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불확실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지혜로운 판단

2017-05-25 08:52
-임준환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사진=임준환 선임연구위원

예측하기 힘든 현상들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잘나가던 미국 금융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서 별로 관련없어 보이던 국내 금융도 붕괴 위기에 처했다.

최근 우리 경제는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 예비저축(필요 이상의 저축), 저금리 장기화 등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2010년 유럽재정위기, 2016년 영국의 EU 탈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등도 예상 밖이었다.

미국 금리인상 이후 달러 대비 원화 강세도 예측하지 못했다. 미국 금리가 인상되면 원화가치가 하락하는 게 일반적인 상식인데 말이다. 왜 예상치 못한 충격들이 자주 일어나는 것일까?

이러한 현상들을 모두 우연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필자는 변화하는 환경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 환경이 지속된다는 가정에서 기존 의사결정 규칙을 고수하는 데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단순하고 예측 가능한 세계가 아니다. 복잡성(complexity) 또는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세계다.

단순한 세계는 미래에 대한 사건들이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다. 사건발생 가능성(확률)도 예측할 수 있다. 예측 가능한 세계에서는 합리적인 행동이 가능하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결과에 따른 가치(효용)가 존재하므로 각 사건의 가치에 상응하는 확률을 곱해 이들을 합산한 결과가 최대가 되도록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단순한 세계에서 적용되는 최선의 행위를 선택할 수 없다. 미래를 알 수 없으니 확률적으로 표현할 수도 없다. 어떤 현상을 유발하는 요인들이 다양하게 존재하며, 이러한 요인들이 상호작용해 현상의 특성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발생가능성을 확률적으로 계산할 수도 없다. 예측한다 하더라도 정확하지 않다. 

예컨대 글로벌화된 금융시장에서 미국 금리인상은 국내 금융시장의 다양한 채널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채널별로 미치는 영향이 상이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예측이 불가능하다. 어떤 조건에서는 채널별 영향들이 서로 상쇄되어 효과가 미약하지만 다른 조건에서는 충격 여파가 증폭되기도 한다. 

따라서 복잡성의 세계에서는 다른 판단기준이 필요하다. 이 같은 세계에서 합리적 판단이란 최악의 상황을 선택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최선의 대안을 찾는 것이다. 판단 기준은 비관주의적 접근방법을 반영하는 것이다.

비관주의란 불확실에 대처하는 유용한 심리적 기저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악재가 발생하면 악재가 지속될 것이고, 호재가 발생하면 호재가 일시적일 것이라고 느끼는 심리적 성향이다.

불확실한 세계에서는 예측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다. 때문에 예측 대신 현재 상태에 따라 보수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유용할 수 있다. 이러한 세계에서는 신중하고 비관적인 태도가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각 가능성의 경중을 세밀하게 판단하여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을 선택하는 것이 미덕이다.

앞으로 세계가 더욱 복잡해지고 불확실해진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비관주의 태도가 구조적 장기침체와 예비 저축행위를 유발할 것이다. 자신이 불확실성을 통제할 수 없다면 보수적이고 신중한 태도가 지혜인 셈이다. 이러한 태도는 미래 세계에 대해 무지를 솔직히 인정함으로써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