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약사' 최복자 "직선이 아니어도 즐거운 삶 가능해요"
2017-07-31 11:47
'그 약국에 가고 싶다' 출간…조폭, 광신도, 아토피환자 등과 얽힌 에피소드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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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복자 약사 [사진=책읽는귀족 제공]
약을 사러 간 손님이 약국에 머무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어떤 약이 필요한지, 복용법은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가격은 얼마인지 등에 대한 대화가 오가는 데는 고작 5분이 채 되지 않는다. 처방전에 따른 약 조제라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순 있겠지만 대개 약국은 서둘러 들어갔다 나오는 곳이다.
그런데 이 약국은 이상하다. 하루에 받는 처방전은 평균 3건에 불과한데도, 손님들은 마치 이곳을 사랑방처럼 여기고 약사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다. 심지어 차로 두세 시간 걸리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불편을 마다하지 않고 이 약국을 찾는다. 이뿐일까. 약국 내에 마련된 넓직한 별도의 공간엔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다. 테이블과 책장을 밀어내고 의자를 들이면 70명 정도는 소화할 수 있는 이곳에선 1년에 한번씩 음악회가 열린다.
국내 2만여 개의 약국 가운데 이렇게 '별난' 약국이 또 있을까. 경북 포항의 한 시골 읍내에 위치한 이 약국엔 생약을 전공한 약학 박사 최복자 약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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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복자 약사가 약국에 놀러온 길냥이를 안고 있다. [사진=책읽는귀족 제공]
손님들에게 자상한 친구같은 최 약사도 권위 의식에 사로잡혀 시종일관 굳은 표정으로 지냈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일하고 있을 때의 내 표정을 동영상으로 찍은 적이 있었는데, 잔뜩 경직된 표정에 꾹 다문 입, 싸늘한 눈초리까지 그야말로 경악스러운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표정을 바꾸기로 마음먹었고 입 꼬리 들어올리기, 좌우 윙크 번갈아 하기 등 얼굴 표정을 부드럽게 바꿔 주는 운동을 매일 지속했다.
"여기 약사님 바뀌었어요?" "요즘 좋은 일 있으세요?" 손님들의 반응은 대번에 달라졌고, 그는 '손님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존중하자'고 속으로 다짐했다. 팔에 온갖 무늬의 문신을 한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약국에 들어왔을 때 깍듯이 먼저 인사를 건네고,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응대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마음속의 창과 방패를 모두 내려놓았기 때문일까, '조폭' 손님은 다음날 그의 '패밀리'들에게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혀 최 약사의 약국에 보냈다. "누님, 안녕하십니까! 자, 지금부터 누님 약국에서 필요한 약 다 산다. 알았나?"
최 약사의 약국에선 1년에 한번씩 음악회가 열린다. [사진=책읽는귀족 제공]
최 약사가 주창하는 '행복한 약국 만들기'를 더 큰 도시에서 펼쳐보고 싶은 생각은 없을까. 최 약사는 "오히려 그 반대"라며 "환자들과 함께 식사하고, 명상이나 요가도 할 수 있는 약국을 숲속에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마당엔 동물 놀이터도 마련해 약국을 찾는 동물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머무를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속도, 효율, 경쟁 등이 팽배한 이 시대, 그는 오늘도 "직선(直線)이 아니어도 즐거운 삶이 될 수 있다"는 복용법이 적힌 '마음의 약'을 제조한다.
'그 약국에 가고 싶다' [사진=책읽는귀족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