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리즘과 시의 경계선에 서 있는 한줄 철학…'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2017-06-05 16:22
강효백 경희대 교수, '꽃은 다 함께 피지 않는다' 출간…서사 없이 거대담론 펼쳐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아포리즘(aphorism)은 신조나 원리, 진리 등을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나타낸 짧은 글을 일컫는다. '금언'이나 '격언'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아포리즘이 동서고금을 통틀어 꾸준히 회자되는 이유는 인간이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짊어지고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탈무드 잠언집을 비롯해 프랑스 고전 작가인 라 로슈푸코의 명언집, 스페인 철학자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조언집,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집 등이 지금도 사랑을 받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중국법학과 교수의 시선은 깊고 옹골차다. 주 타이완 대표부, 주 상하이 총영사관, 주 중국대사관 외교관을 역임하고 베이징대와 중국인민대에서 강의하는 등 25년간 중국을 체험한 그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상을 비판적 눈으로 보려 늘 노력한다. 특히 인민일보에 상하이 임시정부에 관한 기사를 대서특필하게 만들고 한국인 최초로 기고문을 실을 정도로 그의 사유는 언행으로 곧잘 이어진다.
하루하루 살기 바쁜 범인(凡人)들이 자신의 삶과 그 삶이 영위되는 사회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강 교수는 지난해부터 페이스북을 통해 부도덕한 국가에 통렬하고 격앙된 목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했으며, 불의한 사회와 부조리한 인간에게 언사의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이는 자신이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나라, 더 나아가 아시아와 전 세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겠다는 강 교수의 의지이자 이 책이 탄생한 배경이다.
'꽃은 다 함께 피지 않는다'는 제목은 짧은 문구지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제공한다. 얼핏 냉소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꽃은 언젠가 피어난다는 현실을 담아냈기에 절망적으로 비치지는 않는다. 강 교수는 "꽃이 다 함께 피지 않는 것이 한날한시에 피어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알아챘다"고 담담히 소회를 밝힌다. 때때로 묵직한 어휘들로 치장된 그의 글이 깊고 어두운 시대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생명수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그가 책에 꾹꾹 눌러 쓴 아포리즘은 우리나라 반백년 현대사에 예리하게 벼리고 벼려내 미래를 설파하는 그의 시선이 닿았기에 비로소 탄생할 수 있었다.
이 책은 특별한 서사 없이 웬만한 장편소설보다 거대한 담론을 담아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아포리즘과 시를 오가며 깊이 있는 철학을 보여주는 저자의 '인생 내공'은 마치 서리 낀 유리창을 소매로 슥 닦아내듯 읽는 이의 마음을 명징하게 만든다.
220쪽 |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