 소위 ‘윈윈협상’이 가능하게 되고 이행도 잘 된다는 것이다. 신뢰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맺어진 약속은 서로가 ‘윈윈협상’의 결과라고 인정하여도 결국 잘 이행되지 않는다.
협상학자 알랜 액슬로드(Alan Axelord)는 많은 실증적인 실험의 결과 신뢰형성을 위한 간단한 방식으로서 ‘tit-for-tat’(팃포탯,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맞받아치기)을 제시하였으며 이 방식은 현재까지 협상의 가장 유용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방식은 게임이론에서 파생된 ‘반복되는 죄수의 딜레마’와 이론적인 궤를 같이하고 있다. 협상 상대방에게 협력을 제공하되 상대방이 배신하면 응징하고, 상대방이 협력하면 협력하는 방식을 반복하게 되면 결국 상대방도 일치된 메시지를 읽게 되고 신뢰와 협력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북한과 협상을 해 왔다. 협상학의 기초로 돌아간다면 북한과의 신뢰형성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따라서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또는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올바른 방향이었다.
다만, ‘tit-for-tat’은 과정(프로세스)으로서 시간과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정을 이탈하게 되면 효과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효과가 아예 없어져 버리거나 불신이 더욱 심화되는 부작용이 생기고 만다.
북한과의 협상에 있어서 ‘tit-for-tat’의 프로세스가 성숙되기 전에 인내심을 잃어버리는 사례가 자주 나타났다. 햇볕정책이 그러하였고,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역시 그러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과의 협상에서 우리 스스로가 신뢰를 가지기 어렵고 북한도 우리를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과 협상이 가능하지도 않고 가능해도 그 효과는 얼마 가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서 있는 이러한 위치에 대하여 누구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한국의 정권 교체 방식이 협상의 프로세스가 성숙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리는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제 ‘tit-for-tat’으로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으며 구조적으로 어렵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북한의 핵미사일을 인정하고 이에 대항하기 위한 자위적 수단을 강화하면서 살아가거나 아니면 북한을 붕괴시키는 공세적 수단을 취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태영호 공사는 지난 4월 어느 한 강연에서 북한 주민들의 마음속에 부글거리는 용암처럼 불만의 불덩어리가 존재하고 있으며 언제 터질지 모른다고 하였다. 특히 자신들의 이익이 집단적으로 침해를 당하면 집단행동을 할 수도 있다고 하면서 김정일이 시도한 화폐개혁이 수포로 돌아간 것도 그러한 집단행동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의 집단행동으로 북한이 붕괴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거부터 이어져 온 희망사항일 뿐이다. ‘용기의 철학자’로 잘 알려진 ‘아들러(Adler)’는 변화를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그 용기가 어떻게 주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하였다. 북한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를 위한 용기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 용기가 어디에서 생길 수 있을까?
한국이 과거 권위주의적 체제 속에서도 민주화 운동의 싹을 틔우고, 많은 희생을 치루면서도 성공적으로 민주주의를 이룩한 역사적 사례를 보면서 북한에서도 이러한 용기 있는 민주화 투쟁이 발생하기를 바랄 수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북한주민들이 자신들의 시스템이 왜, 그리고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칭하였지만 김정은을 비롯한 그 추종자들, 그리고 일반 주민들 조차도 북한이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김정은의 핵 미사일 성과에 대하여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나치즘에 대한 연구 특히, 아이히만 재판 과정을 연구한 결과 ‘악마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단어로 악마를 정의하였다. 악마는 평범한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민주화가 성공한 것은 한국민들이 한미동맹의 틀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미국의 보편적 가치를 한국이 추구해야 하는 가치로 일체화하였고 한국의 권위주의적 체제를 악마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반면, 북한 주민들은 ‘조중 혈맹’관계 속에서 북한의 체제가 중국의 체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체제를 악마로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한국 민주화의 역사적 교훈이 북한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중국의 민주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중국의 가치 체계가 미국의 가치 체계, 그리고 우리의 가치체계와 동일하게 변화할 때 북한 주민들도 북한의 집권층을 악마로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고 북한 민주화 과정이 싹트게 될 것이다. 이 때야 말로 북핵문제는 종착점을 맞게 될 것이며 동시에 한미 동맹도 종착점에 이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시선을 북한으로부터 중국으로 돌려야 한다. 중국이 한미일과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는 국가로 변화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중국에 대한 관여정책을 더욱 활발하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에 20년이 소요되었는데 아마도 앞으로 그만한 시간이면 우리는 종착점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