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재판 중간 점검, 무딘 칼날 VS 견고한 방패
2017-06-14 06:52
아주경제 채명석·유진희·김지윤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이 중반전을 넘어섰지만 여전히 지루한 공방전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죄를 입증할 만한 ‘큰 한방’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요 증인들의 증언 번복 등으로 특검팀의 ‘칼날’이 무뎌지면서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의 ‘견고한 방패’를 뚫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부정한 청탁'··· 뇌물죄 핵심요건 입증에도 어려움
특검은 삼성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핵심 사안부터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히려 출석한 증인들이 기존 증언을 번복하면서 이 부회장 변호인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실제로 지난달 31일 열린 제21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참석한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는 “최순실이 삼성 합병을 얘기한 적 없다”며 특검의 주장을 뒤엎는 진술을 했다. 앞서 특검은 "(최순실이) 삼성도 내가 합치도록 도와줬는데 은혜도 모르는 놈들"이라고 얘기한 것을 들었다고 박 전 전무가 증언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박 전 전무는 삼성의 뇌물죄 의혹의 실마리를 풀기 위한 핵심 증인으로 꼽혀왔다.
지난달 26일 열린 제19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김학현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은 아예 “진술조서가 잘못됐다”고 했다. 그는 최상목 당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이 삼성물산 지분 처분에 대한 공정위 검토를 제대로 해달라는 식의 민원성 전화를 넣었다고 특검에서 진술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이날 해당 증언은 자신이 하지 않았고, 검사가 본인의 생각을 자신의 진술인 것처럼 적었다고 ‘폭탄발언’을 한 것이다. '삼성→청와대→공정위'로 이어지는 뇌물 연결고리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근거뿐만 아니라 특검의 신뢰성마저도 무너뜨리는 대목이다.
특검에 유리한 진술을 했던 일부 증인은 신뢰성에 대한 의심도 받고 있다. 지난달 19일 제16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일성신약 관계자들은 “삼성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일성신약에 자사 보유분 주식을 고가에 매매하겠다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 측 변호인단은 "일성신약은 자사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을 더 비싼 값에 보상받기 위해 2년째 삼성물산을 상대로 수백억원대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며 "증인들 역시 해당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당사자인 만큼 증언의 신뢰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지원의 대가성'··· 재판 초기부터 설득력 잃어
이 부회장이 청탁을 위해 정유라에 승마지원을 지시했다는 주장은 재판 초기부터 설득력을 잃었다. 지난 4월 14일 열린 제3차 공판에서는 정유라에 대한 승마 지원은 이 부회장이 아닌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이 결정한 것이라는 최 전 실장의 진술이 공개됐다. 이 조서에 따르면 최 전 실장은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건희 회장을 대리해 삼성그룹 경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며 "이 부회장과는 중요 현안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는 관계로 이 부회장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관계라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입장에 대한 해명도 있었다. 지난 4월 19일 열린 제4차 공판에 삼성 측 변호인은 "2014년 9월15일 이뤄진 5분간의 독대나 2015년 7월 25일 30분간의 독대에서 정유라를 특정해 승마지원을 하라는 요청을 이 부회장이 받은 바 없다"고 주장했다.
애초에 승마 지원은 정유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왔다. 지난달 12일 있었던 제13차 공판에 출석한 박재홍 전 한국마사회 승마팀 감독은 "(다른 선수들을 정유라 지원을 위한) 들러리라고 생각 안 했다"며 "삼성이 전체적으로 지원하려고 했는데 중간에서 최순실이 장난을 치면서 삼성도 어쩔 수 없이 끌려간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의 대가성도 이에 반하는 증언이 잇따라 나오면서 입증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2일 열린 제27차 공판에 증인으로 참석한 이용우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는 "전경련이 미르재단 설립과 관련해 기업들과 사전협의를 하지 않았으며, 삼성 역시 개별의사를 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 전 상무는 미르재단 설립 과정에서 전경련측 실무진으로 청와대 회의에 참석하는 등 관련 업무를 처리했던 인물이다.
앞서 제3차 공판에서도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이 전경련의 요구에 따라 마지못해 이루어졌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당시 삼성 측 변호인은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할당된 금액을 수동적으로 냈을 뿐"이라며 "재단 지원과정에서도 최순실과 연락한 적이 있었는지 등에 대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강조했다.
재계 관계자는 “특검이 삼성의 뇌물죄를 성립시키기 위해 들었던 상당수의 의혹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며 “2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이를 입증할 만한 어떠한 핵심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는 특검이 또다시 증인 몰아세우기 등에 나서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