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패션위크 1호 시니어모델’ 소은영,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

2017-05-22 17:25

소은영 서울패션위크 1호 시니어모델. (사진=제이액터스 제공) 


아주경제 김위수 인턴기자 = "인생의 내리막길를 걷다가 또 다른 봉우리를 발견한 기분입니다. 도전하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지난 17일 서울 중구 소재 롯데호텔 1층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난 소은영(73)씨는 연신 “너무 즐겁다”, “행복하다”라는 말을 계속했다.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아온 소씨는 지난해 ‘시니어 모델’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그는 “삶에서 가장 즐거운 시기를 살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며 “제 인생의 황금기는 바로 지금”이라고 말했다.

무엇이 70대 노년의 그를 이토록 기쁘게 만들었을까. 소싯적 영화배우를 꿈꿨던 소씨는 엄격한 분위기의 집안환경에서 그 ‘끼’를 감추고 남편의 내조에 집중하며 지난 몇 십 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작년 제이액터스에서 시니어 모델 클래스를 접하며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소씨는 “수강생 중에 나이가 제일 많아 수업을 들을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우리나라는 고령사회(만 65세 이상 인구가 총 인구의 14%를 차지)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는 100세 인생 시대의 개막과 맞물려 새로운 시장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최근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은퇴 이후 소비생활과 여가생활을 즐기며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중·장년층)들을 대상으로 한 취미생활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이다.

이 가운데 새롭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한 ‘모델 수업’이다. 워킹, 포즈, 소품연출법 등을 배울 수 있는 시니어 모델 아카데미가 은퇴 후 무료한 삶을 보내던 중·장년층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정경훈 제이액터스 대표는 “아카데미 수업을 들으려고 지방에서 올라오시는 분들도 있다”며 “백화점 문화센터 등에서 진행하는 시니어 모델 강의의 경우 인원이 몰려 대기자가 수십 명 발생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취미로 시작하지만, 본격적으로 런웨이에 서거나 방송, 광고 등에 출연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도 한다. 소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나. 소씨는 최근 ‘2017 F/W 헤라서울패션위크’의 무대에 서며 본격적으로 전업모델의 삶을 시작했다. 국내 최대 패션 행사인 서울패션위크는 디자이너는 물론 신예 모델들에게도 꿈의 무대로 꼽힌다. 이번 패션위크에는 총 28만여 명의 사람들이 몰렸다. 정 대표는 “소씨를 모델로 선택한 박종철 디자이너에게도 큰 모험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변에서는 70세가 넘는 나이에 모델이 되겠다고 하는 소씨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주위 친구들이 저보고 늙은 모델이냐며 흉을 보기도 했다”며 “어울리지않게 니가 무슨 모델을 하냐고 말하더라”라고 털어놨다. 주위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소씨가 모델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이었다. 그는 “가족들의 응원 덕에 여기까지 왔다”며 “남편도 자식도 모델일이 제 적성에 맞는 것 같다고 말하며 옆에서 용기를 줬다”고 말했다.

평생을 주부로 살아온지라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어색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무대에 서는 것이 너무 떨려 약까지 먹었다는 소씨는 이제 “내가 뭐 나이가 73세인데 나만한 사람이 있겠냐고 생각한다”고 능청을 떨만큼 무대에 익숙해졌다. 의지만큼 따라주지 않는 몸도 문제였다. 쇼를 준비하느라 높은 신발을 신고 너무 많이 걸어 발이 온통 물집투성이가 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소씨는 이런 어려움이 “다 좋은 경험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직도 무대에서 실수를 하기는 하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요령이 늘었다”고 덧붙였다.
 

[‘서울패션위크 1호 시니어모델’ 소은영,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


소씨는 젊은이들 못지않은 열정을 자신만의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솔직히 제 나이에 이렇게 열정적인 사람이 없을 것 같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소씨에게는 일주일이 모자르다. 틈틈이 서울은 물론 부산에서 열리는 시니어 모델 클래스에 참여한다. 또한 수업을 듣고 매일같이 클래스에서 배운 것을 복습한다. 소씨는 바쁜 일정에도 “좋아하는 일을 해 즐겁기만 하다”며 “마음이 밝아지고 젊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소씨는 넘치는 열정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도전을 계속할 예정이다. 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니어 모델이 되는 것이 목표”라며 “기회가 되면 해외진출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자리를 떠나기 전 소씨는 다른 중·장년층들을 향해 “머뭇거리지 말고 정말 자기를 위해 도전하라는 말씀 드리고 싶다”고 당부했다. 그는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며 마음도 젊어지고 밝아진 느낌이다”라며 “나이 먹었으니 안된다가 아니라 다들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어 “저도 계속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