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酒食雜記] 기후와 문화(1)

2017-07-26 20:00

기후와 문화(1)

기후가 문화를 만든다. 에스키모의 코 인사는 그것이 가장 현실적인 살갗 접촉방식이기 때문이다. 악수를 하기엔 손이 너무 시리다. 아프리카 마사이족은 얼굴에 침을 뱉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너무 건조해서일까.
장례문화는 극히 기후종속적이다. 사체를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방식이 날씨에 따라 천차만별인 것이다. 온대의 평야지대는 매장이 보편적이다.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실 흙이 비옥하다는 말은 그만큼 유기물이 풍부하다는 뜻이다. 유기물은 지구에 머물렀던 동식물의 존재 흔적이다.
식물은 흙 속의 유기물을 자양분으로 삼고, 초식동물은 그 식물을 먹으며, 육식동물은 이 초식동물을 먹는다. 식물도, 초식동물도, 육식동물도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 식물의 자양분이 된다. 어쩌면 윤회라는 사상도 이러한 유기물의 순환에서 힌트를 얻었는지 모른다.
문제는 잘 썩지 않는 기후이다. 고산지대에서는 조장(鳥葬)을 한다. 조류의 위장을 통해 사체를 유기물 순환사이클에 싣는다. 에스키모는 북극곰의 위장을 통해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매장이나, 화장이나, 어복(魚腹)에 장사 지내는 것이 야만이 아닌 것처럼 이들도 기후에 따른 맞춤형 문화이다.
한국, 중국, 일본도 다른 기후가 문화적 차이를 만들었다. 베이징은 대륙성 기후로 겨울이 매우 건조하고 춥다. 도쿄는 해양성 기후로 여름이 매우 축축하고 덥다. 서울은 사계절이 뚜렷하다. 비록 요즘은 긴 여름과 짧은 겨울의 난대성 기후를 보이고 있지만. 여하튼 이러한 기후가 민족성과 문화에 미묘한 영향을 미쳤다.
먼저 숙박문화다. 중국의 판뎬(飯店)은 말 그대로 ‘먹고’ 잔다. 북경반점은 ‘중국집’이 아니라 베이징호텔이다. 일본의 ‘료칸(旅館)’에서는 ‘씻고’ 잔다. 어디나 목간통이 있다. 한국은 ‘주막(酒幕)’이다. ‘마시고’ 잔다.
중국은 왜 먹고 잘까. 삭풍이 부는 겨울, 맨손·맨 얼굴을 내밀면 자칫 피부가 갈라진다. 결국 기름기를 섭취해 번들번들한 피부를 만드는 수밖에. 삼겹살로 동파육을 만들고, 육해공 모든 육류와 야채까지도 들기름에 볶는 이유이다.
문제는 혈관과 내장기관인데, 차(茶)가 해결책이다. 중국인이 페트병에 녹차를 담아 수시로 마시는 것은 코카콜라가 비싸서만은 아니다. 자주 씻지 않는 것도 처절하게 터득한 생존의 지혜이다. 요즘은 매일 샤워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한다. 로션 보급이 늘어서일까. 한류(韓流)의 최대 수혜자가 화장품업계인 것은 대장금 이영애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일본의 여름은 습식 한증막이다. 마른 수건도 금세 푹 젖는다. 자연히 수인성(水因性) 전염병이 자주 창궐한다. 콜레라 병원균의 상당수가 일본이 기원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예방의 첫걸음은 바로 손을 씻는 것이다. 청결은 취향이 아니라 생존본능이다. 씻고 자는 배경이다.
일본의 물수건 문화 역시 생존을 위해 몸에 밴 청결습관일 것이다. 중국인이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먹고 잘 안 씻는 것과 일본인이 담백한 음식을 먹고 자주 씻는 것은 둘 다 기후에 적응한 결과이다.
한국이야 사계절이 뚜렷하고 상대적으로 쾌적하다. 저녁놀이 타오를 때면 마을마다 술이 익는다. 삼천리 금수강산에 기후도 제 절기를 알고, 조선팔도 모두 벗이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로 시작하는 ‘사철가’는 “한 잔 더 먹세, 그만 먹게 하면서 살아 보세”로 끝맺는다. 그러니 주막에서 만난 벗과 술 한 잔 나누면, 다리 엉킨 잠자리인들 대수이겠는가.
반점과 여관과 주막의 차이는 비즈니스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먹고 자는’ 중국인은 음식을 대접하며 상담을 나눈다. 최고의 접대는 만한전석(滿漢全席)이다. 만주족과 한족의 음식 100여 가지가 하루 두 차례, 사흘에 걸쳐 나오는데 금해산초(禽海山草-날짐승, 해산물, 들짐승, 채소류)의 진미로 구성돼 있다. 그릇을 비우면 실례이다. 음식이 부족해 대접이 흡족하지 않다는 타박으로 여겨진다. 그저 함포고복, 배를 두드리고 "따꺼(大哥)", "따슝(大兄)" 하며 계약서에 사인하는 것이다.
‘씻고 자는’ 일본인은 ‘터키탕’이다. 수건을 쓰고 욕조에서 상담을 나눈다. 이미 벌거벗은 터라 더는 감출 것이 없다는 뜻일까. 2004년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 노무현 대통령의 정상회담 장소도 목욕탕이었다. 규슈의 온천 하쿠스이칸(白水館)이다. 그런데 기념 촬영을 앞두고 문제가 생겼다. 노 대통령이 입을 ‘유카타(湯衣)'에 앞뒤로 벚꽃 문양이 수놓아져 있었던 것이다. 자칫하면 ‘사쿠라’로 몰릴 수 있지 않겠나. 결국 다른 이유를 대고 취소했다고 한다. 이처럼 일본인은 비즈니스도 씻으면서 “오네가이시마스(부탁합니다)”로 매듭짓는다.
‘마시고 자는’ 한국인은 술이다. 한잔 술에 곧바로 형님 동생이다. 갖가지 폭탄주가 돌면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누이 좋고 매부 좋게 비즈니스는 이뤄진다. 이튿날 숙취로 헤매는 직원에게 “사우나에서 씻고 쉬라”고 배려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숙취 해소 음료의 다양성이 세계 으뜸인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