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24시] 홍콩 고속철역 ‘일지양검’ 구역 설치 논란
2017-08-03 11:00
중국법 적용받는 사실상 ‘치외법권’ 지역
홍콩의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가 광저우(廣州)~홍콩 고속철역 관할 문제로 다시금 격론에 휩싸이고 있다.
지난달 25일 홍콩정부 행정회의(行政會議, 한국의 국무회의에 해당)를 통과한 고속철 웨스트카우룽(西九龍)역 운영 방안에 따르면 역내에 중국 법률을 적용받는 일종의 ‘치외법권’ 구역이 생길 예정이다.
정부안에 따르면 2018년 3분기 개통 예정인 웨스트카우룽역은 지상 1층, 지하 4층 규모로 건설된다. 지하 1층은 매표소, 지하 2층과 3층은 각각 출경과 입경 구역, 지하 4층은 열차 플랫폼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문제는 고속철 열차 내부와 역내 출입경관리소, 여객 승하차 플랫폼 등의 시설에 홍콩법이 아닌 중국법이 적용되는 이른바 ‘일지양검(一地兩檢:한 지역 두 검사)’이 시행된다는 점이다.
일지양검에 따라 중국 법률의 적용을 받는 역 시설은 웨스트카우룽역 전체 면적의 4분의1을 차지한다. 해당 지역에서 발생한 법률적 사안은 중국 형법에 의거해 중국 본토 법원이 관할하게 된다.
또한 역에서 일하게 될 본토 출신 역무원 및 보안원의 수는 100~200명에 달하며, 이들 역시 홍콩법이 아닌 중국법을 따른다.
일지양검에 해당하는 구역은 일국양제가 적용되는 2047년까지 중국 중앙정부가 홍콩정부로부터 임차하는 형식으로, 중앙정부가 홍콩정부에 매달 임대료를 지불할 예정이다.
윈궉켕(袁國強) 율정사(律政司:한국의 법무부에 해당) 사장은 같은 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홍콩의 토지는 모두 국가(중국)의 소유”라며 “홍콩인들이 이 문제를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보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윈 사장은 본토 출신 역무원들에 대해서도 “매일 역내에서만 머물고, 퇴근 시 철도를 통해 본토로 돌아가게 된다”면서 “이들이 홍콩에서 밤을 보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중국 본토 주민들은 홍콩 입경 시 통행증 및 비자가 필요하다.
그는 홍콩사회의 반발을 의식한 듯 “일국양제를 위반하지 않고, 실제 상황에 맞게 (관련 사항을) 실시해 나가며, 충분한 보안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홍콩 기본법 제18조 2항에 따르면 “국가, 국장 및 공휴일에 관한 규정, 영해 및 영공에 관한 규정, 국적법, 외교법 등을 제외한 중국법은 홍콩특별행정구에서 적용되지 않는다”고 홍콩의 법률적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친중 건제파(建制派)와 범민주파는 웨스트카우룽역 운영 방안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민주파인 우지와이(胡志偉) 입법회 의원은 “중국이 만약 인민대표대회 비준이나 국무원령 등으로 일지양검을 실시한다면, 이는 홍콩의 토지를 중국에 ‘할양’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반면 친중파들은 “고속철 개통으로 록마차우(落馬洲), 로우(羅湖) 등 기존 육로 입경시설의 혼잡도가 완화되고 본토 관광객이 증가해 침체에 빠진 홍콩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친중파로 구성된 홍콩 18구 구의원 주석단 역시 일지양검이 행정회의를 통과하자 바로 “정부안에 찬성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일반 구의원 130여명은 지난달 30일 성명을 통해 구의회 주석의 정부안 지지 발표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구의회 주석의) 발표는 민의를 왜곡하고 선거에 의해 선출된 구의원들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주석단을 비판했다.
중국 인민대표대회 비준은 무난할 것으로 보이나, 홍콩의 민주파 및 독립파 의원들은 입법회에서 정부안이 통과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저지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