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名人열전] 56년을 카메라와 함께 한 인생 - 최재진 보고파 스튜디오 대표
2017-04-02 16:27
아주경제 울산 정하균 기자 = 울산 북구 호계동 보고파 스튜디오. 사진관 안으로 형형색색 한복의 빛바랜 가족사진이 보인다. 빨간색으로 눈에 띄게 표시된 촬영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진사의 손때 묻은 카메라와 낡은 흰색 배경막이 이곳의 지난 시간을 말해주는 것 같다.
이 사진관의 대표는 최재진 어르신(71)이다. 56년째 사진사로 일하고 있으니 요즘처럼 무엇이든 빠르게, 자주 바뀌는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그의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는 16살 때 부산에서 사진기술을 배워 울주군 두동면 사진관에서 월급쟁이 사진사로 몇 년간 일했다. 그리고 군 제대 후 고향으로 돌아와 '보고파 사진관'을 인수했다.
집 앞 마당에 차려진 결혼상 앞에서 마그네슘 조명을 '펑'하고 터뜨리던 때를 떠올리는 어르신의 눈빛이 반짝였다.
지금의 사진관은 세번쯤 이사를 하고 자리 잡은 곳이다. 원래는 호계시장 인근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구 7번 국도변에 있었다. 한때 농소지역 학교 졸업앨범을 도맡아 만들었던 최고의 사진관이다.
얼마 전 농소1동 통장회의가 열리던 날엔 50대의 한 통장이 "아이고, 중학교 때 우리 졸업사진 찍어주셨던 아저씨 아입니까. 아직도 사진 찍으십니까"라고 반갑게 인사를 하자 옛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그도 농소초등학교 31회 졸업생이니 후배들의 졸업사진에 공을 더 들였던 것도 사실이다.
대형 스튜디오에서 대량으로 졸업앨범을 작업하기 시작하면서 어르신도 더는 학생들의 모습을 담지 않았다. 필름카메라가 디지털로 바뀌고 디지털카메라를 손에 들었다. 카메라가 보편화되면서 사진관 영업도 예전만큼은 안 됐지만 평생 함께한 카메라는 놓지 않았다. 여전히 그 시절 사진사를 기억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사진관도 접어야지. 지금은 막내딸이 사진관에 머물면서 가끔 찾아오는 손님 증명사진 정도 찍어주고, 알음알음 내게 가족사진을 부탁하는 사람들이 전부인 걸."
카메라 잡는 일은 드물어졌지만 그는 아직도 지역사회를 위해 여러 곳에서 활동한다. 농소1동 최고령 통장 최재진 어르신은 오늘도 고향을 위해 발로 뛴다.
인터뷰 내내 함께했던 어르신의 친구가 말문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친구가 이 동네 유명 사진사였는데 사진 한번 찍어달라고 한 적이 없네. 이제 남은 건 영정사진뿐이네. 친구야. 내 사진 잘 부탁한데이."
영정사진을 이야기하며 웃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보고파 스튜디오를 봄볕처럼 따뜻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