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르포] 송도케이블카의 화려함에 가려진 '해녀들의 눈물'..."우린 어디로"
2017-06-21 07:24
아주경제 (부산) 이채열·박신혜 기자 = "80이 넘은 할매가 살아본다는데, 구청장요, 좀 도와주이소. 여기서 쫓기나면 우린 어디로 가란 말인교."
부산 송도에서 60년 넘게 물질을 해온 토박이 해녀 중 가장 연장자인 임원순 할머니(84)가 송도케이블카가 들어서자마자 쫓겨날 위기에 놓인 점포에서 처절한 목소리로 도움을 청했다.
지난 20일은 29년 만에 재개장된 '송도해상케이블카' 개장식 날이다. 그 화려함의 뒤안길에서 묵묵히 송도를 지켜온 해녀 16명의 생존터인 '포장마차'를 찾았다. 오전 10시 30분, 서구 암남공원 공영주차장 한편에 즐비한 포장마차 촌에서는 장사를 하기 위해 16개의 점포들이 일제히 분주한 모습이다.
그러나 바쁘게 움직이는 몸과는 달리, 60~80대로 보이는 할머니들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차 있었다.
'이모집'이라는 상호를 걸고 장사를 하고 있는 강명순 해녀(68)는 "19살부터 시집을 와 물질을 하면서 시동생, 시누이 그리고 4형제를 다 키운 곳이 바로 송도다. 그런데 케이블카가 들어선다고 우리(해녀) 보고 나가라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강씨는 "최첨단 시설이 들어와서 미관상 좋지 않다고 한다. 7~8년 전에 장사하라고 구청에서 임시로 사업자등록도 해주고 카드 영업도 해주더만, 지난해 태풍에 여기 점포들이 망가지자 마자 9월에 나가라고 통보가 왔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말 답답하다"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다행히 구청의 행정집행 명령을 철회해 달라는 해녀들의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노점이 철거되지 않았다. 하지만 본안 재판 결과는 장담할 수 없어 해녀들의 불안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김만근 송도발전추진위원회 위원장은 "송도케이블카가 관광객들의 행복권이라면, 이곳은 해녀들에겐 생존권이다"며 "지금도 물질을 하는 해녀들은 50~60년 동안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오신 분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에 등재되고, 타 지역에서는 해녀촌을 관광지로 조성하는 등 해녀들을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데, 오히려 서구청은 케이블카가 들어서면서 차량 20대가량 들어설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현재 송도에 등록된 해녀는 24명이다. 이 중 이곳에서 장사를 하는 해녀들은 16명이나 된다. 이들은 매일 아침 바다로 나가 물질을 하며 수확한 싱싱한 해산물로 하루 장사를 한다.
실제 이곳을 지키고 있는 해녀들의 연령은 60~80대로, 평균 경력이 45년이 넘는 베테랑 해녀들이다. 그동안 물질을 해오면서 가정을 꾸리느라 무릎, 어깨 등 몸 구석구석 '골병'이 들었다.
송도 암남공원을 찾은 이날도 어김없이 물질을 하고 있던 강두일 해녀(80)는 "60년 넘게 자식들을 먹여살리면서 지금까지 물질을 하고 있는데, 이곳을 떠나라고 하니 한숨만 나온다. 그래도 살아있는 시간까지는 물질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송도 해녀들이 이곳에 터전을 마련한 것도 40년째다. 바다 매립으로 암남공원이 들어서기 전에는 바위 위에서 해산물을 손질해 인근 시장이나 길거리에서 장사를 했다. 그러다가 암남공원이 들어서자 이곳에 파라솔, 천막, 점포의 과정을 거치면서 송도의 '조개구이 포장마차촌'으로 유명해지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았다. 조용했던 송도해수욕장에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데 큰 역할을 한 셈이다.
송도해수욕장은 개장 100주년을 즈음해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해상다이빙대 부활, 구름산책로와 송도해상케이블카가 들어서고 오션파크오토캠핑장, 송도용궁다리도 복원될 예정이다. 서구청은 음식, 숙박, 볼거리, 즐길거리가 가득한 4계절 관광도시로 육성하기 위한 개발을 한창 진행 중에 있다.
지자체별로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지만, 주체인 주민들을 배제한 무책임한 개발 등은 제한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부산서구 이정향 구의원은 "구청에서 개발 시 철거해야 한다는 이행 각서를 받았다지만 그동안 해녀촌이 관광객 유치에도 많은 공헌을 해왔다"며 "위생시설도 갖추고, 제대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조례를 제정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대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을 돌봐줄 수 있지만, 없는 사람은 있는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소연한 해녀 할머니의 외침이 희망의 목소리로 변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