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리포트] “중국 대신 동남아로…” 4200만 화교 경제권에 주목하라
2017-03-30 07:00
전세계 화교의 70% 거주…필리핀 인구 1%인 화교가 경제 70% 차지
태국 '맥주왕', 필리핀 '신발왕' 등 거물 기업인 배출
대나무 네트워크로 똘똘 뭉쳐…중국어신문 발행해 목소리 내기도
G2 부상한 중국…개혁개방후 화교 투자 뒷받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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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6000만 화교 70%가 동남아에···
화교는 넓은 의미에서 중국을 떠나 전 세계 각지에 정착해 살아가는 중국계 혈통을 말한다.
‘화교화인(華僑華人)연구보고서(2016년)’에 따르면 전 세계에 분포한 화교는 6000여만명이며, 이 중 동남아 화교가 4264만명으로 전체 화교의 73.5%를 차지한다. 특히 인도네시아·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미얀마 등 동남아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 화교 중에서도 동남아 화교가 가장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햇빛이 있는 곳에 중국인이 있다’는 속담은 아마도 동남아 화교를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화교들은 특히 19세기 말부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할 때까지 중국 대륙의 격동의 역사 속에서 인근 동남아로 옮겨가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특히 중국이 1950년대 중반부터 원칙적으로 화교들의 중국국적을 불허함으로써 이들은 현지에 정착해 악착같이 부를 일구며 현지 사회와 문화에 점차 융화되기 시작했다.
◆필리핀 인구 1% 화교가 경제 70% 차지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조부, 글로리아 아로요 전 필리핀 대통령의 남편.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화교다. 태국 의회에서는 3분의2 의원이 중국계로 채워져 있을 정도로 동남아 지역에서 화교의 입김은 세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 화교들의 활약상이 눈부시다. 화교화인연구보고서(2016년)에 따르면 세계화상 500대 기업 중 3분의1이 동남아시아에 분포하고 있다. 화교가 운영하는 기업들이 동남아 지역 주식시장 상장사의 70%를 차지할 정도다. 2013년 당시 통계를 보면 동남아 화교 자본만 1조3500억 달러에 달했다. 특히 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필리핀·인도네시아 5개국이 전체 동남아 화교 자본의 95% 이상을 점유하고 있었다.
동남아에서 활약하는 화교기업에는 어떤 곳이 있는지 이달 초 홍콩 시사주간지 아주주간이 발표한 '글로벌 화교기업 톱1000 순위'에 잘 나와 있다.
여기에 포함된 동남아 화교기업은 모두 52곳이다. 말레이시아가 15곳으로 가장 많았으며, 싱가포르(12곳), 태국(9곳). 필리핀(9곳), 인도네시아(7곳)가 그 뒤를 이었다. 인도네시아 BCA은행(43위), 싱가포르 화교은행(OCBC·46위), 말레이시아 퍼블릭은행(74위), 필리핀 SM그룹(77위), 태국 타이맥주(79위) 등이 대표적이다. 순위는 아주주간이 2016년 8월 말 주가기준으로 중국대륙·홍콩·마카오·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네시아·태국·필리핀·미국 등 증시 상장사 기준으로 1000곳을 추린 것이다.
실제로 동남아 화교기업인들은 현지 경제를 주무르고 있다.
화교 인구만 1000만명에 육박하는 태국. 태국 총자산의 최대 90%를 화교가 장악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태국의 경제는 화교들이 좌지우지한다.
포브스가 지난해 발표한 전 세계 부자 500대 순위에 이름을 올린 태국 부자 16명 중 10명이 화교다. 태국의 부자 1~3위는 모두 화교로 채워졌다. 태국의 국민맥주로 불리는 창(Chang) 맥주그룹을 운영하는 화교출신 기업인 짜런 시리와타나팍디(중국명 쑤쉬밍·蘇旭明)가 태국 부자 1위다. 2위는 태국 최대 소매유통 그룹인 CP그룹을 운영하는 광둥성 출신 화교기업인 다닌 치아라와논드(중국명 셰궈민·謝國民) 회장이다.
인도네시아 부자 1~3위도 모두 화교들이 차지하고 있다. 1위는 인도네시아 최대 민간은행 BCA은행과 인도네시아 대표 담배기업 자룸(Djarum)을 운영하는 하르토노 형제가 수년째 지키고 있다.
말레이시아 10대 갑부 중 9명도 화교로 채워졌다. 특히 말레이시아의 '호텔왕', '설탕왕'으로 불리는 곽씨형제그룹을 운영하는 로버트 콱(중국명 궈허녠·郭鹤年)은 2006년부터 1위를 단 한번도 놓친 적이 없다.
