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I의 중국 대중문화 읽기➅] 왜 만주족 신화는 중원 신화와 결합해야 했나

2017-06-29 12:00
애니메이션 ‘나의 붉은 고래’로 본 시진핑 정부 문화산업 이데올로기 지형
화하문명 ‘곤’과 해양 존재 ‘춘’의 결합…‘하나의 중화민족’ 신화 구성 의도

중국 애니매이션 '나의 붉은 고래' 포스터.[이미지 = 영화사 빅 제공]

얼마 전 중국 애니메이션 ‘나의 붉은 고래’가 한국에 상륙했다. 지난해 중국에서 상영돼 큰 관심을 모았던 이 영화의 본래 제목은 ‘대어(大魚)·해당(海棠)’이다.

중국에서 경이로운 판타지 세계와 주인공의 우정과 사랑을 담아내 큰 관심을 끌었다. 국내에서도 개봉 2주차를 지나면서 기대 이상의 감동과 여운을 느꼈다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이 애니메이션을 이해하는 핵심 포인트는 바로 중국의 ‘신화’다. 바로 만주족(滿族)의 신화 ‘바이윈공주(白雲格格)’의 이야기와 중원의 신화 ‘곤우치수(鯀禹治水)’의 이야기를 이해해야 이 작품의 주제와 마주할 수 있다.

특히 ‘나의 붉은 고래’는 중국 문화산업의 동향과 더불어 정부의 이데올로기 지형을 가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두 신화 모두 ‘홍수’에 관한 이야기다. 바이윈 공주는 천신(天神)의 셋째 딸로, 인간이 탐욕과 욕망에 의해 타락해 창제신인 아버지가 일으킨 홍수로 멸망의 위기에 처하자 이를 불쌍히 여겨 인간의 편에 서서 홍수로부터 인류를 구원한다.

바이윈 공주는 먼저 나무를 꺾어 이를 자라나게 하여 인류를 대피시킨다. 그러나 천신의 홍수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바이윈 공주는 생사를 인류와 함께할 것을 결심하고 아버지의 열쇠를 훔쳐 아버지의 보갑(寶匣) 속 황색 모래와 검은 색 모래를 훔쳐낸다.

훔쳐낸 흙을 인간 세상에 뿌리자, 흙이 대지가 돼 홍수를 막고 인류가 구원을 얻었다. 이를 알게 된 천신은 분노해 눈을 뿌려 바이윈 공주를 얼어 죽게 만든다. 바이윈 공주는 죽자마자 흰 자작나무로 변했고, 이 자작나무가 점점 자라 장백산(長白山)의 산맥이 됐다.

곤과 우의 이야기가 나온 ‘산해경(山海經)’에 따르면, 곤(鯀)은 홍수가 나자 ‘황제(黃帝)’의 식양(息壤·스스로 증식하는 토양)을 훔쳐 홍수를 막는다.

이에 노한 황제가 축융(祝融·불의 신)을 시켜 곤을 죽이게 한다. 곤이 죽어 그의 뱃속에서 우(禹)가 나오고, 황제는 우에게 구주(九州:세상의 땅)를 나눠줘 이를 다스리게 한다. 임금이 된 우는 하(夏)나라의 시조가 된다.

두 신화의 모티프는 애니메이션에서 춘과 곤의 이야기로 조우하고 있다. 영화 속의 주인공 소녀 ‘춘’은 해저 세계의 존재이자 ‘해당화 나무(海棠)’의 정령이다.

그녀가 사는 곳은 신의 영역도 인간의 영역도 아닌 존재들이 사는 곳이며, 인간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자연의 법칙과 규율을 주관하고 있는 ‘신화적’ 색채로 가득한 세상이다.

그녀는 인간세상에서 마주친 소년에게 애틋함을 느끼게 되는데 그가 죽게 되자, 그를 부활시키기 위해 명부(冥府)에 가서 혼령을 가져온다. 소년은 혼은 작은 물고기로 변하는데 ‘커다란 물고기(大魚)’가 돼 인간 세상에 나아가야 다시 부활할 수 있다.

이 커다란 물고기에게 춘은 ‘곤(鯤)’이란 이름을 붙여준다. 곤(鯤)은 ‘장자(莊子)’ 소요유편에 등장하는데 커다란 물고기라는 뜻으로, 신화 속의 곤(鯀)과 발음이 같다.

영화의 줄거리는 제목처럼 곤(대어)과 춘(해당)의 이야기다. 영화에서 곤은 춘의 세계에서는 존재해서는 안 될 금기이기 때문에 축출당할 위기에 몰린다. 그로 인해 대홍수가 발생하자, 모두 곤을 죽이려 한다. 춘은 해당화 나무를 자라게 해 마을 사람들을 구한다.

춘이 곤을 부활시키는 댓가로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그녀의 친구 ‘추’의 희생으로 인간 세상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부활한다.

신화 속 곤이 죽어 우가 되는 것처럼 영화 속 곤 역시 인간의 모습으로 부활한다. 홍수를 다스리고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는 이야기의 모티프는 각각의 신화의 핵심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왜 만주족(滿族)의 신화는 한족(漢族)의 신화와 만나야 했을까. 중국은 문명 대국, 문화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위대하고 장구한 역사 만들기와 민족 통합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1912년 공화정이 ‘오족(五族·한족, 만주족, 몽골족, 티베트족, 회족으로 구성된 다섯 개의 민족) 공화국’으로서 출범했지만, 한족 중심의 의식이 뚜렷했다. 중·일 전쟁이 발발하고 만주국이 일본인의 손에 넘어가고 나서야 비로소 변방의 영토와 소수민족의 영토의 통합이 절실해졌다.

이후 중국 영토 내 소수민족을 ‘중화민족’이라는 하나의 국족(國族)으로 통합시키려는 ‘민족단결’의 의지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매우 확고하다.

시진핑(習近平) 정부는 문화산업의 진흥을 통해 민족 융합과 단결을 시도하고 있는데, ‘중국소수민족 영화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예다.

이 프로젝트는 민족 문화를 계승하고 문화 산업과 번영을 촉진함과 동시에 단결을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완성하기 위해 소수민족이 중화민족의 일원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본디 하나의 문화적 정체성’을 갖고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신화는 한 사회의 일원들이 갖는 공통의 서사이면서 정체성 형성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 작품에서 만주족의 신화와 중원의 신화를 융합해 ‘하나의 중화민족’의 신화를 구성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화하(華夏)문명을 대표하는 곤과 해양의 존재인 춘의 결합은 중화민족으로의 통합이란 의미 외에도 대륙의 황색문명과 해양의 남색문명의 적극적이 결합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이 애니메이션은 황제와 우의 후예인 중국인들에게 해양 문명의 DNA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대국 굴기’를 선언한 중국. 이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통해 중국인에게는 대륙에서 탄생시킨 찬란한 문명과 함께 적극적으로 세계를 개척하고 뻗어나가는 해양의 유전자도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인지시키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중국 문화산업의 지형에서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데올로기다. 소년과 소녀의 아름다운 우정과 사랑의 신화가 품고 있는 진짜 메시지가 무엇인지, 그리고 중국이 창조하고자 하는 신화는 과연 무엇인지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윤실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ACCI) 책임연구원(상하이대학 문학박사) ]

고윤실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ACCI) 책임연구원(상하이대학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