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녀의 벽을 깬 디벨로퍼②] 창립 3년만에 매출 3배...이윤숙 하늘종건 대표 "일에 성(性)의 경계는 없어요"
2017-07-25 03:00
전업주부에서 중개업소와 분양대행사 대표 거쳐 시행사 대표로
오피스텔 시행 때 태호생각 입점...시행사-소상공인 협업 성공사례로 회자
오피스텔 시행 때 태호생각 입점...시행사-소상공인 협업 성공사례로 회자
지난 7일 오전 10시께 목포역 대합실에서 첫 대면한 이윤숙 하늘종합건설(이하 하늘종건) 대표(47)는 하얀색 마 소재의 롱코트를 입고 있었다. 여름 더위와 새벽 비가 겹쳐 목포역 주차장 콘크리트 바닥은 뜨거운 복사열을 내뿜고 있었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주차장을 걷는 그의 모습은 하지만 경쾌했다.
그의 차는 짙은 청록색 벤츠 쿠페형 승용차였다. 승용차 내부의 우드그릴 컬러도 차 외부와 같은 청록색이었다. 화이트 린넨 롱코트와 청록색 세단이 왠지 잘 어울렸다. 개성 넘치는 색감이란 생각을 했다. 인터뷰 끝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중국 묵화 교본을 출장길에 사와 혼자 묵화 연습을 할 정도로 미술에 관심이 깊다. 그는 “건축을 하면서 스스로도 색감각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며 “자신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하는 건 즐거운 일”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시행 프로젝트에서 직접 설계와 인테리어 작업에 참여하기도 한다.
명함을 교환하고 바로 용당동 ‘에드가채움’ 아파트로 향했다. 이 대표가 도휘란 시행사에서 총괄시행이사를 맡기 시작했을 때 진행된 프로젝트로 하늘종건이 시공사로 간판을 내건 첫 사업이었다. 이 대표에겐 첫 시행 프로젝트와 다름 없다. 지하2~지상 최고 17층 5개동 총 256가구 규모로 첫 사업치고는 꽤 큰 규모였다.
주차장에서 내린 그는 사진기자에게 에드가채움 로고가 잘 보이는 앵글을 직접 가리킬 정도로 인터뷰 내내 적극적이었다. 에드가란 ‘행복을 만드는 사람’이란 뜻의 프랑스어다. 이후 에드가는 도휘와 하늘종건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브랜드가 됐다. 채움과 안채란 서브브랜드로 서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인터뷰 사진을 찍고자 했을 때는 아파트 뒤편의 정자쪽으로 취재진을 안내했다. 암반을 깎아 만든 단지여서 경사로의 경사가 제법 가팔랐는데 그 곳에서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인공 연못 위에 지어진 정자는 주물을 떠서 만든 무쇠 받침들이 목조 구조물을 받치고 있는 형상이었다. 이 대표는 정자의 재료까지 손수 고를 정도로 섬세했다.
첫 사업에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는 “암반이 생각보다 두꺼워 시공비가 예상보다 많이 나왔다”고 했다. 그는 “하늘종건의 이름을 알리는 첫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수익보다는 이미지를 먼저 생각했다”고 했다. 17층 아파트를 지을 경우 전파가 방해된다며 지역방송사가 소송을 걸기도 했다. 그는 3억원을 들여 전파가 우회할 수 있는 장비를 설치해주고 갈등을 해결했다. 암반 깎는 작업에서 먼지와 소음이 불가피한 데 인근 주민들과 목포상고 측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각종 민원을 해결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지금은 성공 반열에 오른 디벨로퍼지만 그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26살에 종갓집에 시집을 와 30대 후반까지 줄곧 살림만 한 전업주부였다. 그는 문득 “‘이제는...’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40살이 다 된 경단녀(경력단절여성)가 할 만한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는 “부동산 중개업이 전문성도 있고 장래가 있어 보였다”고 했다. 시할머니와 큰딸의 격려에 힘을 내 시험에 도전했고 2008년 하늘공인중개사사무소 간판을 달고 영업을 시작했다. 하늘종건의 전신인 셈이다.
