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여파에 기울어진 판…野, 연대없이 첫 자력집권

2017-05-10 02:09

97년 DJP연합, 2002년 盧-鄭 단일화 등 과거 野집권땐 중도·보수 덧셈정치
탄핵 사태로 올해 대선에선 보수 위축…왼쪽으로 운동장 기울어

(서울=연합뉴스) 홍지인 기자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9일 19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이번 대선은 야당이 어떤 단일화나 연대도 없이 자력으로 집권한 사실상의 첫 사례로 역사에 남게 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탄핵 정국의 여파로 대선판 자체가 야권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어버린 결과로 풀이된다. 정권교체와 적폐청산이 절실한 시대정신으로 부각됐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수 정치세력이 크게 위축되면서 대선구도가 유례없는 '야야(野野) 대결'이 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 정치 지형은 보수 후보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야권·진보 진영이 집권했던 역대 두 차례의 대선에서 단일화나 연대 방식이 등장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는 당시 새정치국민회의를 이끌던 김대중 전 대통령(DJ)과 자유민주연합 김종필(JP) 총재가 97년 11월 3일 대선후보 단일화 합의문에 서명해 'DJP 연합'을 이뤘다.

호남과 충청, 진보와 보수가 손을 잡은 DJP 연합에 힘입어 DJ는 대통령에 당선됐고, JP는 국무총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 직후인 2002년 16대 대선에서의 단일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우여곡절 끝에 '해피엔딩'으로 귀결됐다.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방선거 참패와 DJ 아들 비리 등의 악재로 지지율 추락을 면치 못하는 사이,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가 한일월드컵 성공 개최를 계기로 주가를 끌어올리자 두 사람 간의 단일화 논의가 시작됐다.

단일화 방식을 놓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던 끝에 노 후보의 여론조사 방식 수용으로 막판 극적인 합의를 이뤘고, 2002년 11월 24일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예상을 뒤엎고 노 후보가 승리를 거뒀다.

당시 노무현 후보는 대선 전날 밤 정 대표의 지지철회로 위기를 맞았으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반면, 2012년 대선은 야권이 단일 후보를 내세웠음에도 패배한 사례다.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단일화 논의 과정에서 갈등을 겪다가 안 후보가 전격 사퇴하는 형식으로 우여곡절 끝에 단일화를 이룬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도 막판 사퇴해 야권 후보는 사실상 문 후보만 남게 됐다.

그러나 과거의 단일화와는 달리 후보 간 합의가 아닌 한쪽의 포기로 이뤄진 당시의 단일화는 충분한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고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도 단일화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동안 주로 야권·진보 진영에서 이뤄졌던 논의가 범보수 측에서 이뤄진 것이 특이한 점이다.

바른정당 의원들이 '비문(비문재인) 후보 단일화'를 제안하고,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도 보수 진영 4명의 단일화를 공론화한 것 등이다.

그러나 결국 단일화는 물론 연대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채 대선이 치러졌고 결과는 제1야당의 단독 집권이었다.

다만, 현재 국회의 권력 지형을 고려할 때 대선 전 연대·단일화는 없었더라도 집권 후 어떤 식으로든 협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폭넓은 공감대는 존재한다.

문 당선인도 이런 점을 감안한 듯 후보 시절 다른 당 당적 보유자까지도 정부 인사에 포함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한 통합정부 구상을 발표한 바 있다.

ljungberg@yna.co.kr

(끝)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