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당선] 남북경제통일 구상 실현하려면 북핵진전 있어야
2017-05-10 00:18
"햇볕정책 계승"…인도적 지원·사회문화 교류 등 재개될 듯
한반도 신경제벨트·개성공단 재개…북핵 진전없인 '공염불'
"김정은 대화 상대로 인정"…남북정상회담 승부수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 문재인 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꽉 막힌 남북관계의 혈맥이 다시 뛸지 관심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여를 거치며 시나브로 축소되다 작년에 완전히 단절된 남북교류는 문재인 정권에서는 어느 정도 활기를 되찾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문 당선인은 후보 시절 햇볕정책과 대북포용정책을 계승하겠다고 일관되게 밝혀 왔다.
압박 일변도에서 벗어나 북한과의 교류도 병행 추진하겠다는 의미로, 인도적 지원과 사회·문화 교류부터 재개한 뒤 상황에 따라 개성공단·금강산관광 등 경제협력 분야까지 정상화를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압박 기조와 국내의 강경한 대북여론을 고려하면 북핵 문제의 진전이 없는 한 본격적인 남북교류는 여전히 어렵다는 지적이다.
특히 돈이 오가는 경협 사업은 재개가 쉽지 않다. 문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건 '한반도 신경제벨트' 구축도 마찬가지다.
결국 우리 정부의 의지와는 별도로 남북관계의 키는 북한이 쥐고 있는 셈으로, 새 정부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끌어내기 위한 정치·군사회담, 더 나아가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 인도적 지원이 첫걸음…순수 사회문화교류도 진행할 듯
문 당선인은 지난달 23일 '한반도 평화구상'을 발표하면서 "햇볕정책과 대북 포용정책을 발전적으로 계승해 북한의 변화를 전략적으로 견인해 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대북여론이 나빠질 대로 나빠진 상황을 고려하면 우선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관계없는 사안부터 첫발을 디딜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부담 없는 영역이 대북 인도적 지원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에도 위배되지 않고 유럽을 중심으로 많은 나라가 이미 하고 있다.
유니세프나 세계식량계획(WFP), 세계보건기구(WHO) 등을 통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철저한 모니터링이 이뤄져 투명성 논란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박근혜 정부 때도 북핵 문제와 관계없이 영유아나 임산부 등 취약계층에 대한 대북 인도적 지원은 계속 진행한다는 게 기본 입장이었다.
다만 북한의 거듭된 도발로 "지원 시기와 규모는 신중하게 판단한다"면서 지원을 유보해 왔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는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별개'라는 원칙으로 곧바로 재개할 가능성이 있다. 문 당선인은 쌀값 하락 대책의 하나로 "남는 쌀로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문 당선인은 사회문화체육 교류 활성화를 주요 공약의 하나로 제시한 만큼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한 순수 사회문화교류도 재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개성 만월대 남북 공동발굴 조사사업,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다소 정치색이 있는 교류 사업까지 진행할지는 불투명하다.
당장 올해로 15주년을 맞는 6·15 정상회담을 기념하는 행사가 남북 민간 차원에서 추진될 가능성이 있는데, 이에 대한 차기 정부의 입장이 향후 남북관계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문 당선인은 또 남북기본협정 체결도 공약으로 내걸었다. 남북이 1991년 체결한 남북 기본합의서를 변화된 상황에 맞게 수정·보완한다는 의미다. 아울러 접경지역을 남북이 함께 관리할 '공동관리위원회' 설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남북 단일시장 비전에도 개성공단 등 경협재개는 '산 넘어 산'
문재인 당선인은 중장기적으로 남북 경제통합(단일시장)을 거쳐 점진적으로 통일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구체적으로 북핵 해결에 따라 '한반도 신경제벨트'를 구축하겠다는 비전도 제시했다. 이는 환동해권과 환황해권, 중부권 등 3개 권역에서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환동해권'은 에너지·자원 벨트로 부산-남·북 동해안-중국-러시아를 잇는 북방 트라이앵글과 부산항을 중심으로 북의 나진-선봉항, 남의 일본 니가타항을 연결하는 남방 트라이앵글을 포괄한다.
'환황해권'은 산업·물류·교통 벨트로 목포·여수-인천-해주-개성, 목포-남포-상하이를 각각 잇고 있으며, 수도권과 개성공단을 거쳐 평양·신의주까지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서울에서 베이징까지 고속 교통망을 만들겠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중부권'은 환경·관광벨트로 비무장지대(DMZ) 생태·평화안보 관광지구 개발 등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이는 문 당선인도 적시했듯 '북핵 해결에 따라' 추진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2월 북한의 4차 핵실험에 이은 장거리미사일 발사로 중단된 개성공단이나 2008년 7월 박왕자씨 피살 사건으로 10년째 중단된 금강산관광도 마찬가지다.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 임금이나 관광 대가로 북에 건네지는 자금이 핵·미사일 개발에 사용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북핵 문제의 진전이 없는 한 재개는 쉽지 않다.
문 당선인도 지난달 27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북한이 핵을 동결한 뒤 폐기를 위한 협상 테이블에 나오면 개성공단·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핵 폐기 절차 진입을 두 사업 재개의 전제 조건으로 내건 셈이다.
◇ 남북정상회담 추진할까…비핵화 위한 승부수 가능성
이처럼 북핵 문제에서 진전이 없다면 남북관계에서 질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보니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승부수를 걸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직접 만나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끌어내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 당선인도 정상회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는 후보 시절 "싫든 좋든 김정은을 대화 상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상회담 추진 의지를 드러냈다.
다만,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입장은 선거 과정에서 조금씩 신중해졌다.
지난해 12월에는 한 언론인터뷰에서 "주저 없이 말한다. (당선되면 미국보다) 북한을 먼저 가겠다"고 말했지만, 지난달 19일 미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는 "북한 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김정은을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 3일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는 "북한의 핵폐기 부분을 확실히 하기 위해 김정은을 만날 것"이라며 "핵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전제가 확실할 때 김정은과 만날 것"이라고 '핵 폐기' 단계에서 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임을 시사했다. "만남을 위한 만남은 하지 않겠다"(WP 인터뷰)는 의미다.
그러나 핵 폐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북한이 핵실험 등 전략적 도발을 자제하면서 남북 간에 부드러운 분위기가 조성되고, 6자회담 등 국제사회의 북핵 해결 노력이 이뤄지는 상황이 전개된다면 정상회담 추진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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