영업력이 입소문이 날 때쯤 한 개발업체가 지역분양 사업에 대한 분양대행을 이 대표에게 맡겼다. 자연스럽게 분양대행이 사업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중개업 간판을 단지 3년 만에 하늘씨앤디란 분양대행사를 차렸다. 그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그랬다. 초등학생 두 딸을 둔 엄마로서 공인중개사 시험에 도전했고, 하늘종건으로 시행사업을 시작한 뒤엔 목포과학대학에서 건축인테리어학과 학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열혈 커리어우먼이다. 아파트 평면 정도는 직접 설계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올해부터는 한국부동산개발협회(KODA)와 한양대학교가 공동개설한 ARP 과정을 수강하고 있다. 디벨로퍼와 설계·조경·금융 등 부동산 개발과 관련된 법인의 대표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는 “2년 정도 준비를 한 뒤 대규모 공모형 PF(프로젝트파이낸싱) 사업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했다. ARP 과정에 참여한 건 그 때를 위한 포석인 셈이다.
대안이 많지 않은 경단녀의 선택이었던 공인중개사에서 분양대행사 사장으로, 다시 디벨로퍼로의 변신들이 모두 10년이 채 안되는 시간 동안 이뤄진 일이라니 놀랍다. 이 대표는 “일에 능력의 경계는 있지만 성(性)의 경계는 없더라”라고 했다. 그는 “공격적인 마케팅이 필요한 기획분양 분야에서도 여성 팀장이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며 “입소문이 나서 여러 업체에서 앞다퉈 프로젝트를 맡기려고 한다”고 했다. 기획분양은 주로 분양대행사가 미분양 물량을 떠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이른바 건설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업자들 사이에서도 쉽지 않은 일로 통한다.
첫사업인 용당동 에드가채움 완판에 성공한 뒤 이 대표는 목포 남악신도시 덕양프라자(상가)와 남악신도시 에드가채움(주상복합) 분양에 연이어 홈런을 때렸다. 이후 충남 내포신도시와 목포, 광주, 제주 등에서 상가와 오피스텔 아파트 분양 등 총 10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14년 창립 첫해 5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던 하늘종건은 지난해 17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3년 동안 회사 규모를 세 배 이상 키운 셈이다. 그는 “무리하게 외형을 성장시키는 것보다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역량의 범위 내에서 안정적인 영업을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가 시행사업을 하면서 줄곧 관심을 갖는 건 지역사회와의 상생이다. 남악신도시 에드가오피스텔2차 1층엔 태호생각이란 퓨전 레스토랑이 있다. 천장 파이프가 드러난 노출인테리어와 높은 천장이 인상적인 이 레스토랑은 지역 시행업체와 소상공인 간의 대표적인 협업사례로 꼽힌다.
이 대표는 2015년 에드가2차 분양 당시 목포과학대학교 정문앞 카페 메이커태호의 태호 사장(38)을 찾아갔다. 목포에서는 제법 맛집으로 입소문이 난 카페였다. 커피맛은 물론 독특한 인테리어와 콘서트 등 이벤트 기획력, 무엇보다 젊은 나이에 태호란 자체 브랜드로 여러 식당과 카페를 운영하는 브랜드 관리 능력 등이 이 대표를 사로잡았다.
오피스텔 1층 상가에 태호 브랜드를 입점시킬 경우 상가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란 게 이 대표의 판단이었다. 이 대표는 "뻔한 프렌차이즈가 아니라 태호란 브랜드의 개성과 넘치는 에너지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목포의 강남으로 통하는 남악신도시 진출을 타진하고 있던 태호 사장의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졌다. 이 대표와 태호 사장의 콜라보(협업)는 이렇게 시작됐다. 두 사람은 태호생각 1호점을 에드가오피스텔2차에 내기로 합의를 봤다.
이 대표는 임대료 할인혜택과 초기 인테리어 비용을 지원했다. 태호사장이 기획한 콘서트 등 다양한 이벤트도 지원했다. 지금은 여러 카페에 적용되고 있지만 천정 파이프가 드러난 노출인테리어와 혼밥족(혼자 밥먹는 사람)이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테이블 배치 등으로 태호생각이 유명해지면서 사람이 몰리기 시작했다. 디벨로퍼와 태호란 브랜드매니지먼트의 콜라보가 효력을 발휘한 것이다.
상가활성화를 위한 키테넌트(주요 입점업체) 유치 전략은 대규모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사업에서는 익숙한 개념이 됐다. 하지만 에드가오피스텔과 태호생각의 만남은 지방 시행업체와 소상공인이 이같은 개념의 협업을 기획하고 성공사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윤숙 대표는 “젊은 소규모 창업자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활용한 성공사례를 늘려 나가면 시행사업은 물론 지역사회의 발전에도 자연스럽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