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기울어진 운동장' 극복 못해…보수층 규합엔 성과
2017-05-10 01:31
궤멸 직전 보수당 재건에는 일정한 소득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좌파' 집권을 막고 역전극을 펼치겠다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홍 후보는 보수 지지층 결집에 승부수를 걸며 선두주자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추격하는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따라 열린 이번 대선에서 야권으로 급격히 '기울어진 운동장'은 홍 후보의 역전극을 끝내 허용하지 않았다.
그 자신도 수차례 밝혔듯이,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는 '변방'의 '독고다이' 정치인이었던 홍 후보를 대선후보로 만들어 놓았다.
'박근혜'라는 구심점을 잃은 친박(친박근혜)계 세력이 크게 쪼그라든 데다, 한국당 자체가 분당으로 휘청이면서 대선에 내세울 만한 간판스타를 찾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홍 후보는 경남지사로 있던 2월 중순 '성완종 리스트' 2심 재판의 무죄 선고와 뒤이은 당 징계 해제로 대선 출마의 족쇄에서 풀려났다. 범보수 유력주자였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2월 1일)과 황교안 국무총리(3월 15일)의 불출마도 호재였다.
3월 31일 대선후보로 선출된 홍 후보는 본격적인 '집토끼'(기존 지지층) 사수 총력전에 들어갔다. 중도로 손을 뻗는 대신, 강경 보수층만이라도 확실히 결집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는 "종북좌파를 때려잡고 강성귀족노조를 손보고 전교조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연일 부르짖었고, 동성애 반대를 선언하는 등 선명한 보수색을 드러냈다.
이번 선거를 '체제 전쟁'으로 규정하면서 탄핵 대선 국면을 벗어나 보수-진보 진영 대결로 몰고 가기 위한 프레임 대결도 구사했다.
이목을 끌기 위한 것이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뇌물 먹고 자살했다", "낙동강에 빠져 죽자" 등의 극단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오랫동안 여론조사 지지율이 한 자릿수에서 정체됐던 홍 후보는 겨우내 잠복했던 보수층 지지를 조금씩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4월 내내 고조된 한반도 위기 상황은 홍 후보의 지지율 상승을 견인했다. TV토론도 당 내부에서 "우리로서는 남는 장사였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입담과 공격력이 뛰어난 홍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막판 보수층 결집 현상에 고무된 홍 후보는 안 후보를 역전하는 '실버크로스'를 넘어 문 후보를 꺾는 '골든크로스'도 가능할 것이라며 내심 자신감을 보였다.
그럼에도 대선판의 전체적인 물줄기를 바꾸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탄핵으로 치러지는 보궐 선거인 만큼 이번 대선은 기본적으로 박근혜정권의 심판적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보수정당에 드리운 그림자는 길고도 짙었다.
"내가 잡으면 '박근혜정권 2기'가 아니라 홍준표의 서민정부"라는 홍 후보의 외침은 전체 민심을 파고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좌파정권 심판'이라는 막판 구호도 설득력이 부족했다.
홍 후보의 개인 브랜드 자체도 확장성에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직설적인 발언으로 전국적 인지도도 끌어올리고 '홍카콜라'(홍준표+코카콜라)로 불리며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이른바 '돼지흥분제' 논란과 '영감탱이 장인' 발언은 부정적 이미지를 굳혔다.
그럼에도 홍 후보 득표율이 20%를 넘어서면서(10일 오전 1시 기준) 보수층 규합에 어느 정도 성공한 사실은 위안으로 삼을 수 있다. 탄핵 반대 여론이 15% 수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보수층이 홍 후보의 호소에 호응한 셈이다.
사실상 존폐 위기에까지 몰렸던 한국당은 이번 대선을 치르는 동안 보수·우파 민심 집결의 중심이 됐고, 앞으로도 보수정당의 정체성을 유지할 기반을 닦게 됐다.
선거 초반 수백억 원에 달하는 선거비용 100%는커녕 50% 보전도 못 할까 전전긍긍했던 한국당으로서는 나름 안도할만한 결과다.
벌써 당내에서는 향후 치러질 당권 경쟁 과정에서 홍 후보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 후보의 대선 패배 책임론보다는 향후 역할론에 무게를 싣기 위한 포석으로 여겨진다.
홍 후보는 이날 밤 당사 기자회견에서 "이번 선거결과는 수용하고, 한국당을 복원하는 데 만족하는 것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 당 재건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것이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어떠한 답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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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