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수칼럼] 말이 앞서는 정치와 정책의 한계
2017-07-03 20:00
문재인 정부는 일주일 후 출범 2개월을 맞는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새 정부가 국민 앞에 쏟아낸 각종 정책들은 홍수를 이룬다. 그중에는 충분하고 정밀하게 검토되지 않아 설익거나 섣부른 정책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지적이 많다.
시간당 최저임금 인상, 자립형 사립고 폐지, 고리 원전 1호기 가동중지, 신(新)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지, 공무원 대거 추가채용,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국정원의 국내정보 수집 금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환경영향평가,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 일일이 다 나열할 수조차 없을 정도다.
그 대부분이 문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다. 이 공약들은 새 정부 출범 후 그대로 추진할 것인지, 보완해야 할 것인지, 취소해야 할 것인지 여부를 심층 검토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실행 가능성에 대한 면밀한 재검토 없이 먼저 요란하게 떠들기부터 시작한다면 곤란하다. 해당 정책에 이해관계가 있는 국민이 성급한 기대를 하거나 극단적 저항을 하는 등의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 자칫 정부에 대한 불신만 쌓이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벌써부터 사회불안을 부르는 현상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민노총을 비롯해 전교조, 비정규직 단체, 원전 주변지역 및 사드 배치 지역 등의 이해관계인들과 운동권 단체가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수목적고 및 자립형 사립고 폐지 방침에 반대하는 학부모들도 대거 몰려 나와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특히 최근 민노총의 주한미국대사관 주변 시위는 미국 내 여론을 자극해 가뜩이나 사드 문제로 긴장관계에 빠진 한·미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우려까지 낳았다.
또한 문 대통령은 ‘적폐 청산’이라는 듣기 거북한 공약을 내세워 사회불안을 더욱 북돋운 측면이 있다. 집권세력은 걸핏하면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적폐’로 재단해 반대세력을 윽박지르거나 제거하려는 듯한 공포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적폐는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누적되어온 잘못된 관행이나 질서, 부조리, 비리 등을 지칭하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그러나 새 정부는 과거 정부에서 요직을 지낸 인사들을 쫓아내는 ‘인적(人的) 교체'에 치중하는 인상이 짙다. 이른바 ’코드 맞추기‘에 집중하면서 ’통합과 소통‘은 수사(修辭)에 그칠 뿐이다.
새 정부는 과거 정부의 정책들은 모조리 부숴버려야 한다는 오기라도 부리는 듯하다. 과거 정부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인사들까지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자꾸 누적된다면 새 정부에 큰 딜레마나 부메랑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송영무 후보에 대해서는 야당 측이 과거의 개인적 비리를 자세히 폭로하자 여당은 ‘이적행위’라며 군(軍)당국의 수사를 촉구하고, 기무사는 군 내부 제보자를 찾아내 처벌하겠다고 화답하고 나섰다. 새 정부가 국내정보 수집은 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큰소리로 공표한 게 언제인데 벌써 이런 옹졸한 반응을 보인다. 그보다는 기무사가 국내 정보를 취급하지 않는다면 안보에 어떤 영향이 미칠까를 더 걱정해봐야 할 것이다.
지난 6월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전용기에 오르는 문 대통령을 보면서 착잡했던 게 사실이다. 전임 대통령들이 외국 방문에 나설 때는 뭔가 좋은 소득을 안고 돌아오겠지 하는 희망 같은 것이 있었다. 회담을 하며 두 정상이 활짝 웃는 모습, 재외 동포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는 모습 등을 언론을 통해 보면서 기대를 하곤 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내각 구성도 하기 전에 성급하게 사드 문제부터 들고 나와 동맹국인 미국의 의혹을 샀다. 한민구 국방장관 등 보고라인이 의도적으로 사드 배치 계획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고 예단(豫斷)해 조사를 지시했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지시해 군 조직에 당혹감과 모욕감을 안겼다. 이 사안은 진상조사와 인사 조치를 하더라도 조용히 비공개로 했어야 했다. 전략무기 배치 계획 및 상황은 애초부터 국민의 알 권리 대상이라고 할 수도 없다고 본다.
사드 배치 현장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내세워 이미 양국 정부간에 합의된 배치일정을 지연시킨 것은 북한의 위협 앞에 놓인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동맹국 간의 도리도 아니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이견 없이 합의해 정리하고 넘어가는 형식을 취했지만 ‘적당히 덮고 넘어가는’ 임시방편으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동맹관계를 더욱 튼튼하게 회복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