필리핀 경제도 화교가 꽉 잡고 있긴 매한가지다. 필리핀 전체 인구에서 화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1%가 조금 넘지만 필리핀 경제의 70%를 장악하고 있다. 지난해 포브스가 꼽은 필리핀 갑부 10명 중 6명이 화교다. 화교들은 필리핀의 은행·교통·항공·담배·부동산·통신·식품·유통업까지 발을 뻗었다.
부자 1위인 필리핀 SM그룹 헨리시(중국명 스즈청·施至成) 회장은 푸젠성 화교다. 신발을 팔아 떼돈을 번 그는 현재 필리핀 전체 소매유통시장의 절반을 장악하고 있다. 필리핀 최대은행인 BDO도 소유하고 있다. 2위인 식품회사 JG서밋홀딩스의 존 고콩웨이(중국명 우이후이·吴奕辉) 회장은 '필리핀의 리카싱'으로 불리는 거부다. 4위인 루시오 탄(중국명 천융차이· 陈永裁) LT그룹 회장은 필리핀 '국민담배'인 포천담배, 필리핀항공은 물론 은행·철강 등 사업까지 손을 뻗쳤다.
싱가포르에서도 화교 출신 양대 부동산업계 거물이 갑부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1위는 싱가포르 최대 부동산개발업체인 파이스트 그룹을 운영하고 있는 로버트와 필립 응 형제가 꼽혔다. 2위는 퀙릉벵(중국명 궈링밍·郭令明) 싱가포르 훙릉(豊隆)그룹 회장이다. 앞서 우리나라 톱스타 전지현의 시아주버니와 결혼한 신부가 바로 훙릉그룹 회장의 딸이어서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됐다.
◆끈끈한 '대나무 네트워크' 원천
화교가 막강한 경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원천은 바로 끈끈한 네트워크다. 동남아 화교들의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일컫는 전문용어까지 있을 정도다. 이른바 '죽망(竹網)', 대나무 네트워크다.
인도의 작가 판카지 미샤라는 지난 2013년 미국 서평문예지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서 죽망을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최대 경제역량”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죽망은 오늘날 자카르타·싱가포르·방콕·쿠알라룸푸르·호찌민·.마닐라 등지에서 활발하게 운영되며 동남아와 중국 대륙과 홍콩·마카오·대만을 비롯한 중화권 지역을 연결하는 교량이 되고 있다.
오늘날 화교 기업인들의 비즈니스 장이라 불리는 세계화상대회를 창설한 것도 화교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제안으로 개최된 세계화상대회는 지난 1991년부터 2년에 한번씩 개최돼 오는 10월 미얀마 네피도에서 14번째 회의가 개최된다. 지난 2005년엔 우리나라에서 개최되기도 했다.
동남아 각지에서 발행되는 중국어신문은 화교사회가 목소리를 내는 창구이기도 하다. 실제로 동남아 현지에서 화교들이 발행하는 중국어 일간지만 수십종이다. 바이두 백과사전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에서 운영되는 중국어신문만 18종이다. 이들의 하루 발행량을 합치면 말레이시아어와 영어 신문을 합친 것보다도 많다. 성주일보(星州日報), 광화일보(光華日報), 남양상보(南洋商報) 등이 대표적인 말레이시아 중국어신문이다.
◆ 'G2' 부상한 중국의 뒤에 화교가···
지난 2015년 9월 초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식 때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롯해 전현직 지도자와 외국 원수들과 함께 나란히 톈안먼 성루에 올라 열병식을 관전한 몇 안 되는 귀빈 중에는 화교 기업인 두 명도 포함됐다. 태국 CP그룹의 다닌 치아라와논드 회장과 필리핀 LT그룹의 루시오 탄 회장이다. 톈안먼 성루에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중국 정부에서도 화교기업인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세계 2대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뒤에는 화교기업인이 있었다. 중국 개혁·개방 초기 외국기업들이 불확실성으로 대륙 투자를 주저하고 있을 때 화교들이 먼저 뛰어들었다.
인민망 보도에 따르면 1979년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대중 외국인 투자가 본격화된 후 2005년 말까지 중국의 누적 외자 유치액은 6224억 달러에 달했다. 이 중 화교 주도 자본이 4170억 달러로 전체 투자의 67%를 차지했다.
1981년 말까지 중국에 설립된 48개 합자회사 중 화교(홍콩·마카오 포함)가 세운 합자회사가 28곳으로 전체의 60%를 차지했다. 대표적으로 CP그룹의 다닌 치아라와논드 회장은 1994년까지 중국 대륙에만 40억 달러를 투자했다. 필리핀 SM그룹은 중국 샤먼·청두·충칭·쑤저우 등 도시에서 SM시티 등과 같은 대형 쇼핑몰을 운영하는 등 화교기업인들의 대륙 투자는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치열한 글로벌 경제전쟁 속에서 동남아 화교들은 중국과 자국의 경제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하는 첨병으로 맹활약하고 있다.