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만드는 수제담배'…알고보니 단속 회피 '꼼수'

2017-04-24 06:13

손님이 만드는 척 위장한 불법 담배 판매업소들 잇따라 적발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담뱃값 인상 이후 서민 주거지역을 중심으로 '무허가 수제담배' 판매점이 우후죽순 늘고 있다.

최근에는 단속을 피하고자 담배를 손님이 직접 만들도록 하는 유형의 점포가 퍼지는 추세다.

23일 서울 성북구에 지난달 초 개업한 수제담배 가게를 찾아보니 '가정에서! 직장에서! 내가 직접! 만들어 피는 천연담배잎 판매전문점'이라는 홍보 문구가 가게 전면 유리에 붙어 있었다. '누구나 쉽게, 5분 내 담배 한 갑 뚝딱!'이라는 문구도 눈에 띄었다.

입구 위쪽에 돌출 벽간판에는 편의점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담배' 대신 '담뱃잎'이라고 적혀 있었다. 담배가 아니라 담뱃잎을 파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가게 안에 들어가니 말린 담뱃잎이 담긴 봉지가 잔뜩 진열돼 있었다.

종업원은 "미국산 정품 천연 담뱃잎"이라면서 "화학첨가물이 없어서 인체에 해롭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향이나 맛이 일반 담배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테이블에는 담배를 만드는 기계도 놓여 있었다. 종업원은 시범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는 기계 한쪽에 필터를 끼워서 담배 모양으로 말아둔 종이를 넣고, 기계 다른 쪽 삽입구에는 갈린 담뱃잎을 수북이 쌓았다. 기계 스위치를 켜자, 기계가 자동으로 종이 속에 담뱃잎을 채워서 끝 부분을 보기 좋게 잘라낸 뒤 완성된 '수제담배'를 뱉어냈다.

종업원은 "담뱃잎을 구매하신 다음 직접 갈아서, 기계를 이용해 한 갑이나 한 보루를 만들어 가져가시면 된다"고 소개했다.

현행 담배사업법은 '연초(煙草)의 잎을 피우거나, 빨거나, 증기로 흡입하거나, 씹거나, 냄새 맡기에 적합한 상태로 제조한 것'을 담배의 정의로 규정하고 있다.

'연초 잎'을 그대로 피우거나, 피울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한 것을 담배로 보는 것이다.

담배를 제조해 판매하려면 기획재정부와 관할 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담배에 화재 방지 성능을 갖춰야 하고, 담뱃갑에 건강 경고 문구와 주요 성분·함유량도 적어야 한다.

무엇보다 허가를 받아 담배를 제조·판매하려면 수익의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수제담배 판매업소들이 '담배가 아니라 담뱃잎을 판매할 뿐'이라며 손님에게 담배를 직접 만들도록 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해당 업소들 상당수는 손님에게 미리 만들어둔 담배를 팔거나, 종업원이 직접 담배를 만들어 줘 법을 어기는 상황이다.

성북구의 수제담배 가게 종업원도 "직접 만들려면 한 보루 만드는 데 1시간가량 걸린다"면서 "구매가 처음이라 서툰 분들께는 담뱃잎 간 것을 제공하거나 아예 담배를 만들어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종암경찰서는 이러한 사실을 파악하고 최근 해당 업소 점주 노모(31)씨를 담배사업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조만간 노씨를 기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달아 검찰에 사건을 송치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가맹점이 아니라 본사를 수사할 필요성이 있지만, 본사에서는 '담배를 손님에게 직접 만들도록 하라'고 교육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이를 엄격하게 지킬 경우에는 위법성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노원경찰서도 서울 외곽 지역과 경기도 등지에서 같은 유형 범죄를 저지른 김모(47)씨 등 9명을 담배사업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수제담배 판매업소가 서민 주거지역을 중심으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면서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담배로 서민층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단속을 이어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hy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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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