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지에 푹 빠진 벽안의 伊교수 "활용 가능성 무궁무진"

2017-05-19 06:00

"여성적이고, 유연한 게 한지 매력…伊 모든 미술대학에 소개하고 싶어"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한지를 일단 한번 접하면 누구나 그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죠. 여성적이고, 유연한 한지는 문화재 복원은 물론 미술 작품 창작에도 쓰임새가 무궁무진할 것이라 봅니다."

지난 17일 이탈리아 로마 중심가에 있는 주이탈리아 한국문화원에서 개막해 다음 달 1일까지 계속되는 '한지 세계로의 여정'이라는 제목의 전시회가 현지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서양 미술 본산의 후계자라는 자존심이 유달리 높은 이탈리아 미술가들이 아직까지 현지에서 생소한 한국의 전통 종이 한지를 이용해 작품을 만드는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 신선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이탈리아 미술 명문인 국립로마미술대학교 교수진과 재학생, 졸업생 등 이탈리아 화가 약 20명이 한국에서 공수한 닥섬유를 직접 삶아 한지 틀을 통해 뽑아낸 한지로 제작한 작품 20여 점이 전시됐다.

이탈리아 유력 일간 라 레푸블리카가 이번 전시회를 수준 높은 작품 사진과 함께 소개한 것을 비롯해 여러 언론 매체가 동양의 물질을 매개로 서양 미술이 형상화된 이번 행사에 관심을 표명했다.

이번 전시는 2015년 4월 로마에서 진행된 한지 뜨기 시연을 처음 접하며 한지의 매력에 눈을 뜬 라우라 살비 로마미술대학 그래픽학과 교수와 같은 대학의 리카르도 아요사 교수, 한국인 손현숙 교수의 주도로 성사됐다.

개막식을 전후해 만난 살비 교수는 "학생들과 함께 직접 뜬 한지를 이용해 작업하는 과정 자체가 너무 즐거웠는데, 미술계에서의 반응도 예상보다 뜨거워 만족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2015년 4월에 한지 전시회와 한지 뜨기 시연을 통해 한지를 처음 접한 살비 교수는 한지의 특별한 제작 과정과 한지 자체의 우수성에 매료돼 그해 9월부터 그래픽학과의 정규 과목 중 하나인 종이 수업에 한지를 소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작년 6월 로마를 방문한 한지 장인 장성우 씨에게서 한지 제작과정을 직접 배우고, 작년 12월에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주관으로 한국에서 열린 해외 지류 전문가 대상 한지 워크숍에 참여하며 한지에 대한 이해도를 더욱 높였다.

이후 주이탈리아 한국문화원에서 기증받은 한지 제작틀을 이용해 종이 과목 수업에서 한지의 역사는 물론 한지 제작법까지 직접 가르치고 있다.

종이 전문가로 각국 종이에 조예가 깊은 살비 교수는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쉽게 접할 수 있고, 문화재 복원에도 많이 쓰이고 있는 일본 종이 화지와 달리 한지는 아직까지는 이곳에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며 "하지만, 일단 한번 한지를 경험하게 되면 누구나 그 뛰어난 품질과 독특한 색감, 질감에 감탄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한지엔 기존 작품을 훼손시킬 만한 재료가 들어 있지 않아 복원에 적합할 뿐 아니라, 탄성이 좋고, 용도에 따라 여러 질감으로 만들 수 있어 회화부터 의상 제작, 인테리어 소품에 이르기까지 쓰임새가 무궁무진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물을 이용해 부드러운 동작으로 한지를 뜨는 한지 제작 과정이 한지에 부드럽고, 유연한 여성적인 특성을 부여하는 것 같다"며 "한지를 뜨는 것 자체가 예술적 영감을 주는 특별한 경험"이라고 예찬했다.

이번 전시에 힘을 보탠 사비 교수의 동료 아요사 교수도 "한지를 뜨는 과정에서 물과 한지 틀이 부딪히는 소리 자체, 움직임이 마치 우아한 춤을 연상시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거들었다.

사비 교수는 "한지 수업과 한지 제작에 대한 반응이 워낙 좋아 이탈리아는 물론 다른 유럽 지역의 미술 대학에도 한지를 소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 중"이라며 "종이 분야에서 한지가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만큼 한국을 넘어 서양 미술계와 미술 복원 분야에서 한지가 널리 쓰이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고 자신했다.

한편, 같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손현숙 교수는 "이탈리아에서 한지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라며 "이런 행사를 계기로 이곳 미술계에 한지의 우수성에 대한 입소문이 나고 있어 고무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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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